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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은 무대였다. 그는 칼에 찔린 듯 소리를 지르다가, 지휘자처럼 힘찬 팔동작을 하다가는 어느새 목소리를 가다듬고 교실 이쪽저쪽을 활기차게 오가며 학생들에게 말을 걸어왔다. 학생들은 마치 연극을 감상하듯 남경주의 강연 ‘한 편’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지난 11일 서울 번1동 수송중학교에서 뮤지컬배우 혹은 연기자가 되고 싶은 학생들 30여명을 대상으로 한 뮤지컬배우 남경주의 강연이 있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과 한겨레신문사가 위촉한 ‘문화콘텐츠 앰배서더’로서 그는 이날 학생들에게 세상에는 정말 많은 직업이 있고, 그 중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내용의 열강을 펼쳤다.
교실에 들어온 남경주는 자기소개를 먼저 했다. 1984년 서울예전을 졸업, 이후 서울시립가무단과 88서울예술단, 롯데월드 예술극장 전속단원을 거쳐 현재 프리랜서 배우로 활동하기까지 배우로서 어느덧 2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그의 지난 시간이 간단하게 소개됐다.
이날 그가 학생들에게 들려준 얘기는 ‘세상은 보고 싶어 하는 만큼 보인다는 것’.
학생들 자리로 바짝 다가간 그는 아이들에게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질문했다. 의사? 선생님? 연기자? 헤어디자이너? 그러나 쑥스러운지 한동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남경주는 아이들의 가슴팍에 달린 이름표로 그 서먹한 골을 메워갔다.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가는 그에게 아이들은 곧 솔직한 답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뮤지컬배우요, 스튜어디스요, 대통령요.’
남경주는 무슨 일이든, 어떤 직업이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는 결코 남의 생각이 아닌 자기만의 생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TV가 만들어놓은 환상에 젖어서인 건 아닌지 꼭 의심해 보라.’
또한 단지 의심에 그치지 않고 진정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그 일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고 전했다.
“가령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다면 조금씩 용돈을 모아서 대학로를 나가보고, 안내 데스크에도 물어보고, 브로셔들도 챙겨 보세요. 실제로 체험하는 것과 얘기를 듣는 것과는 실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남경주는 또한 강연을 듣는 학생들이 대부분 연기자 지망생임을 감안해 ‘연기’에 대해 학생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과, 연기에 있어서의 감성과 이성의 적절한 안배에 대해 사례와 경험을 곁들여 설명했다.
연기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달리 감성보다는 이성이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때론 병을 앓던 아픔을 기억해내 연기에 ‘써먹기도’ 해야 하며, 리얼리티와 연극적 상상력을 적절히 조절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가수 바다와 함께 주연한 뮤지컬 <페퍼민트>에서 칼에 찔려 죽는 터줏귀신 역할을 했던 예를 들었다. 장기 공연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궤양으로 십이지장에 구멍이 났던 경험을 되살려 칼에 찔린 듯한 느낌을 만들어냈던 자신의 경험도 들려줬다.
또한 그는 웃고 즐기는 코미디에도 진실성과 논리가 중요하며, 그 진실성에는 기본적으로 ‘이성이 칼날처럼 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다 효과적인 설명을 위해 즉석에서 연극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가 아버지를, 학생들이 각각 어머니, 아들, 아들의 여자친구를 맡아 노총각 아들의 결혼이 좌절되는 상황을 연기했다.
그는 직업엔 귀천이 없으니 직업마다의 장점을 살려 스스로도 함께 발전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길, 중고등학교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배우고 누리길, 다방면으로 많은 양의 상식을 갖추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런 앎의 힘이 조금 더 비판적인 시각을 갖추고 진짜 적성을 찾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은 정말 보고 싶어하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잊지마. 무엇이든 열심히 보려고 하고 알려고 하고, 접해보도록 해. 꼭 ‘스스로 찾아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경주는 짧기만한 한 시간을 아쉬워하며 아직은 어린 ‘인생의 후배들’에게 힘주어 이렇게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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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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