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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의 주인공 라파엘이 5년동안 살았다는 유토피아 섬의 가상도(판화).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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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이건 그냥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지요.” 우리는 오늘날 이런 말을 자주 듣고 산다. 이는 단선적인 인과 관계를 파악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떤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체 구조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다. 쉬운 예로, 얼굴에 뾰루지가 계속 난다고 뾰루지의 고름을 계속 짜내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몸 전체의 호르몬 기능을 파악하고 조정해야 문제 해결에 이를 수 있다. 과로로 코피가 계속 난다고 피를 닦고 코를 솜으로 틀어막는 것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몸을 쉬게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홍수가 날 때마다 대피하는 게 해결책이 아니라, 치산치수를 하고 물길을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1516년)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없는 장소’라는 의미의 ‘유토피아’라는 말을 이상향의 대명사로 확산시키며 근·현대 이상 사회론의 효시적 역할을 한 공로가 있다. 서구 근대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 출간된 이 작품에는 근대성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열쇠들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제의 해결에 구조적 접근을 시도하라는 가르침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유토피아> 제1권은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이고, 제2권은 이상 사회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는데, 구조적 접근은 양 쪽 모두에서 두드러진다. “교수형 처해도 들끓는 도둑 해법은 생계수단 주는 것”사회문제 뿌리 탐색해본 근현대 이상사회론의 효시
제1권에서 유토피아를 여행하고 왔다는 라파엘이 영국인 변호사와 나눈 대화의 내용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변호사는 당시 도둑질에 대해 취해졌던 준엄한 조치를 매우 열렬히 찬성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도둑질하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교수형에 처하는데(한 교수대에서 20명이 동시 처형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까지 말한다) 왜 도둑이 줄지 않을까 의아해 한다. 그는 이것이 ‘참 묘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에 라파엘은 즉각 반박한다. “무엇이 묘하단 말입니까? 도둑을 다루는 이 방법은 공정하지도 못하고,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한 것이 못 됩니다. 처벌로서는 너무 가혹하고 억제책으로서는 매우 비효과적입니다. 가벼운 절도죄는 사형을 받을 만큼 나쁜 짓이 아니며, 또 그들이 양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훔치는 길밖에 없다고 한다면, 아무리 엄벌을 가해도 절도를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당신들 영국인은 나에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학생들에게 매질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무능한 교사를 상기시켜 줍니다. 이러한 가공할 처벌을 가하는 대신, 모든 사람들에게 생계 수단을 마련해 주어, 아무도 처음엔 도둑이 되고 다음에는 시체가 되는 절박한 필요에 봉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라파엘의 말은 삼척동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사회적 비행과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만사해결책이라는 입장을 굳건히 지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구조적 접근은 이미 근대 여명기의 사상이 강조한 것이지만, 지금까지도 모든 분야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인류 역사가 발전한다고 해도, 사람들의 의식은 곧잘 원시 사회로 돌아간다. 제2권에서는 구조적 해결책에 관한 예들이 좀 우스꽝스러울 수 있지만 매우 진지하게 소개된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무역으로 막대한 금과 은을 축적해 놓았는데, 그것은 주로 전쟁시에 물자와 용병을 사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공적으로 다량의 귀금속을 저장하고 있어도 사적인 보물로 소유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것이다. 라파엘의 보고에 의하면,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여기도록 습관 들어 있다. 가정에서 쓰는 요강과 같은 불결한 일상용품은 금이나 은으로 만들며, 노예를 묶어 두는 사슬이나 족쇄는 순금으로 만들고, 죄수는 금반지, 금귀고리, 금목걸이로 치장하며 아예 금관을 씌워 주기까지 한다. 또한 아이들은 금강석 같은 보석들을 장난감으로 가지고 노는 데, 크면서는 유치하게 여겨 자연히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 그들은 황금과 보석을 경멸하게 하는 모든 방법을 습관화한다. 국가는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귀금속을 모아 두었다가 전쟁 경비 등 공적인 데 사용한다. 이것이 유토피아 사람들의 해결책이다. 우리에게는 우스꽝스럽지만 유토피아에서는 실제 적용하고 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라파엘처럼 유토피아를 여행하고 나면 믿게 될걸. 영산대 교수 anemoski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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