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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04 20:52 수정 : 2016.01.05 09:48

학교별ㆍ지역별 청소년들의 고민상담ㆍ정보 창구가 되는 온라인 대나무숲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에 익숙한 요즘 청소년들의 특징이 잘 나타난 문화다. 정유미 기자

청소년의 SNS 소통창구

동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는 임금의 귀가 길쭉하다는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이발사가 등장한다. 이발사는 임금으로부터 엄격한 ‘함구령’을 받았지만, 그 비밀을 혼자 알고 있기 답답해 대나무숲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친다. 결국 이발사의 소리가 대나무숲을 통해 전국에 울려 퍼지는 바람에, 온 나라의 백성들이 임금님 귀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발사는 처벌받지 않는다. 이발사가 아니라 ‘대나무숲’이 이야기한 셈이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시대 청소년들
페이스북 등 직접 운영하며
학교·지역별로 자기 생각 털어놔

학생회 선거·국정교과서 등
학교 현장 둘러싼 논란거리부터
‘어느 학교 누구 좋아한다’ 고백 등
다양한 이야기 풀어놓는 마당

‘오늘 5교시 끝나고 매점에서 빵 사 먹은 파란 점퍼 입은 2학년 남학생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오늘 시험 망쳐서 너무 힘들었는데 힘나게 응원해준 연극부 ○○○에게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3학년 3반 ○○○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혹 지금 사귀는 사람 있는지 알 수 있나요?’ ‘아무리 공부해도 국어 성적이 오르지 않는데, 교재 추천받아요!’

한림예고의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페이스북 갈무리
한국의 청소년들한테도 이런 고민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는 ‘대나무숲’이 있다. 이들이 많이 활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는 ‘××(중)고 대나무숲’ 등의 커뮤니티 페이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처음에는 대학을 중심으로, 해당 학교 학생이 익명 제보를 하던 페이지였으나, 점차 중고생에게도 퍼졌다. ‘대나무숲’이라는 용어 대신 ‘대신 전(말)해드립니다’ 등의 표현을 쓰기도 한다. 소소하게는 학교에서 찾은 분실물 주인을 찾거나, 좋아하는 친구에게 마음을 살짝 전하는 수준이지만, 운영이 활발한 커뮤니티의 경우 재학·졸업생의 동문 커뮤니티가 되기도 하고, 고민을 털어놓는 ‘한풀이’ 장소가 되기도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페이지를 통해 고민 상담을 하는 이런 학생들의 문화를 반영하듯 페이스북에는 많은 청소년들이 고민상담사로 활약하는 ‘고민상담소’ 페이지나, ‘청소년 힐링공간’ 등 비슷한 목적의 다양한 창구가 많다. 학교만을 중심으로 했던 페이지 운영도 점차 지역, 목적에 따라 세분화되는 추세다.

성안고의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페이스북 갈무리
이런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운영자들은 해당 학교의 재학생이거나 졸업생이다. 1인이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계속 페이지 계정으로 오는 메시지를 실시간 올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맞는 친구들 2~3명이 함께 운영하기도 한다.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르기만 하면 페이지에 올라오는 새 소식을 누구나 받아볼 수 있다.

약 3200명의 페이스북 이용자가 받아보고 있는 ‘상산고 대나무숲’을 운영하는 사람은 2014년 상산고를 졸업한 대학생 강병관씨다. 강씨는 고교 졸업 뒤 동문 모임에 갔다가 ‘동문만을 위한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선배들의 말을 듣고, 직접 운영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강씨가 운영을 시작했을 당시, 상산고 대나무숲 페이지의 원래 이름은 ‘상산고 대신 말해드립니다’였고, 운영자와 학생들은 이 이름을 줄여 ‘상대말’이라고 불렀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자’는 뜻이었다. 강씨는 이러한 페이지의 매력을 ‘간단하게 참여할 수 있는 익명 공론장’이라고 설명했다.

“제보자는 실명으로 하기 힘든 고백이나 의문점, 다양한 사안에 대한 장점들을 익명으로 올리고, 그걸 제가 페이지에 다시 올려 주면 구독자들이 간단하게 댓글을 남겨 의견을 달아줍니다. 구독자 대부분이 학교 졸업생이거나 재학생이기 때문에 소속감도 들고, 그 안에서 본인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공론화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실제로 상산고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학생회 선거에 대한 비판이나 국정교과서 정책에 대한 생각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누군가의 제보가 페이지에 올라오면, 구독자들은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눌러 공감이나 의견을 표한다.

학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페이지이다 보니 학생들간의 정보 공유나 동문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장이 된다. 상산고의 경우 강씨가 직접 동문 단체 티셔츠를 만들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동구매하기도 했다. 경기 의정부고의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를 운영하는 2학년 황성윤군은 “인터넷을 보다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교외 대회 등의 정보가 있으면 페이지에 공유하기도 한다”며 “때로는 학내 동아리 행사 등을 홍보할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고 뿌듯해했다.

다른 학교 페이지를 구독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안산 성안고 강희주양은 자신의 학교 페이지뿐 아니라, 한림예고 등 다른 학교의 페이지 소식도 함께 받는다. ‘좋아요’를 누르기만 하면 누구나 소식을 받아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학교 학생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한 많은 청소년들이 다른 학교 페이지를 평균 10개 이상 구독한다. 강양은 “다른 학교 페이지는 그 학교의 분위기나 학생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고, 우리 학교의 경우 사람찾기나 보충시간 알림, 분실물 습득 정보 등 유용한 정보가 많아 구독하는 편”이라며 “페이지에 올라온 게시물들은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의 수다 소재가 되기도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서로 ‘페이지에 올려봐라’고 종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유미 <함께하는 교육>기자 ymi.j@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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