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1.06 16:33 수정 : 2005.11.07 13:58

아낌없이 주는 나무

여름에는 오히려 시원한 기분으로 흐뭇하게만 바라보았으나, 이젠 전혀 시원하지 않을 것 같다. “아그들아. 고추 얼어, 열람실로 들어가 마루바닥에라도 앉아서 봐.” 하지만, 아직은 체온으로 시멘트 바닥을 데울 만한지, 한사코 괜찮단다. “시원해요, 여기가 더 편해요.” 편하다구? 그럴지도 몰라. 네가 벌써 자유를 아는구나. 엉덩이는 차가울지라도 복도 서가에 기대 앉아 책 읽는 마음은 자유로운 게지.

독서 골든벨 대회를 앞두고 도서실 손님이 부쩍 늘었다. 평소에도 열람석이 부족해 복도 바닥에 앉아 책 읽는 녀석이 있는데, 요즘은 더 다글다글하다. 다른 책은 대출이 되지만 열 권짜리 만화 <맨발의 겐>은 두 질밖에 없어 도서실에서만 읽을 수 있으므로 더 붐빌 수밖에.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는 선생님들마다 예쁘다고 난리다. 어쩌면 저리 의젓하게 책을 읽느냐, 도서실만 오면 딴 모습으로 변하냐면서. 그것이 모두 내 공인 양, 책 읽는 아이들이 모두 내 새끼인 양 으쓱하다 보면, 요런 놈들 키우느라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자연과 사람의 손길이 스쳤을까, 저 역시도 크느라고 여러 모로 힘들겠지 싶어 가슴이 뭉클해진다.

1학년 때 본 책이나 만화를 3학년이 된 지금도 보고 또 보는 녀석, 여행기만 읽는 녀석과 만화삼매경에 빠진 아이들. 그림이나 사진이 풍부한 책들만 이것저것 뒤적이는 녀석, 수행평가 때문에 마지못해 듬성듬성 읽는 녀석도 보인다. 무엇이든 읽으렴, 어떤 책이 너와 좋은 인연이 될지 누가 알겠니? 눈감고 음악 들으며 쉬는 녀석. 성교육 책 언저리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슬쩍 가져가는 녀석도 있다. 성교육 책은 사다 놓는 족족 슬슬 권수가 줄다가 어느 샌가 다 없어진다. 그래 읽기만 해라. 그리고 말도 없이 빌려(?)갔듯이 생각나면 조용히 갖다 놓기도 하렴. 너희끼리 부지런히 돌려 읽어도 좋아, 집에 모셔 두지는 말고. 소파에 기대 누운 녀석들도 보기 좋다. 그래 쉬어라. 도서실이 아니면 학교 어디서 쉴 수 있겠니.

종일토록 아이들이 넘치는 도서실. 아침에는 단골 두 학급이 늘 열람실을 차지한다. 열람실 두 군데서는 거의 매시간 수업이 이어진다. 어떤 선생님은 교실로 한꺼번에 책을 빌려가기도 하고. 제대로 활용되는 도서실이니, 참으로 즐거운 비명이다. 게다가 6월부터 보조 선생님이 오셔서 여간 힘이 되는 게 아니다.

점심시간 끝나는 종이 울린다. 실내방송을 한다. “오늘도 도서실 찾아온 멋쟁이들 고맙습니다. 의자도 책도 제자리에 잘 넣어주세요. 내일 또 만나요.” 아이들이 돌아간 뒤, 엉덩이 닿았던 복도 시멘트 바닥에 손을 대 본다. 제법 미지근하다. 얘들아 이렇게 온기까지 남겨주어 고마워. 도서실도 책들도 너희에게 이만큼 따뜻했니?

박경이/충남 천안중 교사 iee5808@hanmail.net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