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스따프-아돌프 모싸(1883~1971, 프랑스)가 그린 <햄릿>. 한길사 제공
|
‘사느냐 죽느냐’의 저울질 세계를 둘로 갈라서 볼때 선택과 결행은 어려워진다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셰익스피어의 ‘햄릿’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이 명대사는 초등학생들도 인용할 정도다. 여기서 “To be, or not to be”라는 영어 문장을, 원래 의미에 충실하고자 “존재하느냐 마느냐…” 라고 번역하거나 “있음이냐 없음이냐…” 라고 옮기기도 한다. 그만큼 서구에서는 존재론적 사고가 뿌리깊기 때문이며, 한 개인이 살고 죽는 문제가 존재론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독백에서 유심히 보아야 할 또 다른 점은, 그것이 이분법의 구조를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존재와 비존재이든, 삶과 죽음이든, 선과 악이든, 가짜와 진짜든 세상을 분명한 이분법으로 인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세상의 모든 고민을 가장 근원적 이분 구조인 ‘있음과 없음’에 환원하고 있다. 이분법은 세계를 인식하는 한 방식이다. 인간이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식의 ‘편리함’ 때문이다. 우리가 감지하는 세계는 삼차원의 세계이며 우리는 그 안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사고의 대상을 사차원적으로 인식하고 분석하기는 과학적 가설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대상을 최소한 삼차원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고의 주체가 대상을 자신의 인식 체계 안에서 마음대로 다루기는 어렵게 된다. 인간은 대상에 대한 확실한 ‘인식적 통제력’을 갖고자 한다. 따라서 대상을 자신의 조건보다 한 단계 낮은 차원으로 환원해서 다루려고 한다. 이분법적 접근은 이런 인간의 욕구를 ‘손쉽게’ 충족시켜주며, 인식의 효율성과 편리성을 제공한다. 물론 그에 따른 사고의 단순화와 편협함이라는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물론 이분법적인 사고가 어느 정도 자연의 법칙에 근거한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지만(예를 들어, 양극과 음극, 암수 등), 그 보다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인간이 항상 대상을 ‘대칭적(또는 등가적) 이분 구조’로 보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행복과 불행, 사느냐 죽느냐 같은 문제를 항상 대칭적이고 등가적인 이분법으로 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어떤 결정도 쉽게 할 수 없게 된다. 햄릿이 헤어날 수 없는 고민에 빠진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삼촌이 국왕인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아버지의 유령으로부터 듣고 알게 된 햄릿은 괴로워한다. 그의 존재론적 고민이 얼마나 심오한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햄릿이 모든 상황을 등가적 이분 구조 안으로 우겨 넣기 때문에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모든 것을 ‘존재인가 비존재인가’ 하는 근원적 대립과 선택으로 환원한다. 만일 햄릿이 세상을 이분법적 구조로 보지 않았다면 훨씬 더 전략적인 복수와 응징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을지 모른다. 햄릿은 이분법적 사고가 다양한 가능성들을 가로막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햄릿은 자신을 이분법적 갈등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스스로 이분법 놀이의 술래가 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타인들조차도 억압하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 오필리아의 삶 역시 존재와 비존재의 구조 안으로 환원시켜, 그녀에게 ‘비존재의 선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녀에게 ‘이 세상에 없음’을 선택하라고 억압한다. 저 유명한 ‘있음과 없음’의 독백 직후 햄릿은 오필리아를 만나서 그녀의 정직과 순수함에 대한 논쟁을 하게 되는데, 그는 순수와 비순수의 단순한 대립을 존재와 비존재의 근원적 이분법으로 환원시키면서 그녀에게 “수녀원으로 가라”고 몇 번씩이나 명령조로 말한다. 이는 오필리아에게 ‘이 세상에서 없어지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햄릿을 우유부단한 성격을 지닌 남자의 대명사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극 중 햄릿은 너무나 분명해서 모순에 빠지는 사람이다. 햄릿의 사고는 망설임 없이 너무나 분명한 틀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단호한 것 같으면서도 애매해지는 것이다. 세계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이분법의 틀로 인식할 때, 누구에게든 선택과 결행은 어려워진다. 김용석/영산대 교수 anemoskim@yahoo.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