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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산파이자 살림꾼…“사람 사랑이 먼저” 영화 프로듀서 안수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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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인에게 듣는 나의 전공/영화 프로듀서 안수현씨
영화제작사 ‘봄’의 안수현(35) 프로듀서는 요즘 달콤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 달 전 개봉한 전도연·황정민 주연의 영화 <너는 내 운명>이 관객 260만여명을 끌어모으며 박스오피스 상위를 기록하고 있는데다 평단의 찬사도 받은 까닭이다. <너는 내 운명>은 ‘박진표 감독과 일하고 싶다’는 안 씨의 오랜 바람에서 비롯된 영화다.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를 보면서 박 감독과 같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작업을 시작했고, 시나리오가 나왔지요.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다방 종업원이나 에이즈 같은 통속적이고 무거운 요소들이 많아서 걱정이 좀 되긴 했지만, 박 감독을 믿었기 때문에 투자자와 배우를 설득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영화 프로듀서의 업무는 이처럼 영화가 제작되기 전,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 기획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일하고 싶은 감독이나 공감이 가는 시나리오가 기획의 기초일 때도 있고, 대중의 흐름을 살펴 ‘이런 영화를 만들면 호소력이 있겠다’고 판단한 프로듀서가 직접 제작에 적합한 감독이나 작가를 섭외해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 제작이 결정되면 감독과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 의논하면서 제작에 필요한 기간과 비용을 산출하고 함께 작업을 할 스태프들을 모으고, 배우 섭외에도 나선다. 일단 촬영이 시작되면 프로듀서는 ‘살림꾼’이 된다. “감독이 촬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외부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너는 내 운명>을 촬영하는 3개월 동안 강원도로, 전라도로, 경상도로 촬영팀과 함께 다니면서 필요한 것들을 챙겼습니다. 이번 영화처럼 별 탈 없이 끝날 때도 있지만, 태풍이 불어 애써 지은 세트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초비상 사태죠.” 무너진 세트를 다시 지을지 아니면 세트를 대체할 촬영장소를 물색할 것인지, 세트를 다시 지으면서 허비한 시간과 비용을 어떻게 만회할 것인지…. 정해진 시간과 비용 안에서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은 프로듀서의 몫이다.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기획 의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므로,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안목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담은 있을 수 없죠.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감독의 요구를 더 존중해야 할 때도 있고, 배우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상대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포기한 다른 구성원들도 기꺼이 납득할 만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프로듀서는 ‘영화’보다 ‘사람’을 조금 더 좋아해야 합니다.” 전공제한 없는만큼 철저히 ‘능력’으로 평가전공과 경력> 안수현씨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영화와 관련이 없는 전공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영화 프로듀서는 전공 제한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안 씨가 영화일을 시작한 것은 1994년 영화제작사 ‘신씨네’에 입사해 마케팅 담당자로 일하면서부터다. 이후 ‘싸이더스’로 자리를 옮겨 제작부장으로 현장경험을 쌓았고, 4년 전부터 영화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영화 프로듀서는 영화제작사에 입사하기만 하면 곧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영화가 어떻게 기획·제작되어 관객에게 다가가는 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경험해 가며 실력을 쌓아야 한다. 프로듀서가 되는 경로나 이력은 매우 다양하고, 정해진 법칙이나 공식이 없다. 따라서 프로듀서를 꿈꾸는 사람은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위해 꾸준히 준비하며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방법이다. 안 씨처럼 영화사에 소속돼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작품별로 계약을 하는 프로듀서들도 많다. 근무 조건과 환경이 천차만별이고, 철저히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적성>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데 두려움이 없는 사람, 새로운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내길 즐기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영화나 소설 등 세상의 온갖 ‘이야기’에 관심이 있고 문화적 감수성과 상상력이 풍부하면 영화를 기획하는데 도움이 된다.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는 1년 이상 걸리는데다 함께 작업을 하는 사람의 숫자도 엄청나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이 최적의 조건에서 최상의 호흡을 자랑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프로듀서의 일인만큼,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과 갈등 조정 능력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터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순발력과 의사결정 능력도 중요하다. 안 씨는 “무엇보다 재미있고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사진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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