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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06 08:33 수정 : 2017.06.06 08:37

경제 시스템으로 학급 운영 ‘SEC’
교실별 국가 이름, 화폐단위 정하고
학생들 기업 만들어 직업 체험해
물건 사고파는 등 경제활동 활발
빈부격차 막자 뜻 재산상한제 두기도
규칙 자연스레 나오며 생활지도 쉬워져

‘SEC 학급경영’ 사례

지난달 29일 경기도 용인 왕산초 5학년 1반 아이들이 기업 활동 시간에 자신이 직접 만든 물건을 친구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교실 한편에 ‘자연보석가게’를 연 윤여은양이 솔방울과 조개, 소라 껍데기에 펄이 든 매니큐어를 칠하고 비즈를 붙인 보석 장식품을 팔고 있다. 방울토마토를 포장했던 플라스틱 케이스에 색색의 손수건을 깔아 진열대도 만들었다. “솔방울은 할머니 댁에서 주웠고 조개는 바닷가에서 모은 것을 씻어서 마련했다. 아이들 모두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 신기해한다.” 윤양은 이 장식품을 팔아 ‘4머니’를 벌었다.

맞은편에 ‘새가 읽어주는 캐릭터 미니북’은 이서영양이 친구들과 운영하는 기업이다. 평소 새에 관심이 많은 이양은 놀이동산에서 털갈이로 빠진 새의 깃털을 주워와 에탄올로 소독한 뒤 판매했다. 이양은 공작·플라밍고·금강앵무·사랑앵무 등 색색의 깃털을 보여주며 “취미로 모은 깃털을 활용해 사업을 한번 해보자 마음먹었다. 친구들과 동업해 스티커와 미니북도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용인 왕산초 5학년 1반 교실.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에 학생들의 기업 활동이 한창이다. 각자 기발한 아이디어로 창업을 해 이윤 활동을 벌였다. 초등학교에서 흔히 하는 나눔장터나 물물교환이 아닌 학생이 교사에게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뒤 기업 허가를 받고 정식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 활동은 ‘에스이시(SEC)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SEC’는 ‘Small Economy Classroom’(스몰 이코노미 클래스룸)의 약자로 미국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경제교육을 위해 개발한 것이다. 아이들이 기업을 만들어 운영하거나 부서 활동, 직업 체험 활동 등을 통해 경제관념을 익히고 생활교육이나 학급경영도 가능하게 하는 교육이다. 왕산초는 학급 내 활동을 확장한 버전인 ‘비이시’(BEC·Big Economy Classroom) 프로그램을 5학년 전체 학급에서 운영하고 있다.

가장 먼저, 학급별로 나라 이름과 화폐 단위를 정한다. 아이들이 직접 정한 국가명과 화폐 단위를 보면, 각각 1반은 ‘일급비밀-머니’, 2반은 ‘이빨나라-다리’, 3반은 ‘삼계탕반-에그’, 4반은 ‘사파리-애니’다.

기업 활동을 통해 직업 체험을 할 수 있는 진로교육과 경제교육이 동시에 이뤄진다. 학생들은 본인이 하고 싶은 직업과 관련한 회사를 만든 뒤 벌어들인 이익으로 경제 활동을 한다. 이때 원칙은 실제 화폐로 사 온 물건은 팔지 못한다는 점이다. 뽑기 등 사행성 사업도 안 된다. 이날 학생들은 다른 반에 가서 회사 물건 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포스터를 만들어 복도 이곳저곳에 붙여놓기도 했다.

교사들은 “이 활동이 교육과정과 직접 맞물려 있어 효과가 더 뛰어나다”고 했다. 5학년 사회 교과서에 ‘생산자’, ‘소비자’, ‘화폐’, ‘소득’ 등 경제 개념과 ‘기업의 활동’ 등의 내용이 나온다. 이때 교사가 말로만 설명하면 어렵지만 학생들이 직접 체득하면서 스스로 생산자이면서 소비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기업의 역할과 함께 그들이 어떻게 이익을 남기는지도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돈이 많은 학생은 다른 학생을 직원으로 고용하고, 신문사를 차린 학생은 기업의 광고를 실어주고 돈을 받기도 한다. 홍석희 교사는 “탈세나 부동산(쿠폰) 투기, 대부업, 최저임금 갈등 등 사회구조적 문제가 고스란히 일어나 교사들이 오히려 놀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 교사가 개입해 마음대로 처리하기보다 몇 가지 해결안을 던져서 아이들끼리 갈등을 조율하게 한다”고 했다.

실제 동업을 하면서 성향이 달라서 혹은 이익을 나누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이 경우에도 교사가 직접 중재하기보다 일반적인 기업의 기여도 평가 기준, 이익 배분 방식을 설명하고 아이들도 스스로 만들어보게 한다.

기업 활동이나 부서(직업) 활동을 통해 번 화폐는 쿠폰 사는 데 쓴다. ‘자리 선택권’, ‘체육 종목 선택’, ‘점심시간 자유 신청곡’, ‘과자 파티’ 등 쿠폰 종류는 12가지다. 반마다 판매하는 쿠폰이 달라, 화폐 단위가 다른 옆 반 쿠폰을 사려면 환전을 해야 한다. 물론, 환전 수수료도 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급 은행도 운영하고 예금이나 카드 사용도 체험할 수 있다.

에스이시 프로그램은 경제교육뿐 아니라 생활교육이나 인권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다. 학생들은 활동을 시작하며 반별로 학급규칙을 정한다. 최연정 교사는 “고학년이 될수록 학급규칙이 자기 행동을 제약한다고 생각해 지키는 걸 어려워한다. 이 활동으로 직접 규칙을 만들고 잘 지키면 화폐도 받고 혜택을 누리니까 즐겁게 생각한다. 덕분에 생활지도가 이전보다 수월해졌다”고 했다.

경찰 직업을 체험하는 아이들이 ‘질서부’나 ‘경찰부’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아이들 간 갈등 해결도 원만해졌다. 홍 교사는 “예전 같으면 문제가 터져도 침묵하든지 교사한테 말하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아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작은 다툼이나 폭력 문제가 생기면 바로 관련 부서에 신고한다. 사소한 문제는 자기들끼리 해결하고 어려우면 교사한테 이야기한다”며 “아이들과 소통하며 친밀감도 생기고 반 분위기도 살필 수 있다”고 했다.

전우열 교사도 “우리 반엔 ‘무엇이든 물어보면 알려드립니다’라는 기업도 생겼다. 국가기관 정보원처럼 평소 아이들 상황이나 교실 분위기를 파악하고, 학급에 문제가 생기거나 심경 변화가 생긴 아이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 알려준다(웃음)”고 했다.

“에스이시 프로그램은 교육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 가령, 우리 반은 인성교육과 접목해 남을 배려하는 직업군으로만 부서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사회복지사나 의사, 간호사 등의 직업을 만들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게 했다.”

모든 학생이 이 활동에 적극적인 건 아니다. 소득에 따라 위화감이 생기거나, 기업을 하지 않는 학생은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알려주며 소득이 많은 아이들에게는 누진세를 매겼다. 참여에 소극적인 아이들을 위해 개인이 아닌 모둠에 칭찬을 해서 다 같이 쿠폰을 얻게 한다. 청소를 하거나 집에 있는 보드게임을 가져와 아이들이 함께 놀 수 있게 하는 등 ‘학급 봉사’로 화폐를 벌 수도 있다.

빈부격차를 막자는 뜻에서 재산상한제도 뒀다. 1인당 10머니 이상 가질 수 없으며, 6머니부터는 2주에 한 번 월급을 받을 때 세금을 내야 한다. 박현우군은 “6머니부터 세금이 1머니씩 붙는다. 세금은 국가(학급)에 월급을 주는 것이다. 돈은 한정돼 있는데 애들이 다 갖고 있으면 학급통장이 비어서 운영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활동이 끝난 뒤 학생들은 세금을 어떻게 책정할지, 기업 세금은 어느 주기로 낼 것인지 다음 학급회의 때 논의하기로 했다.

홍 교사는 이 사례를 녹여 지난해 이라는 책도 썼다. 현재 교내 학습공동체를 꾸려 동료 교사들과 학급경영에 관한 노하우를 꾸준히 공유하고 있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학생들이 복도에 붙여놓은 기업 홍보 포스터.

윤여은양이 솔방울과 조개껍데기를 모아 만든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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