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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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의 이유 찾으려면 바로 앞뒤 문맥부터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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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6 14:02
수정 : 2005.11.0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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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출처: 고교 교과서 <문학㈛>(상문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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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기의 언어영역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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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줄’
[줄거리] ‘나’는 승천한 줄광대에 대한 기사를 취재하기 위해 C읍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나’는 서커스단에서 트럼펫을 불었던 사나이로부터 승천한 줄광대인 ‘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운’의 아버지인 ‘허 노인’으로부터 줄타기를 배운다. 그는 비록 서커스단에서 일하는 광대이지만 그는 줄을 탈 때에는 줄타기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철저한 장인 정신의 소유자이다. ‘허 노인’은 굉장히 엄격하고 완벽하여서 좀처럼 ‘운’에게 줄에 오를 기회를 주지 않는다. ‘운’이 줄타기를 배운 지 5년 만에 ‘허 노인’은 아들과 함께 줄에 오르고, 그날 밤 줄에서 떨어져 죽는다. 어느 날, C읍에서 공연을 마친 ‘운’은 한 여인에게서 꽃다발을 받고 그 여인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 여인은 그 사랑을 거부한다. 여인이 사랑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줄 타는 모습이었음을 깨달은 운은 줄 위에 올라 최후의 연기를 하다 죽는다.
‘나’에게 이야기를 모두 들려 준 후 트럼펫 부는 사내는 숨을 거둔다.
[주제] 장인 정신의 추구와 현대인의 가치 상실 비판.
[해설] 이 작품은 신문 기자인 ‘나’를 중심으로 한 바깥 이야기와 2대에 걸친 줄광대의 삶을 중심으로 한 안 이야기로 구성된 액자 소설이다.
허 노인에게 줄타기는 삶의 절대적 가치이다. 아들인 운 역시 그러한 아버지의 가치관을 이어받는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줄타기를 할 수 없게 되자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절대적 가치인 줄타기가 변질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승천’을 한 것이다. (그림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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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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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작품의 서술자인 ‘나’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고 타성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보여준다. 즉, 이 작품은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실천한 ‘허 노인’,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서커스 단장의 요구에 따라 재주를 부리며 방황하던 ‘운’, 무의미한 일상에 젖어 있는 ‘나’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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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제
[지문] ㈎ ─남 기자. 이번에 고향엘 좀 다녀오시오.
뜻밖의 호의였다.
나는 조금 의아스런 얼굴을 지었다.
나는 문화부 기자 가운데서 근무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문화부장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부장의 호의가 수상쩍었으나 어쨌든 잘됐다 싶었다. 그러지 않아도 나는 어디나 좀 훌훌 한 차례 떠돌아다니고 싶던 참이었다.
─한 며칠 묵으면서 이걸 좀 이야기로 만들어 오시오.
어디서 얻어들었는지, 부장은 C읍에 승천(昇天)한 ‘줄광대’가 있다고 하더라면서, 상당히 근거가 있는 이야기여서 재미있는 기사 거리가 될 수 있을 테니 좀 자세히 취재를 해오라는 것이었다.
─좀, 어려운 일이군요.
─그럼 남 기잘 포상 여행이라도 시켜주는 줄 알았소?
─그게 아니라 거짓말 같은 걸 참말로 만들어 오라니 말입니다.
─허허…. 남 기잔 문학적 센스가 있는 사람이니까 잘 해낼 겁니다.
나는 부장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문학적인 센스라는 말엔 입 속이 썼다. 그것은 내가 문학을 지망했으면서도 한 편의 작품도 쓰지 못했다든지 하는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우선 나에게는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건 전부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에 어떤 소설적 질서를 부여하는 능력이 없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면 멀쩡하게 조리가 정연하던 생각의 흐름이 갑자기 혼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말도 적합지가 않다. 나의 머릿속은 혼란이라는 말로 딱 잘라서 규정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결국 내가 소설을 쓸 수 없다는 것은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였다. 부장이 나에게 문학적인 센스가 있다고 한 것은 단지 내가 문과를 나왔다는 이유에서였을 뿐 나를 비꼰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비위가 더 상했다. 그러나 나는 대답했다.
─어떻든 가보겠습니다.
㈏ “그러니까 허 노인이 한 번 발을 헛디뎠던 다음날이었지요. 마침 그날도 나는 거기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허 노인이 아들의 줄타기를 보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줄 위에 있는 운이 아니라 무섭도록 줄을 쏘아보고 있는 노인의 눈과 땀이 송송 솟고 있는 이마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인은 갑자기 ‘이놈아!’ 하고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줄 밑으로 내닫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야 나는 줄 위를 쳐다보았지요, 그런데 운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그냥 줄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이놈… 너는 이 아비의 말도 듣지 않느냐?
하고, 줄을 내려왔을 때 노인이 호령을 했으나, 운은 역시 어리둥절해 있기만 했어요. 내가 놀란 것은 그때 허 노인이 빙그레 웃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는 그 길로 곧 함께 주막 술집을 찾아들어갔습니다.”
[문제] ㈎의 내용으로 보아 ㉠의 이유로 적절한 것은?
① 흥미 위주의 기사를 쓰라고 하는 문화부장의 강요로 인해
② 소설가로서 문학적 표현 능력이 떨어진다는 자괴감 때문에
③ 자신의 글쓰기를 무시하고 비웃는 문화부장의 태도에 화가 나서
④ 자신이 쓰고 싶은 기사거리를 찾지 못한 채, 주어지는 일만 하고 있어서
⑤ 진실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자신이 떠올라서
[풀이] 정답 ⑤. 여기서 ‘문학적 센스’란 ‘거짓말 같은 걸 참말로 만드는’ ‘문학적 기교’를 의미하는 것으로, 줄광대의 이야기에 독자들이 호기심을 가질 정도로 윤색하여 써 보라는 의미이다. 즉, 글쓰기를 진실의 전달이 아닌, 흥미의 제공이라는 수단적 의미로 보고 이를 ‘나’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장의 이 말은 ‘나’에게 역으로 하나의 재주와 같은 글쓰기가 아닌 진실된 소설 쓰기가 불가능한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즉, 진실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자신을 떠올리고 이에 기분이 언짢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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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노트
이유의 추리
인물의 발화와 행동의 이유는 서사 구조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글의 전체 흐름 인물의 성격, 사건, 배경 속에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시된 부분의 앞뒤 문맥을 찾아보면 좀더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 문제의 경우 “결국 내가 소설을 쓸 수 없다는 것은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였다”라는 부분이 결정적인 힌트가 되었다. 이처럼 글의 앞뒤 문맥을 살펴 결정적인 이유가 제시되어 있는지 찾아본 후에 글의 전체 흐름을 보면 이유를 추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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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기/ 언어영역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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