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7 14:33
수정 : 2005.10.17 16:18
신상훈 작가, 덕성여자고등학교에 가다
‘사람의 마음을 안아주는 게 먼저다.’
웃게 하는 것이든 울게 하는 것이든 콘텐츠가 가진 힘이라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마음을 움직이려면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고 그것을 얻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먼저 열고,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도 안을 수 있어야 한다.
지난 3일 축제가 한창이던 서울 안국동 덕성여자고등학교에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으로 위촉한 방송콘텐츠 부문 ‘문화콘텐츠 앰배서더(홍보대사)’인 코미디 작가 신상훈 씨의 강연이 있었다.
“얼굴에 모든 것이 다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성공할까요?”
신상훈 작가의 물음에 학생들은 저마다의 가치관을 부른다. 명예, 재산,…. 그런데 그는 뜻밖의 말을 한다. “아니, 얼굴이야.” 곧바로 술렁거리는 학생들. 신 작가는 차근히 설명을 시작한다.
“언뜻 오해가 생기죠? 그렇지만 여러분의 미의 기준으로서 하는 말이 아니예요. 사람을 성공할 수 있게 하는 것들이 얼굴 안에 다 있다는 뜻이죠.”
‘그 사람의 단어수와 연봉액은 비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눈으로 보는 것으로 중요한 만큼 눈으로 매일 수십 권씩 쏟아지는 책을 읽어라. 입이 하나인데 귀가 두 개인 이유는 많이 들어야 하기 때문이니 그 귀로 많이 들어라. 블루칼라와 골드칼라의 시대는 갔다. 세상은 유머로 성공한다. 그러니 유머 넘치는 입담으로 늘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라.’
눈과 코와 입의 반복된 노력으로 사람은 한 분야의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그 증거로 신 씨는 방송인 김제동의 애드리브를 들었다. 오늘날의 김제동은 그가 군대 시절 달달 외우던 격언집과 유머집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네 마음 속 ‘코끼리’를 꺼내고 ‘기린’을 넣어보렴”
“여러분 유오성과 설경구를 잘 알죠? 제 동기들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주변을 보세요. 여러분 친구들 중에는 그들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나올 수 있거든요. 여러분의 가능성은 무한하니까요.”
고 이주일 씨는 4백만 명을 금연하게 했다. 지오디와 동방신기 등 스타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청소년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 힘을 갖는다. “이제는 방송, 영화 등 문화콘텐츠에서 ‘멘토(정신적 지주)’가 나오는 시대”라며 그는 ‘문화사역자’와 ‘문화콘텐츠’의 힘에 대해 얘기했다.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영향을 끼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나요? 현대인의 화두는 이제 ‘펀(Fun)’(즐거움)이죠. 영화든 드라마든 즐겁지 않으면 대중은 그것을 외면합니다.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어 말초적인 재미가 아닌 진정한 기쁨을 안겨주는 일을 시도해보세요.”
그는 그러한 즐거움을 주는 일에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 속을 다스리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전하면서 코끼리와 기린을 냉장고에 넣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냉장고’는 그저 문만 열고 기린을 넣으면 되지만 만약 그 속에 ‘코끼리’가 들어 있다면 기린을 넣기 전에 그 코끼리를 빼내는 게 우선. 가슴 속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선입견과 오해들, 사실과 다르게 잘못 알고 있는 지식들을 모조리 꺼내는 게 먼저다. 기린을 들이기 위해서는 코끼리를 꺼내야 한다.
“부모님을 안아드려야 해. 너희는 포옹의 힘을 아니?”
그는 이번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부끄럽지만 솔직한 고백을 들려줬다. 얼마 전 그는 출강중인 인덕대 학생들에게 ‘부모님 안아드리기’ 숙제를 하나 냈었다고. 그런데 정작 자신은 어머니와 다투고 난 후 무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화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 사정이야 어떻든 큰 불효였다.
“내 스스로를 못 견디겠더라고요. 학생들에게 부끄럽기도 했고요. 지난 주말에는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말씀드렸죠.” ‘부끄러운’ 고백에 이어 그는 학생들에게 “자, 연습해봐. 지금 옆에 있는 친구들, 선생님들을 안아드려야지. 생각해보렴. 여기 있는 몇 사람도 감동시키지도 못한다면 어떻게, 무슨 수로 많은 사람들을 웃게 할 수 있겠니”라며 웃음이든 또 다른 종류의 감동이든 주변 사람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진정 가슴으로 다가서는 일이 먼저라고 전했다.
이날 강연을 들은 김솔 양은 “너무 좋았고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 많았다”고 말했으며, 이은정 양은 “막연하게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오늘 강연을 통해 확실하게 마음을 정하게 되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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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저릿한 첫사랑의 기억을 담고
코미디 작가 신상훈
“녀석, 똘똘하구나.”
어릴 적 방송국에 갔다 이승만 역할을 잘 했던 어느 탤런트의 한마디에 무턱대고 방송국에서 일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꼬마는 어느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메인 코미디 작가로 자라났다.
무심한 세월은 어디로 흘러가버린 것일까. 이날 강연을 위해 덕성여고 강당을 찾은 신상훈 작가의 가슴은 유난히 떨려왔다. 당시 배재고에 다니던 신 씨의 첫사랑이 이곳 덕성여고 출신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떨려요. 사실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연하기도 처음인데, (강의는) 힘들어도 보람이 있네요.
첫사랑이 다닌 학교여서 더 그럴까요?”
대학 2학년 때 학과 게시판에서 우연히 발견한 KBS 방송작가 모집 공고가 그의 인생을 이렇듯 바꿔놓을 줄이야. 1천 명 중 3명이라는 경쟁률을 뚫었던 날도, 첫날부터 막무가내로 대본을 써내라는 요구에 대본을 훔쳐들고 골몰하던 기억도, 과로와 스트레스로 잠깐 방송국을 떠날까 마음먹고 바라보던 별빛까지도, 또 이렇게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줄 만한 자리에 선 것도 모두 그 한 장의 종이 덕이다.
“흔히들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죠? 그런데 그 종이는 ‘수표’였어요. 그 게시판을 못 봤다면 아마 전 코미디 작가가 되지 못했을 거예요. 기회였으니까요. 우리 학생들에게도 늘 아쉬운 점은 주변 것들에 관심을 끄지 않고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다르게 생각해보는 것이에요. 그 속에 답이 있으니까요.”
20년 작가 생활 끝에 얻은 그의 지론대로 하자면 코미디는 애드리브가 아니라 타이밍. 삶도 이와 다를 것 없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학생들에게 늘 주변에 널린 기회들을 탐색하기를 강조한다.
“공모전이든 무엇이든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으면 해요. 솔직히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주입식 교육 시스템이어서 뭔가 상상력을 키우기가 어려운 교육환경이잖아요. 소질과 재능을 찾아 평소부터 자신이 찾아보는 게 꼭 필요합니다. 특히 문화콘텐츠 분야에서의 활약을 꿈꾸는 학생이라면 말이죠.”
그가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단 한 가지다. 늘 잔소리 같이 늘어놓는 한 마디. ‘진정 하고 싶은 것을 알기 위해 쉼없이 찾아볼 것.’ 무엇이 달라서가 아니라 단지 조금 앞서 살아본 ‘선생’으로서 그는 이렇게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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