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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7 11:42 수정 : 2005.11.07 11:42

오늘은 영희가 나를 만나자마자 눈물이 글썽거리더니 이내 곧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왠만한 슬픈 영화에서도 볼수 없을만큼 굵은 눈물을 서럽게 흘리면서. 내가 혹시 무슨 잘못을 했나. 아니면 집에서 꾸중을 들었나. 여러가지로 짐작해보기도 하고 이유를 물어보기도했지만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

5분을 그러다가 겨우 울음을 진정하고 들어본 이유인즉. 조금이라도 공부를 잘 해보려고 1학년때 수학선생님께 찾아가서 어떻게 공부를 하는게 좋겠냐고 질문을 했더니 질문의 답은 안해주고 요즘 성적이 왜 이리 떨어지느냐, 언니는 안그랬는데 너는 왜 그러냐는둥 온갖 마음의 상처를 주는 말들만 쏟아부은 것이었다. 얘기를 들으며 도대체 그런 사람이 학교의 교사로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될 지경이라고 영희를 위로했다.

하긴 나도 선생님에 대해서는 별로 좋지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뭐 그리 애정을 가지고 나를 보아주는 선생님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선생님에 대해 별다른 기대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았다. 수능을 보고 대학원서를 쓸때 담임은 노골적으로 반 친구들이 모두 듣는 자리에서 내 성적을 입에 올리며 서울에 있는 대학은 가지말라고 잘라 말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무어라 마음속에 치미는 것이 있었지만 그 때만해도 뭐라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속으로 분을 삼키고 이를 굳게 물고 꼭 내가 가고싶은 대학을 가서 복수를 해주리라는 비장한 각오를 세우는 것 밖에는.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며 교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말라고 말하고 나니 마치 교사의 대단한 권위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를 멈추라는 엄포처럼 느껴져 그에 대한 변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졌다.


그러나 시험에 들게 하지말라고 주문한 것은 올바른 교사의 양성을 위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원평가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었지 결코 무사안일과 학생 권리침해, 철밥통사수에 여념이 없는 전국의 많은 선생님들에게 피신처를 마련해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음을 밝힌다.

십여년전 나의 학창시절에도 그러했고, 다시 10년이 넘게 지난 오늘에도 영희가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그토록 모멸적인 이야기를 듣고 서럽게 눈물 흘리고 있는 이유도 모두 그 대단하신 선생님들 때문이 아닌가.

오늘 다종다양한 기술과 경력을 가지고 이 불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선생님들은 너무나도 많다.

전교생의 절반을 성추행하거나 검사인 학부모의 부탁을 받고 성적을 조작한 선생님들이 1등일 것이며, 학생지도의 명목으로 수백만원씩의 촌지와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교사도 할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파렴치한 선생님들이 2등이며, 모의고사 성적표를 전교생이 볼수 있도록 게시하고 성적이 오른 학생들을 방송으로 직접호명하며 격려하고 학생들이 무슨 권리냐며 그저 시키는대로 하라고 언성을 높이고 그저 오늘도 사랑의 매를 연신 드는 선생님들이 3등이며, 교재연구와 수업연구는 미뤄두고 같은 말만 반복하는 수업에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어느새 바쁘다며 도망가고 마는 선생님들이 4등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교사에 대한 평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방패막삼아 그 뒤에서 자신의 안위나 챙기고자하는 교사가 있다면 평가제가 필요하다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정신을 차리기 바란다.

우리나라는 해방후 짧은 기간동안 많은 발전과 쾌거를 이룩해왔다. 독재와 군부로 얼룩진 정치는 이만큼이라도 민주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아직 그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지못하고 있지만 경제도 양적인 성장에서는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하다. 이 밖에도 삶의 질을 결정하는 다양한 여건들이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변하고 발전하고 있는데도 유독 대한민국의 교육만이 아직도 수십년 전의 문제들을 고스란히 떠안고 정체에 정체를 거듭하다 더 심하게 곪아터지려는 지경이 되었다. 누구에게 가장 큰 책임을 물어야할까. 물론 철학도 비전도 없이 남의 것 베끼는데 급급했던 교육당국에게 1차적인 책임을 물어야할 것이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주체인 교사야말로 가장 큰 책임을 느껴야할 장본인이 아닐까 싶다.

모두가 21세기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미래를 떠밀고 나갈 동량인 어린 세대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어야할 교사들은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원평가제를 둘러싸고 말이 많다. 그러나 반대를 하려면 명분이 있어야한다. 그 명분은 안량한 자존심이나 교사의 권위가 아니라 교사 스스로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혁신의 의지여야한다. 선생님, 다시는 영희를 울리지 마시라. 제발 부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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