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공립 호프초등학교의 연극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묵언훈련’을 하고 있다. 현역 배우인 사라 교사의 질문에 따라 아이들이 몸동작만으로 다양한 표현을 하고 있다. 조윤경 교수 제공
|
캘리포니아 창의교육 경험, 책으로
배 타고 19세기 역사 공부하고
말없이 자기소개 하는 연극수업
돌고래 뇌 직접 보며 과학토론
끊임없이 보고 듣고 느끼는 과정 속
생각·질문 등 자연스럽게 나와 ‘지시·명령’ 아닌 ‘호기심 대화법’ 한 예로 예원양은 “‘선원 되기 프로젝트’ 외에도 과학 시간에 사람과 돌고래의 뇌를 직접 본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뇌’에 대해 배우는 단원에서 선생님이 장갑을 끼고 두 개의 뇌를 들고 교실에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징그러웠어요. 학생이나 학자들을 위해 기증받은 뇌를 갖고 왔다고 하셨죠.” 태어나 처음으로 뇌를 본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 질문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아이들의 질문을 충분히 들어주고 답변하며 뇌의 구조, 역할, 기능에 대해 교사와 학생이 토론했다. 수업 시간에 교사의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이 아닌 ‘호기심 대화법’이 잘 자리잡았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조 교수는 “모두 약속한 것처럼 아이들에게 ‘~해라’ ‘~하지 마라’가 아닌 ‘~하고 싶니?’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며 인내심을 갖고 물었다”며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대화 방식을 통해 자존감과 발표력을 키워주고 있었다”고 했다. 살면서 처음 본 107점짜리 수학시험지 조 교수는 ‘창의행동력’을 키우는 단계를 행동호기심, 행동발견력, 행동결정력 3단계로 설명했는데 이를 캘리포니아의 대표 여가생활인 ‘서핑’에 비유하기도 했다. 보드에 엎드려 양손으로 열심히 저어 바다로 나아가는 ‘패들링’은 ‘행동호기심’ 단계다. 또한 ‘파도 잡기’는 ’행동발견력’ 단계와 같다. 서퍼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응시하듯 자신에게 맞는 파도가 무엇인지 식별해내는 과정이다. 서핑 마지막 단계인 ‘파도타기’는 ‘행동결정력’에 해당한다. 아이들이 자신에게 ‘좋은 파도’를 골라낸 뒤 균형을 잡고 우뚝 서서 해안까지 서핑을 즐길 수 있는 단계다. 이런 단계로 설명할 수 있는 창의행동력의 바탕에는 ‘행동호기심’이 있다. 아이들에게 ‘도전하고 싶은 상황’을 제공하면 자연스레 동기부여가 되고 호기심이 생긴다는 논리다. 지난해 조 교수는 ‘107점짜리 수학 시험지’를 처음 접하고 적잖이 놀랐다. 딸 예원이는 자랑스레 “수학 시험지에는 모르면 안 풀어도 되는 어려운 문제가 섞여 있는데, 그 문제를 풀어서 맞히면 추가 점수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시험 만점=100점’이라는 공식에 익숙했던 그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100점’은 넘지 못할 절대적인 점수인 줄로만 알았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잘 풀면 100점을 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싶었다’고 했다. 정해진 만점인 100점을 맞기 위해 작은 실수도 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한국 아이들과, 새롭고 어려운 문제에 도전해 성취할 경우 만점 이상의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미국의 아이들. 공부에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쪽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점수를 깎아나가는 방식이 아닌, 노력하면 격려하고 보상해주는 교육 시스템이죠. 초등학교 시기는 ‘인생 초보자 시기’잖아요. 못하고 넘어지는 게 당연하죠. 가장 중요한 건 넘어지는 연습, 다시 일어나는 용기 등을 배우는 건데, 한국의 경우 96점 맞았다고 부모에게 혼날 걱정부터 하며 우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 점이 참 안타깝죠.” ‘묵언훈련’하며 몸으로 표현하는 법 익혀 모이기만 하면 시끌벅적 떠들기 바쁜 아이들이 ‘묵언훈련’을 하며 ‘몸으로 표현하는 법’을 알아가는 연극 수업 시간도 인상 깊었다. 현역 연극배우인 사라가 임시교사로 주2회 교육을 진행하며 ‘몸으로 소통하는 법’을 알려주는 시간. 대사를 외우며, 주·조연부터 정할 줄 알았던 수업 첫 시간에 교사는 오직 몸동작으로만 표현할 것을 주문했다. ‘힙합, 로큰롤, 컨트리음악 등 좋아하는 음악별로 모여보기’, ‘치과 가기, 수학 숙제 하기, 시험 보기 중 가장 싫어하는 쪽으로 모이기’부터 ‘태어난 달이 같은 친구들끼리 그 계절을 표현해보기’ 등 예상치 못한 질문들로 묵언훈련을 진행했다. 아이들은 소리 내 말하지 않아도 눈짓, 손짓과 발짓을 섞어가며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자연스레 그룹을 만들어냈다. 말 한마디 없이도 친밀해졌고, 천편일률적으로 ‘빙 둘러서서 돌아가며 자기소개 해보기’ 같은 진부한 수업이 아니었다. 조 교수는 “색깔과 계절 등을 표현하는 몸짓에서 아이들 각자의 개성, 성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학년, 성별, 인종 등의 장벽, 앞으로 맡게 될 주·조연 역할과 관계없이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업을 즐겼다”고 했다. “몸을 움직여 날씨를 표현하고 ‘나무와 꽃’의 기분에 감정이입해보는 경험 등 머릿속을 벗어난 행동이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워줍니다.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몸으로 확장하며 배워나가니 아이들이 학교를 ‘즐거운 곳’으로 느끼더군요. 신나는 학교, 제안하는 교사, 활발하게 움직이는 아이들. 다 같이 ‘파도타기’하며 ‘함께하는 교육’을 경험하는 거죠.” 김지윤 <함께하는 교육> 기자 kimjy13@hanedui.com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