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 중심의 수행평가 사례
중학교 성취평가제 전면 시행
수행평가 비중 커지는 추세
교사가 세부 평가조항 설명하고
학생 자기평가·상호평가 시도도 나와
수업 연동하고, ‘과정’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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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송여중 학생들이 모둠별로 3·1운동을 주제로 한 인포그래픽을 만드는 수행평가 활동을 하고 있다. 하혜진 수석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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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성취평가제 전면 시행으로 대부분의 학교가 지필평가 대신 수행평가 비율을 높이는 추세다. 교육부가 수행평가 확대 지침을 내려 일부 과목은 수행평가만으로 교과 성적을 매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지필평가 직전에 이뤄지는 시기의 적절성’, ‘프로젝트 평가에서 무임승차하는 학생에 대한 공정성’ 등 학생들의 불만도 나오고 있다.
하혜진 수석교사(재송여중)는 이에 대해 교사의 ‘수업 따로 평가 따로’ 인식에서 비롯된 거라고 했다. “교사들이 수업 개선을 위한 방법이나 전략에 관심을 쏟지만 평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다. 평가를 수업과 연결 짓지 않고 감사나 민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량화하기 쉬운 평가를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하 교사가 속한 부산ASA연구회가 2014년 조사했던 중학교 과정 중심 수행평가 실태 결과를 보면, 학생의 발달 단계를 고려해 성취기준을 세우고 평가해야 함에도 여전히 주제문 요약(국어), 듣기평가(영어), 탐구보고서 작성(과학) 등 기존의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고 학년별 평가 내용이 같기도 했다.
■ ‘두루뭉술’ 말고 최대한 구체적으로
교사들은 과정 중심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품도 많이 들고 학생이나 학부모의 신뢰도에 대한 지나친 문제 제기 때문에 이를 꺼리기도 한다. 과정 중심의 수행평가란, 기존 일제 고사 형식의 평가에서 벗어나 교사가 개별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방식에 맞게 평가의 시기, 횟수, 방법 등을 계획해 과정에 방점을 찍고 상시로 평가하는 것이다.
역사 과목을 담당하는 하 교사는 평가 전에 학생들에게 평가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 뒤 그에 맞춰 평가하고 이의제기를 공식적으로 받는다. 가령, ‘3·1운동 인포그래픽’ 제작 수행평가를 할 경우 ‘정확한 내용을’, ‘충분히 담았는지’, ‘창의적인지’ 등의 준거를 제시한다. 학생들이 그 기준에 따라 제대로 활동하고 평가 결과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다. “보통 교사들은 결과물이 얼마나 잘됐는지 감각적으로 보거나 두루뭉술하게 평가한다. 기술적으로 서툴러도 구성이 창의적일 수도 있고, 겉보기에 감각적이지만 내용은 부족할 수 있으므로 점수를 세분화해 평가해야 한다.”
■ 여러 번 도전, 점수·성취감 모두 쌓여
평가 내용과 기준의 변화에 앞서 수행평가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도 있다. 학생들도 평가에 참여하고 여러 번 도전할 기회를 주는 식이다. 최은서 과학교사(한성여중)는 ‘모든 학생이 성공할 수 있는 수행평가’를 목표로 삼았다. 지필평가처럼 점수를 받으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다시 기회를 줘서 아이들이 성취감을 느끼고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다.
최 교사는 학생들이 대중가요에 ‘멘델의 유전’, ‘태양계’ 등 과학적 지식을 담아 개사해 만든 영상을 외워 부르는 것을 평가했다. 어느 부분까지 외웠는지에 따라 점수를 다르게 하고, 한 번에 완성하지 못했으면 재도전의 기회를 줘 누구든 만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처음부터 만점을 받는 학생의 불만은 없었을까. 최 교사는 “아이들에게 처음부터 수행평가의 목적은 순위를 매겨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좀 더 나아지게 노력하는 과정을 평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 대부분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의 불만을 최소화하고 모둠활동 무임승차를 막기 위해 친구들 간 상호평가도 한다. 점수에 직접 반영하진 않지만 아이들 간 문화나 또래 관계 등에 대한 학생 상담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수행평가나 수업에 대한 건의사항을 무기명으로 받아 수업하거나 평가 기준을 만드는 데 참고하기도 한다.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하고 교사도 이를 통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 자기평가하니 복습하고 불만도 줄어
권선구 교사(여의도중)도 “변별력 차원에서 지필평가로 줄 세우기를 하더라도 수행평가는 절대평가의 관점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피드백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권 교사는 다양한 수업 방법을 고민하고 아이들에게 맞는 세부 평가 항목을 다듬어갔다. ‘학습참여도’ 부분은 단순히 수업 중에 떠들거나 집중을 안 하면 감점하는 게 아니라 ‘수업활동’, ‘모둠활동’, ‘배움노트’, ‘자기평가’, ‘학습멘토링’ 등의 항목으로 바꿨다. 학생은 이 가운데 본인이 원하는 평가 항목을 고른 뒤 그에 맞춰 활동하고 자기 평가서도 썼다. 그는 “수행평가는 학생 개개인의 성향을 드러낼 수 있는 기준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그에 따른 내용과 목표 도달점도 다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자기평가서는 단순 평가의 목적을 떠나 그날 수업에 대한 느낌을 정리하고 복습을 한다는 의미도 있다. 실제 학생들은 “자기평가서를 쓰면서 수업을 돌아보게 돼서 좋다”고 했다. 권 교사는 “처음에는 학생이 평가 문항을 선택하고 자기평가를 하는 게 익숙지 않아서 번거롭거나 귀찮아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교사의 일방적 평가는 점수가 낮으면 학생이 불만을 갖기 쉽다. 자기평가는 스스로 활동을 되돌아본 뒤 평가를 확인하는 차원이라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결과에 대해서도 기분이 덜 상한다.”
이전에는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이 활동을 더는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든 학생이 노력하면 만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모둠활동을 다 마치지 못한 애들은 하교 후 따로 시간을 내서 완성해 온다. 자신의 미흡한 점을 돌아보고 다시 과제를 해 오는 학생도 있다.
“학생이 평가 기준과 방법을 결정하면 긍정적 학습동기로 이어져 수업 참여도와 자기주도학습 능력이 높아진다. 이때 교사는 요구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에게 부족한 부분을 설명해 다음에 이를 보완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게 하면 된다.”
■ 지식, 외우기보다 해석하는 게 중요
교사들은 “과정 중심의 수행평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학생 참여형 수업이 전제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보통 교사들이 학생 참여형 수업을 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잠을 안 자고 수업에 흥미 있게 참여하게 하려는 목적이 크다. 하지만 학생들의 활동을 위주로 수업을 꾸리면 내용을 많이 가르칠 수 없다. 이에 대해 하 교사는 “교과서 내용을 무조건 가르치기보다 교육과정과 성취기준에 있는 핵심 내용과 역량을 교사가 선별하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평가하면 된다”고 했다.
“이제 잡다한 지식을 아는 것보다 갖춰진 지식 인프라를 활용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다. 웹툰 ‘조선왕조실톡’이 좋은 사례다. 몇 년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외우기보다 역사적 사건이나 기록을 다르게 해석하고 표현해낸 것”이라고 했다. 이 웹툰을 그린 변지민씨(서울대 디자인학)는 고등학교 때부터 블로그에 자기 생활이나 관심사를 웹툰으로 표현해왔다.
과정 중심의 수행평가를 지향하는 교사들은 “교사는 여전히 아이들이 아느냐 모르느냐에 집착한다. 지금은 아이가 지식을 자기만의 것으로 엮어내고 다른 학생과 소통하며 시너지를 키워 나가는 능력을 요구한다. 이런 역량을 제대로 기르려면 평가 방식도 바뀌는 게 맞다”고 말했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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