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 직업교육 위탁 과정
제과제빵·아이티·미용·항공·전기 등
일반고 3년생 맞춤 직업교육과정
전문직업학교·산업정보학교서 운영
원적 학교서 신청 방식, 등록금 무료
국가자격 취득 ‘졸업 후 바로 취업’
공부·실습 병행, 생각만큼 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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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고려직업전문학교 제과제빵케이크 과정 학생들이 옥수수식빵 반죽 둥굴리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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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주엽씨는 고3 때 친구들보다 성적이 많이 뒤처져 고민이었다. 주변을 통해 직업전문학교를 알게 돼 담임교사와 상담하고 인터넷으로 학교를 찾아봤다. 이후 고려직업전문학교 스마트전기설비시스템과에 입학했다. 기술직이 학벌의 영향을 덜 받고, 자격증을 취득하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다.
전기 이론을 배우고 전기기능사 과정을 준비하며 필기시험을 통과했다. 공부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서 바로 취업하지 않고 올해 전문학사 과정을 다니며 자격증을 2개 더 땄다. “이곳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실습 때 부품을 조립하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스스로 만족하며 배우다 보니 지금은 편입 생각마저 든다. 내 삶에 전환점이 됐다. 막연히 공부가 싫어서 선택하면 안 된다. 학교에서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학 비진학 청년 인구는 52만8000명이다. 이 수는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일반고 학생 가운데 단순히 성적이 안 좋아서 대학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찌감치 진로를 정해 졸업 뒤 바로 취업을 원하는 학생도 있다. 무조건 덮어놓고 ‘대학부터 가고 보자’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먼저 찾고 ‘필요하면 나중에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창구가 교육부의 ‘일반고 특화 직업능력 개발훈련 과정’(이하 특화과정)이다. 흔히 ‘직업반’으로 일컫는 이 과정은 대학 진학보다 취업을 원하는 고3 학생을 대상으로 훈련기관에 위탁해 전문 직업교육을 진행하는 것이다. 현재 1만3천여명이 참여하고 있고 직업전문학교 말고도 산업정보학교, 폴리텍대학, 대한상공회의소 산하 산업인력개발원 등에서 위탁교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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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교실에서는 케이뷰티전문가 과정 학생이 헤어 파마롤 마는 실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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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전문학교는 고용보험기금을 지원받는 민간 직업훈련기관이고, 산업정보학교는 교육부 산하 공립학교다. 두 곳 모두 학비는 무료다. 직업전문학교의 경우 매달 30여만원의 훈련장려금까지 준다. 교육부 직업교육정책과 관계자는 “직업전문학교는 보통 10월부터 모집한다. 산업정보학교는 11월쯤 각 학교에 모집공고를 내 사전모집으로 선발하며 서울에 6곳, 부산·대구·인천·대구에 각각 1곳씩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제과제빵·아이티(IT)·항공·미용·전기·호텔관광·간호 분야 등 전국에 430여개 특화 과정이 열려 있다.
아현산업정보학교 방승호 교장은 “예전에는 일반고에서 말썽 부린 학생들을 졸업이라도 시키자 싶어 보냈는데, 지금은 진로를 일찍 정한 뒤 진학보다 취업을 원하는 학생도 많이 찾아온다”며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전공을 신중히 고려해 지원해야 한다. 별생각 없이 온 학생들은 힘들어하다 원적교로 돌아가기도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부 산업정보학교나 직업전문학교에서는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원하는 학생은 사전에 전공을 선택해 실제 수업에 참여해볼 수 있다.
단순히 교실에 앉아 수업받기가 싫어서, 대학 갈 성적이 안 돼서 직업교육 과정을 선택했다간 이도 저도 안 돼서 낭패 보기 쉽다. 대부분 위탁교육 과정은 해당 전공 전문지식 외에도 자격증 대비를 위한 암기 및 실기 수업을 중점적으로 한다. 그만큼 공부할 분량도 만만치 않고 빡빡하게 운영하지만, 학생이 열심히 한다면 국가자격증을 하나부터 많게는 세 개까지도 딸 수 있다.
박정훈씨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서울경원직업전문학교도 함께 수료했다.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요리 관련 특성화고에 가고 싶었지만 성적이 안 돼서 못 갔다. 일반고에서 요리학원에 등록해 혼자 배우다 3학년 때 특화과정을 신청했다. “1년간 한식·양식·중식·일식 자격증을 다 땄다. 원적교에서는 수업 듣고 10분 쉬는 수업을 반복해 지겨웠는데 이곳에서는 레시피 짜고 재료 준비하고 요리하고 검사 맡고 청소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갔다.”
박씨는 현재 대기업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 얼마 전 영업을 시작한 ‘오픈매장’이라 밤 11시까지 근무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라 견딜 만하다. “원적교에서 직업반 애들은 공부 못한다는 선입견이 있다. 실제 직업전문학교에 대학 가기 싫어서, 공부 안 하려고 오는 애도 있다. 그런 학생 때문에 수업에 지장이 생기고 진짜 배우고 싶은 사람이 손해를 본다. 설렁설렁 할 거면 차라리 안 오는 게 낫다.”
특화과정 입학을 원하는 학생은 개인이 아닌 소속 학교를 통해서만 지원할 수 있다. 원적교 추천서와 학부모 동의서, 재학증명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선발전형은 서류평가와 면접 위주로 진행한다. 특히 출결과 인·적성 면접을 중요시한다.
일부에서는 일반고에서 이 과정을 잘 모르거나 특화과정 학생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 청소년 관련 기관에서 근무하는 한 활동가는 “직업교육 분야 자체도 다양하지 않은데 학교에서 일일이 관리하기 힘드니까 몇몇 위탁교육기관만 연결해 학생의 선택권이 좁다”고 했다. 그는 “일반고는 진학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교사가 직업교육 기관을 알아보는 경우는 드물며 특화 교육과정이 있다는 걸 모르는 교사도 있다”고 했다.
보통 일반고에서는 특화과정 학생을 따로 편성한 ‘직업반’에 넣거나 일반 학급에 한두 명씩 배정한다. 이들은 평소 직업교육을 받고 한 달에 2~4번 정도 원적교에 가서 기본 교과수업을 듣는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학교에 가도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고 휴대폰을 보거나 그냥 있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형식적으로 오가기만 하는 셈”이라고 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대학생도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은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은 더욱 어렵다. 실제 졸업 후 바로 취업했다가 “인간관계가 힘들거나 근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금방 그만두기도 한다.
처우나 업무 자체가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학생도 있다. 특화과정을 마치고 결혼사진을 촬영하는 스튜디오에서 막 일을 시작한 박아무개씨. 학교에 다니며 자격증을 땄지만 취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수습 3개월 동안 월급은 120만원, 지금은 130만원을 받는다. “처음엔 인맥도 없고 상사한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힘들었다. 학생 때 직업교육도 따로 받지 못했다.” 그는 알바를 하면 지금보다 적게 일하면서 돈은 더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경력을 쌓으려고 버티는 중이다.
지난해부터 제과제빵케이크 전문가, 케이뷰티 전문가, 글로벌마스터 셰프 등 특화과정을 운영 중인 고려직업전문학교의 백경렬 부장은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찾아온 학생들이라 최대한 목표를 달성하도록 자격증 취득과 취업을 최우선으로 하는 건 맞다”며 “이와 함께 사회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일반고처럼 방과후나 창의적 체험활동을 진행해 인성교육 프로그램, 전공 관련 박람회나 업체 방문, 노무 관련 특강 등을 연다”고 했다. 그는 “민간 교육기관이지만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꾸준히 일할 수 있도록 전문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동시에 사회성이나 자기 관리 등 공교육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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