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20 17:47
수정 : 2005.11.2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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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펙에 대한 평가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정부와 경제계 등은 아펙 유치의 경제효과에 큰 기대를 걸지만(왼쪽), 시민·노동 단체들은 아펙이 신자유주의를 가속화시키고 노동자 ·농민 계층의 빈곤을 확대한다며 반대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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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효과’ ‘세계화 반대’
정부-시민운동 양쪽 시각 담아… 학생들 토론 수업 추진
“국가가 옳다는 것만 가르치는 게 편파적”
초점-‘아펙 공동수업’ 불허 논란
정부는 전교조의 ‘아펙 바로알기 공동수업(계기수업)’에 대해 교육의 중립성 훼손 우려가 있다며 불허 결정을 내렸다. 이에 전교조는 아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를 둘러싼 찬·반 양쪽 시각을 균형있게 담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정부의 ‘교육 중립성’ 잣대가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아펙 수업자료는 어떤 내용인가?=전교조가 만들어 일선 교사들이 참고하도록 홈페이지에 올린 아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공동수업 자료는 수업지도안, 학생용 참고자료, 교사용 참고자료, 패러디 동영상물로 이뤄져 있다. 수업 지도안에는 이번 계기수업과 현행 교육과정의 연관성에 대한 설명글 등이 담겼으며, 학생용 자료는 아펙 정상회의에 따른 경제효과 등을 정리한 부산시의 아펙 홍보 자료(‘함께하는 아펙, 도약하는 부산’·1쪽)와 시민단체 아펙반대국민행동의 아펙 비판 자료(‘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 반대’·1쪽)로 이뤄졌다. 교사용 참고자료에는 부산시교육청의 아펙 홍보 수업자료와 세계화 반대 글 등이 실렸다.
국가가 옳다는 것만 가르쳐라?=교육인적자원부는 15일 전교조가 25일까지 실시하기로 한 아펙 계기수업 불허 지침을 교육청을 통해 각 학교에 시달했다. 수업자료 분석 결과 아펙 반대 쪽으로 결론이 내려질 우려가 있어 교육의 중립성을 위배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전교조 관계자는 이런 계기수업은 학생용 자료를 읽게 하고 ‘양쪽 시각을 요약하라’거나 ‘양쪽 시각을 이야기해보자’는 방식으로 진행되므로 특정 결론이 유도될 우려는 없다고 반박했다. 또 현행 7차교육과정의 목표는 민주적 시민을 기르는 데 그 목표가 있으며, 교육과정에 따른 수업편성권은 교사에게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들이댄 교육의 중립성 잣대가 모호하고 자의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진상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한국교육이론정책연구회 연구위원장)는 “정부가 아펙 행사의 경제효과 등 긍정적 측면을 연일 홍보하고 있고, 아펙 반대를 하는 시민운동 흐름도 있다면 그 두 시각을 놓고 학생들이 토론하게 하는 것은 현행 교육과정 안에서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정부의 잣대대로 교육 내용의 중립성 여부를 따지면 부산시교육청이 앞서 수업자료로 돌린 아펙 홍보책자야말로 하나의 시각만을 담았다는 점에서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교육 내용의 중립성 여부를 국가가 재단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이라고 말했다. 7차교육과정은 다양한 계기수업을 권장하고 있으며 토론이 강조되는 계기수업에서 아펙에 대한 긍정적 의견만 제시해야 한다면 토론은 애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계기수업을 이유로 교사를 징계한다면, 국가가 만든 교육과정 자체를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며 이는 결국 국가가 옳다고 하는 것만 가르치라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재연되는 ‘비속어’ 논란=교육부는 패러디 동영상에 대해서도 ‘메가지’, ‘짱박아 놓은 돈’ 같은 저속한 표현은 비교육적이라고 밝혔다. 전교조는 이런 표현은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상황을 패러디 수법으로 표현한 것인데 굳이 몇몇 표현을 문제삼는다면 언제든 표현은 수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 교사는 패러디 물에 사용된 이런 표현에 대해 비속어라고 느낄 학생들은 거의 없으리라고 본다며 이를 문제 삼는 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자 지엽적인 트집잡기 아닌가고 반문했다.
‘독도’는 되고 ‘아펙’은 안돼=올해 전교조와 한국교총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왜곡을 주제로 한 독도 공동수업을 진행했고 정부도 이를 지원했다. 지난달 부산시교육청은 아펙 홍보 책자를 부산지역 초·중·고교에 돌려 수업에 활용하도록 했다. 때문에 아펙 계기수업 불허방침은 정부의 이중 잣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교조는 주장한다. 전교조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사회 이슈를 다룬 논쟁중심 교육이 사회과목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며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참전은 정당한지’, ‘부시가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것이 타당한지’ 같은 주제로 수업이 열린다”고 말했다. 계기수업에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것은 지극히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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