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설계 시스템’ 만든 곽상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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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분당고 곽상훈 교장은 '학생 맞춤형 개별화 교육'을 고민하다 학생이 그때그때 활동 내용을 직접 기록하는 시스템 ‘피디에스’(PDS)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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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지화(時雨之化), 줄탁동시(?啄同時).’
경기도 성남 분당고 교장실 벽면에 붙은 사자성어다. “시우지화는 적기에 내리는 비가 초목에 푸름을 더하듯 교육도 때가 있다, 지금 가르쳐야 할 게 있다는 말이다. 줄탁동시는 교사와 학생이 함께 노력해 조화로운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자는 의미다.”
곽상훈 교장의 교육철학이다. 그는 2년 전 진학설계 시스템 ‘피디에스’(PDS·Pathways-map Design System)를 개발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활동 내용을 올려두면 교사가 그 기록을 참고해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에 기재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수시철을 앞두고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와 학생부 기록에 민감해지는 시기가 다가왔다. 내용을 하나라도 더 채우려는 학생과 모든 학생의 활동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 곤혹스러운 교사.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생부를 알차게 만드는 것은 ‘교사 복불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반 30여명 저마다의 특성을 관찰하고 그에 맞춰 성장시키는 것은 교육의 본질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다. 이 시스템은 ‘학생 맞춤형 개별화 교육’을 고민하며 나온 것이다.”
곽 교장의 말이다. 대학도 결과나 점수 위주로 평가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학생 개개인의 역량과 그에 따른 성장 스토리를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학생이 성장한 객관적 기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학생부 기록’으로 교사-학생 갈등 느는 때
학생이 활동 내용 기록하는 시스템 개발
꿈·계획·자기소개·영역활동 등으로 세분화
기록 보면서 교사들은 수업 개선하기도
스스로 공부·생활 관리하게 된 아이들
“자기소개서 쓸 때도 편하다” 소리 나와
곽 교장이 시스템을 만든 건 교육청에서 교육과정 담당 장학사를 6년간 했던 경험이 컸다. “당시 교육과정은 계획을 세워 그에 맞춰 수업을 진행하고 이후 나온 결과를 관리해 학생을 성장시키는, 하나의 종합체라고 생각했다.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노력만으로 되는 건 아니고 도구가 필요했다.”
피디에스를 만들자는 곽 교장의 취지에 공감한 교사 7명이 머리를 맞대 어떤 내용을 기록할지 무슨 기능을 넣을지 등을 논의했다. 가장 핵심으로 여겼던 건 ‘이걸 왜 만드느냐’였다. 교사들은 평소 학생의 관심사와 생각 등을 알면 그 아이에게 맞춰 ‘초점 있는 교육’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학생들에게 피디에스를 설명할 때 “‘어떤 활동’을 했는지 결과보다 그 과정을 통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는지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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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설계 시스템 ‘피디에스’(PDS)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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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에 접속하면 학생들이 개인별 활동 내용을 입력할 수 있는 ‘입력자료’ 항목이 보인다. 구체적으로 ‘나의 꿈, 나의 계획’, ‘자기소개서’, ‘영역 활동’ 등을 기록할 수 있게 한 메뉴다. 학생은 메뉴별로 활동 항목, 작성 일자, 활동 시간, 활동 기간 및 내용을 적는다. 학생들이 기록하기 쉽게 교육 활동의 성격에 따라 기본 항목을 제시해준다. 그 옆 ‘출력 메뉴’는 담임교사나 지도교사가 학생이 적은 내용을 보고 조언이나 상담 등 코멘트를 남길 수 있는 항목이다. 활동 기록 결과는 파일로 출력할 수도 있다.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전담 부서도 만들었다. 진로부 교사 3명을 포함해 총 6명의 교사가 시스템을 맡아 운영한다. 진로나 입시, 자기계발 관련 특강이 열리면 학생들은 원하는 강의를 선택해 듣는다. 당일 밤 12시 전까지 간략한 활동 내용과 느꼈던 것을 피디에스에 올린다. 담당교사가 그 기록 가운데 잘한 사례 등을 참고해 ‘과정 중심의 평가 예시안’을 만들어 해당 특강에 참여한 학생 명단과 함께 동료 교사들에게 보낸다. 교사들은 학생부 기재할 때 이를 참고하고, 혹시라도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한다.
처음에는 시스템이 다운되기도 하고 학생이 애써 올린 내용이 사라져서 불평도 많았다. 아이들은 내용을 빼곡히 채우는 데만 열을 올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적 오류도 수정하고 아이들도 단순히 내용을 나열하기보다 분량을 줄이고 자기 생각을 적는 데 공을 들였다.
시스템 도입 후 가장 먼저 달라진 건 교사였다. 아이들의 활동 기록을 피드백하며 수업 방식도 자연스레 바뀌었다. 학생 주도의 참여형 수업을 하게 된 것이다. 교사들이 수업의 질을 끌어올리면서 자부심도 생기고 학생들과의 관계도 나아졌다.
모든 교사가 전체 학생의 활동 내용을 들여다보니 수업시간이나 동아리 활동 시간, 생활지도를 할 때 소통이 수월해졌다. 한 아이에 대한 특징을 교사들이 공유하며 지도 방향을 개선해나가기도 했다. 학생도 쌓인 기록을 보며 자신이 어떤 활동에 참여했고 당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곱씹으며 자신의 성장 과정을 알 수 있다. 스스로 자기관리가 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교사가 학생 기록에 대한 의견도 남기고 학생부에 구체적으로 내용을 적어주기 때문에 학생, 학부모의 불만도 크게 줄었다. 이전에는 학생부를 기록한 뒤 교사와 학생 모두 찝찝함과 허무함이 남았다. 일부 학부모는 직접 이의 제기도 했고 교사와 학생 간 갈등이 심할 때도 있었다. 지금은 학부모도 자녀 아이디로 시스템에 접속해 기록을 살펴보며 아이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학교를 신뢰한다.
곽 교장은 “아이들이 자소서를 쓰느라 한 달씩 밤을 새우더라. 자소서는 짧은 시간에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학생부를 ‘옮기는’ 것이다. 학생부는 그때그때 아이들의 생각이 쌓이는 것으로 아이들이 실제 보인 역량을 기록했기 때문에 자소서의 근거가 된다”고 했다.
그는 2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교사와 학생의 의견을 듣고 시스템을 보완했다. 가령 학생이 내용을 입력한 뒤 교사한테 알려주는 푸시 기능은 삭제했다. 알람이 너무 자주 울려 교사들이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질문 내용이 어려워 아이들이 장황하게 내용을 채우는 걸 보고 질문을 수정하기도 했다. 교사가 아이가 남긴 내용에 덧붙인 코멘트를 ‘모두 공개’로 했다가 부담스러워 공개 여부를 선택하게 했다.
입소문이 나서 다른 학교에서 이 시스템을 사용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면 무료로 넘겨줬다. 개발업체에 시스템 구축 비용만 내면 누구든 쓸 수 있도록 한 것. 그는 “도구만 가졌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문화와 구성원의 인식이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학교 차원에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활동을 권장하고 기록하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궁극적인 목표는 삶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갈 역량을 스스로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교사 의지도 중요하다. 일이 늘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아이들의 성장보고서를 함께 남긴다는 데 의미를 두고 전문성을 갖추도록 함께 노력한다. 이 부분이 전제돼야 시스템도 유용한 도구가 된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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