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04 11:45
수정 : 2005.11.04 11:45
불특정 다수에게 불쑥 연속으로 나열된 숫자 ‘051123’를 들이밀면서 "이 숫자를 보면 뭐가 떠오르세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들 대답할까? 처한 상황에 따라 온갖 해석들이 난무할 테지만, 고3 학생과 학부모들에겐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괜스레 움츠려 들고마는 희한한 위력의 날일 것이다. 그 날을 향해 꽤 오래 전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으니 어느새 20여일밖에 남지 않은 수능일도 그리 새삼스럽진 않으리라.
그런 아이들이 가정보다 더 오랜 시간 생활하는 고3 교실의 실상들이 멀리 떨어져 관망하고 계신 교육 당국자들의 눈엔 어떻게 비춰질까? 혹시 기사화해보려는 교육관련 기자들의 시야에는? 아니 정작 당사자들보다 더 초조 불안해 하며 안절부절 못하고 계신 부모님들에겐?
촌음을 아껴가며 수능 점수 향상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쁠까? 아니면 며칠 남지 않은 기간 총정리에 여념이 없는 교사들의 강의에 하나라도 더 챙겨보겠다며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칠판이 뚫어져 나갈까? 화장실 갈 휴식시간조차 아까워 몰았다가 한꺼번에 해소를 하고 있을까? 온갖 좋은 그림들로 저들을 그려내고 싶은 마음 굴뚝 같으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황은 바람처럼 꼭 그렇지만은 않으니 어쩜 좋단 말인가? 벌써 수시에 합격했다며 교실 군데군데 자릴 잡고 있는 친구들의 특별히 할 일없어 하는 저 모습. 더이상 어렵기 그지없어 점수 올리기엔 적당치 않은 교과로 낙인(?)찍혀 버린 수학, 영어시간, 나름의 일정에 맞춰 버젓이 진행중인 수업 마다하고 다른 공부해야 한다는 아이들, 새벽 2시까지 학원에서의 보충수업으로 못 잔 잠 보충해야 한다며 졸고있는 아니 아예 자고 있는 아이들, 일찍이 대학은 뭐하러 가느냐며 상관없어 하는 아이들과 그 와중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소위 범생이들의 착실한 수강태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분에 충실하고 있는 수많은 교사들이 난마처럼 뒤엉킨 채 오늘도 고3 교실은 D-day를 향해 쉬지 않고 꾸역꾸역 전진하고 있다.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이 높은 곳에서 지시했으니 저들이 지켜야지 뭐 별 수 있겠어'라는, 비싼 돈 따로 들여 학원과외 또 시키는데 설마 내 아들이 내 딸이 저러고 있지 않겠지를 되뇌이며 위로받는 부모님들. 몇몇 범생이들만을 대상으로 안타깝게 발 동동 구르며 떠들고 있는 교사들 역시 오늘의 고3 교실을 구성하는 밑그림들임을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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