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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 정리하다 만난 좋은책 방학중 노동이라도 참 기꺼워 |
도서실 운영 프로그램을 전환하는 작업 때문에 일주일에 두세 번 학교에 나가고 있다. 방학 중인데도 덩달아 등교를 해야 하는 도서부원들에겐 미안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나로서는 뜻밖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도서 라벨을 떼고 붙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그럴듯하거니와(이게 진짜 교육이지 싶을 때도 있다), 고된 노동 끝에 도시락을 ‘까먹는’ 맛도 일품이다. 매주 금요일은 직접 찌개를 끓여서 같이 먹는데, 밥상머리에서 정이 난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그 재미 가운데 최고를 꼽으라면 무엇보다 책 그 자체에 푹 파묻혀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환이가 그렇게 찾던 책이 여기 있었군. 도대체 무슨 내용인데…” 하면서 뒤적이다가 내처 한 권을 다 읽게 되고, “어, 이 책은 박 선생이 추천한 책인데…” 하며 반가운 김에 아예 눌러앉아 뚝딱 읽게 되고 이런 식이다. 물론 작업 속도는 형편없이 느릴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맛본 책의 쓰임새는 여러모로 요긴하다. 특히 독서력이 얕고 짧은 나로서는 보약이나 다름없다.
아이들에게 읽지 않을 책을 권해 줄 수는 없다. 유명한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독서력을 무시하고 ‘무조건 독서’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에 가깝다. 누구 말마따나 고기가 좋다고 갓 젖을 뗀 아기에게 고깃덩어리를 먹일 수는 없지 않은가.
내 책상 옆에는 서가에서 아이들 몰래 책을 뽑아다가 따로 관리하는 3단 책꽂이가 있다. 맨 위에는 내가 읽어야 할 책을 모아 두었고, 둘째 칸에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나 〈종이밥〉, 〈마지막 거인〉 같이 아이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모셔 놓았다. 그림책도 있고 만화책도 있다. 이 책들은 재미있는 책을 찾아 달라고 떼를 쓰는 녀석들에게 건네주는 일종의 맞춤형이다. 대부분 독서 이력이 일천한 이런 녀석들에게 어려운 책을 권하는 것은 기껏 찾아온 아이들을 오히려 내쫓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게 인연이 되어 도서실 단골손님이 되는 친구들도 있다.
맨 아래에는 혼자 읽고 말기엔 너무 아까운 책을 꽂아 놓고, 눈치껏 살펴서 아이들에게 권하기도 하고 동료들에게도 권한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나 〈길을 찾는 책 읽기〉(청소년에게 권하는 책이라는 서문이 달려 있지만, 오히려 어른들의 독서 욕구를 한껏 자극한다) 같은 책이 이 칸의 주인이다. 이렇게 책을 건네준 뒤, 누구에게라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또 없어요?”라는 화답이 오면, 그게 황송해서 다시 서가를 뒤지게 된다. 물론 내가 범하는 오류가 적지 않겠으나, 젊지 않은 나이에 이렇게라도 아이들의 성장과 소통할 수 있는 도서실이 참 고마울 뿐이니 방학 중 노동이라도 참 기껍다.
이상대/
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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