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말 신자유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한 세계화의 물결이 본격화하면서 한국에서도 영어 공용화를 둘러싼 논쟁이 일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안산시 영어마을에서 외국인 교사가 학생들에게 공지사항을 알려주는 모습. 안산/연합
|
나혜영 교사의 시사 따라잡기
영어 공용어화 어떻게 볼까?
|
[기사원문] ‘영어 공용어화’는 성장 동력과 무관하다
풍부하고 질 높은 노동력은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노동의 질을 끌어올린 것은 앞선 세대의 높은 교육열이었다. 이제 국민소득 2만달러를 향해 가는 도정에서 이 성장동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급격히 진전되는 저출산과 고령화, 뒤처진 교육 현실 탓이다. 교육투자 격차에 따른 소득 양극화의 심화는 남은 잠재력마저 갉아먹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인적자원부는 어제 인적자본과 연구개발을 양대 축으로 하는 국가발전 전략 시안을 내놨다. 차세대 성장동력 분야 핵심인력 양성, 대학의 전문대학원 체제로 개편, 9월 신학기제 도입, 5살부터 무상교육 등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모두 필요성이 제기됐던 방안이어서 별 이론이 없다. 그러나 경제특구와 국제자유도시의 영어 공용어화는 찬성할 수 없다. 이미 불필요한 논란만 야기했던 사안이다.
국제·개방화의 흐름 속에서 영어 구사능력을 높여야 할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일선 학교에서도 질 좋은 외국어·영어 교육 기회가 제공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문화적 정체성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영어 공용어화가 국제 경쟁력 높이기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영어가 공용어인 필리핀·인도·파키스탄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 영어와 전쟁을 치른 프랑스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초등학생이 영어학습에 ‘매진’할 경우 전체 교육 목표가 실종될 수 있다. 사교육 극성과 영어수준 격차에 따른 사회적 격차도 문제다. 홍콩에서 경험한 일이다. 앞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 중국어를 공용어로 할 것인가. 다른 외국어도 그렇지만 영어 교육의 목표는 그 사용자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에 있다. 그것은 영어의 구사능력을 높이고, 공교육에서 이를 실현시키면 된다. 지원할 일이지 의무화할 일이 아니다.
<한겨레> 2005년 10월21일치 사설
[살펴보기]
영어 공용어화 논쟁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말 바야흐로 신자유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한 세계화의 물결이 본격화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지속적으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야 한다는 논쟁이 일고 있다. 영어 공용어화는 정책적으로 도입되지 않았지만 영어 조기 교육과 영어 유학 등 온 나라가 영어 열풍으로 들끓고 있는 현상은 이제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영어 공용어화론이 또 고개를 들고 있다. 아마 지금과 같은 세계화 추세가 지속되는 한, 그리고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 공용어화 논쟁은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다. 위 사설은 영어 공용어화가 실질적으로 국제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데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며 도입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문화적 정체성 문제는 둘째 치고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봐도 공용어화가 국제 경쟁력 높이기에 기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시행할 예정인 영어 공용어화에 반대하고 있다. 영어 공용어화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핵심적인 논지는 무엇인지 각각 살펴보고 자신의 태도를 정리해 보자. |
|
|
[배경지식 쌓기]
공용어(official language): 한 국가 안에서 여러 민족이 서로 다른 언어로 살거나 국제관계가 활발해지면서, 각 국가 간이나 국제연합(UN)처럼 여러 국가가 모여 만든 국제기구 안에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개념.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구성해 언어 면에서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없을 땐 굳이 공용어라는 개념이 필요없으나, 최근 세계화·지구촌화 시대가 되면서 인터넷 등의 매체가 보편화하고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또 미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영어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고, 이로 인해 영어 공용어론이 대두되고 있음.
영어 공용국: 국립국어연구원 자료에서는 현재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를 56개국으로 잡고 있음. 브루나이·스리랑카·싱가포르·인도·파키스탄·파푸아뉴기니·필리핀(이상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나우루·마셜제도·미크로네시아 외 8국(이상 오세아니아), 몰타·바티칸·아일랜드·영국·키프로스(이상 유럽), 가나·감비아·나미비아·나이지리아·남아프리카공 외 13국(아프리카), 미국·가이아나·그레나다·도미니카·캐나다·바베이도스·바하마 외 7국(아메리카). (
<한겨레> 2002년 4월8일치 참조)
[예상논제]
영어를 우리나라의 공용어로 사용하자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시]
저는 영어 공용어화에 찬성합니다. 이제는 지구촌 시대입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계화에 편승해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우리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세계어인 영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제 영어는 미국이나 영국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 언어입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민족적 자존심을 가지고 우리의 실리를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우리의 경제적인 실리를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교육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정도면 되지 굳이 국가에서 영어 공용어 정책을 세워야 하냐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영어에 아무리 투자해도 필요한 영어 능력을 터득하기 어렵습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영어를 공용어로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영어 공부에 흘러서 낭비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영어 학습의 높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때문에 영어 공용어화는 하루라도 빨리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움말]
영어 공용어화의 핵심적인 쟁점은 언어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언어를 단순히 의사소통 수단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영어 공용어화론에 찬성한다. 영어라는 수단을 통해서 민족적인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고, 그런 이유로 본다면 공용어화는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에 특별한 의미, 즉 민족의 정체성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관점이라면 영어 공용어화론이 민족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문제가 되기 때문에 공용어화론에 반대한다. 오히려 민족의 이익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언어가 민족의 정체성인가? 영어 공용어화가 민족의 정체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쟁점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해가 정리되어야 한다. 일단 영어가 현재 세계 언어이고 또 영어 구사 능력이 국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는 찬반론 모두 인정한다. 그리고 민족의 발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물론 예외적으로 민족의 가치는 이미 끝났다. 민족의 경계는 사라지고 보편화된 인류만이 남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민족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극단적인 주장으로 보일 수 있으므로 보편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공통점을 보인다. 일단 찬반론 모두 인정하는 부분은 바로 인식을 하자.
먼저 언어가 민족의 정체성인가 하는 점이다. 영어 공용어론의 근거로 언어는 단순한 도구라는 점을 강조한다. 언어가 사람에게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모국어가 우리에게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언어는 하나의 도구일 뿐 그것을 우상처럼 떠받드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언어는 인간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며 인간에게 언어는 곧 문학이며 철학이며 사상 그 자체이기 때문에 정체성과 언어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어 공용어화는 결국 서구 패권주의 문화에 편입되는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자신의 견해를 어느 쪽에 세울지는 세계화와 민족주의의 상관관계, 언어와 민족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나름의 가치 정립을 먼저 해 놓아야 한다.
[기출문제]
● 오늘날을 흔히 세계화 시대라고 말한다. 세계화 시대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는 문제 중의 하나가 공용어 사용에 관한 것일 수 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영어 공용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보시오. (2002학년도 동국대)
●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2003학년도 경희대)
● 최근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또 다른 공용어로 정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공용어는 한국어인데 한국어 외에 영어도 공용어로 지정하자는 주장이다. 영어가 한국어와 함께 공용어가 된다면 정부의 공식문서나 회의를 비롯한 공공장소에서는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표기하고 함께 사용하게 된다.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계화 시대의 경쟁에서 영어능력은 필수적이며, 전 국민의 영어능력 향상을 위해 공용어화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영어 공용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민족의식의 약화를 비롯해서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2003학년도 아주대)
[기출문제 풀이]
사회과학대, 인문대에서 꾸준히 기출 문제로 출제되고 있는 주제이다. 아주대는 토론 면접에서 토론 주제로 제시해, 학생들이 자신의 논지를 얼마나 정확하게 피력하고 설득력 있게 주장을 이어나가는지 평가했다. 따라서 자신의 주장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그 반론을 펴는 것도 중요하다. 영어 공용어화와 관련해서는 민족주의와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더불어 세계화 시대 민족주의 이념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까지 나름대로의 의견을 정립해 두어야 한다. 언어를 단순히 하나의 수단(물질적 가치 중시)이라고 본다면 그 실효성과 효용성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어가 민족적 정체성(관념적 가치 중시)이라고 본다면 민족주의와의 상관 관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상문제]
● 영어는 세계어인가, 미국의 언어인가? 세계어의 기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세계화 시대에 민족주의는 퇴색할 것인가?
● 영어공용어화가 사회적으로 미칠 장단점은 무엇인가?
● 언어는 단순한 수단인가, 민족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가?
서울 예일여고 교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