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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교 교과서 <문학>(천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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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기의 언어영역 해부/이호철 ‘닳아지는 살들’ [줄거리] 5월의 어느 저녁, 밤 열두 시에 돌아온다는 맏딸을 언제나처럼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 조용하고 썰렁한 집안에는 은행에서 은퇴한, 지금은 반백치가 되어 버린 늙은 주인이 있다. 그리고 시아버지를 극진히 부양하는 정애, 그리고 막내딸 영희가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다. ‘꽝 당 꽝 당’ 어디선가 간헐적으로 들려 오는 쇠두드리는 소리가 이상하게 신경을 자극한다. 그 소리는 정애에게 선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선재는 열두 시에 돌아온다는 언니의 시사촌 동생이다. 이북에 있는 언니가 열두 시에 돌아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모두가 막연하게 기다리게 되었다. 여전히 쇠 두드리는 소리가 투명하게 조급해진 듯 들려 오고, 영희는 왜 우리가 자지 않고 이렇게 앉아 있느냐, 어쩌다가 우리 집이 이렇게 되었느냐는 둥 이것저것 자꾸 지껄인다. 점점 열두 시는 가까워지고, 늙은 주인은 푸념을 하는 어린애처럼 코의 사마귀를 만지면서, 기묘하게 예리한 것을 담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린다. 순간, 시계가 열두 시를 치고, 모두의 시선이 시계와 노인의 얼굴로 향하는데, 복도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기묘한 웃음을 띤 식모가 서서히 나타나 변소에 갔었다고 말한다. 발작이나 일으킨 듯 영희는 식모를 가리키며, 아버지에게 언니가 정말 왔다고 소리친다. 꽝 당 꽝 당 쇠소리는 온 밤 내 이어진다. [주제] 분단의 비극이 가져온 한 가정의 권태와 비극
[해설] 이 작품은 20년이나 돌아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는 한 가정을 무대로 한다. 매일같이 계속되는 맏딸의 기다림 속에 가족간의 소통과 유대는 사라져버린 모습을 그리고 있다. 분단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는 딸을 매일 밤 가족이 기다린다는 설정은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집은 적막하고, 외부와 소통이 차단된 비일상적인 공간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가족간의 소통,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된 채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만 빠져 있는 무기력한 가족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뚜렷한 사건의 전개가 없고,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 역시 무기력하게만 느껴진다. 쇠망치 소리도 소설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 꽝당꽝당 하는 쇠붙이 소리는 가족들의 정신적 무기력과 분단 가족의 아픔을 상징하는 소리이다. 이 소설의 기본틀은 ‘기다림→기다림의 좌절→끝나지 않을 기다림을 암시하는 쇠붙이 소리’이다. 끝없는 기다림의 늪으로 빠져드는 가족은 유대감을 점점 잃어가게 되어 제목 그대로 ‘살이 닳아지는’ 듯한 아픔만 겪게 될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이 이야기하려는 것은, 분단이라는 전쟁의 아픔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느냐이다. 전쟁의 후유증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 삶에 관여하고 있음을 볼 때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형노트] 서사 구조의 이해 소설과 같은 서사 장르에서 그 구조를 이해하는 일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서사 구조는 주제, 구성, 문체인 소설의 3요소 중 구성과 관계가 깊다. 따라서 인물, 사건, 배경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누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그리고 인물, 사건, 배경이 어떻게 조직되었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현재에서 과거 이야기를 하고 있는 회상의 구조인지, 이야기 속에 또 이야기가 들어 있는 액자식 구조인지, 화자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인지 등이다. 2001학년도 수능 문제처럼 구조를 도식화하여 보여주는 경우도 있고 위 문제처럼 다른 작품과 구조를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지문을 읽기 전 문제를 먼저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유형문제] [지문] 전략 줄거리: 5월의 어느 날 저녁, 밤 열두 시에 돌아온다는 맏딸을 언제나처럼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 조용하고 썰렁한 집안에는 은행에서 은퇴한 늙은 주인(아버지), 며느리 정애, 그리고 막내딸 영희가 소파에 앉아 있다. 어디서 꽝당 꽝당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참, 언니도 그런 일 겪었수? 어릴 때 제삿날 저녁 말이요. 부엌엔 웅성웅성 아주머니들이 들끓구, 불을 많이 때서 온돌방은 덥구, 애들끼리 장난을 하다가 설핏 잠이 들지 않겠수? 얼마쯤 자다가 깨 보면 여전히 방은 덥구, 뜨락과 부엌과 마루에서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구 방안엔 불이 훤하구, 그런데 아무도 없이 혼자 잠이 들어 있었거든요. 물론 입은 채로지요. 깨 보니까 마루에 부엌과 다른 방에서 웅성웅성 사람들이 들끓는데 제 방만은 아무도 없지 않겠수? 아득해서 혼자만 이렇게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할 텐데 알려지지는 않구 답답해서 답답해서.” “….” “누구인가는 이렇게 투명한 밤일수록 엽기(獵奇·기괴한 일이나 물건에 호기심을 가지고 즐겨 찾아다님)적인 생각 있지 않수? 안나 카레리나를 자처해 본다든가 장 발장이 되어 본다든가 하면 괜찮다고 합디다만 어떨까, 그렇게라두 해 볼까 봐, 어마아 벌써 열한 시 사십오 분이유, 언니.” 늙은 주인의 코 앞 사마귀를 만지는 모양은 푸념을 하는 어린애처럼 보였다. 손에 땀이 나 있고 초저녁보다 조급해 있었다. 이따금 눈이 휘둥그레져서 두리번거리며 영희와 정애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기묘하게 예리한 것을 담고 있었다. 영희도 말을 멈추고 아버지의 그 시선을 좇고 정애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늙은 주인은 아직은 이 집안의 가장인 모양이었다. <중략> 순간 벽시계가 열두 시를 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일제히 시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안이 술렁술렁해졌다. 시계를 쳐다보던 세 사람의 시선이 다시 늙은 주인 쪽으로 향했다. 코 앞의 사마귀를 만지던 늙은 주인이 어리둥절하게 아들과 며느리와 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복도로 통한 문이 열리며 방안의 불빛이 복도 건너편 흰 벽에 말갛게 삐어져 나갔다. 열두 시가 다 쳤다. 네 사람의 시선이 그 쪽으로 옮겨졌다. 조용했다. 왼편 벽으로부터 서서히 식모가 나타났다. 히히히히 하고 이상한 웃음을 띄우고 서 있었다. 제딴에 미안하다는 뜻인 셈이었다. “벤소에 갔었시유.” 하고 말했다. 순간 영희가 발작이나 일으킨 듯이 아버지 쪽으로 달려갔다. 한 손으로 식모를 가리키며, 한 손으로는 아버지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며 쪼개지는 듯한 큰소리로 말했다. “아부지, 자 봐요. 언니가 왔어요, 언니가… 정말 열두 시가 되었으니까 언니가 왔어요. 이제 정말 우리 집 주인이 나타났군요. 됐지요? 아부지 자, 어때요? 됐지요? 아부지.” 식모가 이번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정말이에요, 아부지, 저렇게 언니가 왔어요. 그렇게도 기다리시던 언니가 왔어요.”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도 식모를 내다보는 영희의 눈길은 적의(敵意·적대감)로 타오르고 있고, 아버지는 영희의 부축을 받으며, 저리 비키라는 것인지, 혹은 어서 들어오라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게 한 손을 들어 허공에다 대고 허우적거리고, 성식과 정애도 엉거주춤하게 의자에서 일어서 있었다. 꽝 당 꽝 당. 그 쇠붙이 소리는 밤 내 이어질 모양이었다. [문제] <보기>의 서사 구조와 위 글을 대비할 때, 위 글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은? <보기> 한 그루의 고목(古木)이 서 있는 황량한 길가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사람의 떠돌이가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동안 부질없는 대사와 동작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낸다. 거기에 노예 럭키를 데리고 포조가 등장하여 역시 두서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떠났는데, 심부름하는 양치기 소년이 와서 “고도는 내일 온다”고 알려 준다. 두 사람은 다음날도 여전히 기다리고 막이 내린다.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① 고목 ②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③ 고도 ④ 부질없는 대사와 동작 ⑤ 양치기 소년 [풀이] 정답 ⑤. ‘황량한 길가’는 기다림의 공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위 글에서는 ‘거실’과 관련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기다림의 의미도 목적도 없이 기다리는 인물들로, 영희의 가족들과 연결시킬 수 있다. ‘고도’는 기다림의 대상으로 위 글에서는 ‘언니’이며, ‘부질없는 대사와 동작’은 영희의 대사와 연결되는 것으로 인물 간의 관계 단절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도는 내일 온다’고 말하는 ‘양치기 소년’은 위 글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만기/언어영역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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