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06 10:18
수정 : 2005.11.07 09:41
오늘 가르치는 여학생이 대뜸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또래 친구들중에 벌써 남자 애들과 같이 잔 애들이 있어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이 친구는 시종일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심지어 불결하고 더럽다는 표현을 쓰며 그 막나가는 자신들의 친구들의 평을 했다.
잠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나니 나는 어느새 성관계라는 것을 그렇게만 바라볼 것은 아니라고 옹호하는 이상야릇한 선생님이 되어있었고 그 여학생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며 완강한 자기 주장을 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꽤나 많은 여학생들이 이런 순결이라는 도덕의 기준으로 자신을 정신무장하고 있음을 알았다.
순결 이데올로기 속에 숨어 있는 도덕론의 함정
물론 미성년자들의 성관계라는 것이 좋은 영향보다는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문제는 성관계라는 것도 도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관계의 문제라는점, 또한 그것이 여전히 남성우위의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 청소년들의 권리를 제약하고 통제하기위한 학교권력과 맞닿아 있다는 점등을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공허한 도덕론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의 성행위를 부도덕의 기준으로 몰아 인간말종처럼 바라보는 것은 결혼하면 왜 합법적인 성관계가 가능한지, 어른들은 담배를 피워도 왜 학생들은 피우지 못하는지, 왜 청소년들에게만 포르노영화를 못보게하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해주지 못한다.
또한 그러하기에 학교에서는 실력있는 선생님이 유흥업소에 자주 드나들고, 학교에서는 민주적으로 보이는 선생님이 가정에서는 폭력적일 수 있으며, 말끝마다 도덕을 부르짖는 선생님들이 실상은 비도덕앞에서 무기력기짝이 없는 경우도 생겨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도덕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도덕은 도덕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덕을 기준으로 나누는 것은 정치적인 것과 비정치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짓이다. 도덕 또한 정치와 권력의 문제이며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다.
군대에서 멸치 잘못보관했다고 상관으로부터 촛대까이고, 구타당하는 군대가 가능한 이유도 권력의 문제이며, 전통민복 입고 다닌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교사가 있어도 전교생의 절반이 넘는 학생들을 성추행한 교장은 멀쩡한 이유도 권력의 문제이다. 그러고보면 우리가 다녔던 대학에서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실의 구석 구석, 매수업 한시간 한시간 마다 이런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비도덕은 얼마나 많은가.
교사가 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 엄청난 입시전쟁으로 아이들을 내모는데 십자가를 메야하는 것이 교사의 운명이다. 거기다 가르침을 본분으로 하는 교사의 책임을 버린채 오늘도 내 가족들의 밥벌이에만 여념없는 이른바 진정한 철밥통 선생님들의 비도덕은 또 어떠한가. 이런 적극적인 비도덕 말고도 학교와 재단의 전횡에 대해 애써 눈감고 숨죽이며 지내야하는 전국의 무수한 소극적 비도덕은 얼마나 많은가. 또 나는 수업에 충실하므로, 나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있으므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리라고 자족하는 도덕은 정치와 권력의 힘앞에서 무참히 무너지는 나약한 도덕일 수 밖에 없다.
교원평가제로 교사들이 도덕성의 시험대에 오른다
학교를 통제하겠다는 정치와 권력의 힘이 느껴진다
교육부가 교원평가제를 예정대로 실시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그 평가에는 공정한 평가보다는 교육에 대한 모든 기준과 잣대를 획일화하여 학교를 통제하겠다는 정치와 권력의 힘이 느껴진다. 교육의 질은 결코 경쟁이나 효율에 의해 달성될 수 없다. 오히려 이를 황폐화시킬 뿐이다.
엄청난 입시경쟁을 뚫고 사범대에 들어온 우리 모두들, 4년동안 다녀도 전공을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배울 수 있었나. 올바른 교사양성과 임용에 대한 책임은 미루어두고 경쟁으로 교사의 질을 높이겠다는 발상은 갓 태어나 걸음마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100미터 경주를 시키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앞으로 또 전국의 수 많은 교사들이 바로 이 도덕성의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교원평가제라는 평가를 가장한 권력과 통제의 힘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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