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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29 08:23 수정 : 2016.11.29 08:29

[함께하는 교육] 대딩 선배들이 말하는 내 전공, 이 책

<해적판 스캔들>
야마다 쇼지 지음, 송태욱 옮김, 사계절 펴냄, 2011년

배경은 18세기 영국입니다. 영국 최고의 탐정 셜록 홈스가 살았던 시대보다 100년쯤 앞서는 시대죠. 사건의 주인공들은 책 출판 권리를 두고 법정 다툼을 벌입니다. 책의 소재가 된 ‘도널드슨 대 베케트' 사건은 저작권이란 개념이 분명히 형성되기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책은 법정드라마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제임스 톰슨’이라는 시인이 쓴 <사계절>이라는 연작시가 있습니다. 에든버러의 출판업자 도널드슨은 이 연작을 책으로 엮어 출판했습니다. 이 책의 초판을 출판했던 런던의 출판업자 베킷은 도널드슨의 출판을 ‘남의 재산을 탈취한 것’으로 간주하고 고발했습니다. ‘앤 여왕 법’이라 불리는 당시 저작권법은 책이 출판된 뒤 28년이 지나면 인쇄독점권이 소멸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문제는 당시 영국의 출판업은 출판사가 책이 팔린 만큼 저자에게 인세를 주는 게 아니라 원고에 대한 권리를 통째로 사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니 책을 처음 출판했던 서점주 베킷은 원고에 대한 권리를 샀으니 자기에게 모든 권리가 영원히 있다고 주장했던 겁니다.

이 재판은 ‘저작권법'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앤 여왕 법'은 세계 최초의 저작권법으로 통하고, 이 재판을 통해 비로소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점차 분명하게 형성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재판의 결말은 스포일러가 되니 말하지 않는 걸로 합시다. 다만 책을 읽는 동안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장을 진지하게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누구의 주장이 옳다고 느껴지는지, 그의 논리에도 동의하는지, 어떤 주장이나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말이죠.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것이 시집이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원래 저작권이란 ‘작가의 권한’에서 출발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저작권’, ‘저작권자’, ‘저작권법’이라는 말이 등장하면 그것이 대단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오가는 말인 것 같아 우선 움츠러듭니다. ‘저작권’을 크게 쪼개어보면 작품에 대한 인격적 권리(저작인격권)와 작품을 이용해 영리활동, 즉 돈 버는 일을 할 권리(저작재산권)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저작인격권’은 창작자의 이름을 밝힐 권리(성명표시권), 작품을 세상에 발표하거나 발표하지 않을 권리(공표권), 창작자가 창작한 원본을 남이 함부로 침해할 수 없도록 하는 권리(동일성유지권) 등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이미 어떤 작품의 저작권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찍어 올린 ‘먹짤’(음식 사진), 새벽 2시에 페이스북에 올렸다 지워버린 ‘오글오글’한 글들은 모두 여러분의 작품이고, 여러분은 이 작품의 저작권자니까요. 저작재산권은 돈을 받고 팔거나 남에게 선물할 수 있지만, 저작인격권은 팔 수도 선물할 수도 없는 여러분 자신의 영원한 권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듯 타인의 저작권을 존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작품이 당신이 원하는 방향, 원하는 방식으로 유통되고 소비되는 것은 당신의 중요한 인권입니다. 법적인 표현으로 ‘표절’ 혹은 ‘무단도용’, 흔히 하는 말로 ‘불펌’은 다른 무엇보다 원저작권자의 인격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언론이나 방송과 관련된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 중에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이 많습니다. 타인의 저작인격권을 존중하는 것은 돌고 돌아 결국 여러분 자신의 작품과 여러분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서정(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성공회대언론협동조합 <회대알리> 편집장)

이번 회를 끝으로 ‘대딩 선배들이 말하는 내 전공, 이 책’ 연재를 마칩니다. 원고를 써주신 대학언론협동조합 소속 대학생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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