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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7 11:45 수정 : 2005.11.07 11:45

영화 '말아톤'을 본 초등학생이 '건강한 몸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고 감상문을 썼다. 고등학생도 다를 바 없다.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시를 읽고 이렇게 썼다. '영화를 보기 전에 애국가를 들어야 하다니, 그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아이들은 늘 감사한다.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지 않은 것도 감사하고,끔찍한 동족 상잔의 남북 전쟁기에 태어나지 않은 것도 감사하고,저 7, 80년대의 암울한 독재 정권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도 감사한다.처절한 가난에 처해 보지 않은 것에도 감사하고,큰 사고 없이 살아온 것에도 감사하고, 사지 육신이 멀쩡한 것에도 감사하고,하여튼 온갖 불행이 자신을 피해간 사실에 감사한다.

누가 이 아이들에게 이토록 범사에 감사하는 성품을 가르쳤을까. 더 나아가서 아이들은 참 이해심도 많다.감상문마다 흔히 '나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라고 쓴다.주변의 하찮은 일에는 그다지도 너그럽지 못하면서

역사적 사안에 대해서는 관대하기 짝이 없다. 특히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아이들은 넓은 이해심을 발휘하여 이렇게 쓴다. '그 시대에는 크든 작든 누구나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마 나라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는 위대한 시인이므로 우리 민족의 자랑거리이지 않은가.'

누가 이 아이들에게 이런 관용과 아량을, 그 바탕에 뻔뻔한 자기 합리화를 깔고 있는 관용과 아량을 가르쳤을까. 감사하기 이전에 미안하다고,주변의 장애인에게 무관심했던 자신의 모습이 미안하고,오늘날 극장에서 일어서 애국가를 따라부르지 않아도 되게끔 만들어 주신 분들을 생각하며

자신이 누리는 것들이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앞에 미안하고,내게 주어진 행복이 행여 남의 불행을 잊고 살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미안하다고 써야 하지 앟을까.

더 나아가서 내가 행복하여 타인의 불행 앞에 침묵함으로써 그의 고통의 시간을 연장하는 데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비록 나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는지 모르지만 그건 결코 옳은 일은 아니기에 나라도 용서받을 수 없으리라고, 감상문은 그렇게 써야 하지 않을까.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사회에서 어떻게 미래를 바로세울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으랴. 감사로 치장된 이기주의와 이해를 가장한 자기 합리화가 판치는 사회에서 어떻게 정직한 우리들의 미래를 길러낼 수 있으랴.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로 자기 위안을 삼아서는 안 된다.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거야말로 불행의 당사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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