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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0 18:29 수정 : 2005.11.21 13:50

핀란드 하카메차 유치원에서 어린이가 점심을 먹은 뒤 바구니에서 자일리톨 껌을 꺼내 씹고 있다.

유치원 점심 뒤 자일리톨 섭취… 모든 초등교에 구강보건실 보건소 17살까지 무료 치료… 아동 충치발생 7.4개→1.1개로

충치 없는 세상만들기-‘구강건강국가’ 핀란드에 가다

점심을 먹은 아이들이 제 접시와 포크를 따로 모으고, 떨어뜨린 빵 조각 따위는 쓰레기통에 버리더니 문 쪽으로 간다. 탁자 위 플라스틱 통에서 숟가락으로 뭔가를 떠서 입에 넣고는 오물거린다. 손가락으로 집어 먹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이 “푸루카(껌을 가리키는 핀란드말)”라고 부르는 자일리톨 껌이다.

지난 8일 찾아간 핀란드 서부 해안도시 투르쿠 인근 우시카우푼키 읍에 있는 하카메차 유치원의 점심 시간, 3~6살 아이들 스무명은 이렇게 자일리톨 껌을 씹는 게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레나 아이토누르미 원장은 “더 어린 한두 살 아이들에겐 녹여 먹는 부드러운 자일리톨 사탕을 준다”며 점심 뒤 자일리톨 섭취를 꼭 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자일리톨의 나라’ 핀란드의 유치원(또는 보육원) 아이들은 대개 이렇게 점심 뒤 자일리톨 껌을 씹는다. 아침 7~8시께 유치원에 온 아이들은 오전 11시 점심을 먹고나면 자일리톨 껌을 2~3분 동안 씹은 뒤 쓰레기통에 뱉고는 낮잠을 잔다. 칫솔이 바뀔 수도 있어 유치원에서는 칫솔질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교사들은 한두 살 아이들에게라도 그림을 보여주거나 책을 읽어주며 충치예방 교육을 하고, 부모들도 구강 관리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어 집에서도 챙긴다.

이렇게 충치 없애기를 습관처럼 몸에 익힌 결과, 30년 전 ‘충치 왕국’이었던 핀란드 아이들의 충치율은 매우 낮다. 12살 어린이들의 충치경험지수(DMFT)는 1974년 7.4개에서 91년 1.2개로 떨어진 이래 현재 1.1개에 머물러 있다. 핀란드는 72~74년 투르쿠대학 치과대의 카우코 마키넨 교수팀이 핀란드의 숲에 지천으로 널린 자작나무에서 추출한 자일리톨이 설탕만큼 달면서도 충치균(스트렙토코쿠스 뮤탄스균)의 활동을 억제한다는 점을 입증한 이후 75년부터 자일리톨을 시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초등학교에 학교 구강보건실을 운영하고 자일리톨 섭취 권장, 불소치약 사용, 설탕 덜먹기 운동, 구강보건 교육 등에 힘쓴 결과 충치율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었다. 특히 92년 여러 초·중등학교들에 자일리톨 급식을 지원하며 벌인 ‘좋은 습관 들이기(Smart Habit)’ 운동은 자일리톨 섭취를 부쩍 높이는 계기가 됐다.

투르쿠 시내 파스키부오리 공립초등학교엔 아예 학교 안에 치과가 있다. 치과의사 2명과 치위생사·간호사 1명씩이 일하고 치과용 진료의자 3대를 갖춘, 우리나라의 웬만한 치과의원 규모다. 8일 들른 이 학교 치과 진료실은 하지만 매우 한가했다. 500여명의 학생들이 다니지만 이미 충치율이 떨어져 있는 탓이다.

그래도 학생들의 구강 관리는 학교에서 최우선 사안이다. 치과의사 크리스티 요키넨은 “학생에게 충치가 있거나 질환이 발생하면, 수업 시간에라도 치과 진료실에 보낸다”고 말했다.치위생사는 1년에 적어도 한 차례 한 시간씩 올바른 칫솔질 방법 등 충치예방 교육을 하고, 아이들이 이 상태가 나쁘면 치과의사에게로 보낸다. 금속을 대어 치열을 교정하는 것만을 뺀 나머지 거의 모든 치료를 치과 진료실에서 한다. 학부모가 시간을 따로 내어 보건소나 병원까지 데려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학교에서 구강 관리를 챙기는 모습은 지난 5월 수도 헬싱키에 이민해 식당을 연 교민 최문기(43)씨의 경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 3학년 딸을 입학시키려고 학교에 데려갔더니 학교에선 구강검진 기록부터 보건소에서 챙겨오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핀란드 우시카우푼키 보건소의 치과 진료실에서 더 어린 아기의 치아에 끼치는 자일리톨 효과를 비교 연구하기 위해 한 어린이의 이에 자일리톨 액을 묻히고 있다.

세 딸이 투르쿠 시내 바하헤이킬란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부모 야나 마키쿨라스(43)도 아이들의 이 상태를 정확히 꿰고 있었다. 집안에는 아이들이 언제라도 꺼내 먹을 수 있게 자일리톨 껌을 상자에 담아 두고 있다고 했다. 4년 쯤 프랑스에서 살다 3년 전 되돌아왔다는 그는 프랑스에선 거의 개인 치과에 데려갔지만 핀란드에선 주로 보건소를 이용한다고 했다. 둘째 딸 카트리(10)의 아래 어금니를 뺀 것도 보건소에서였다. 17살까지는 전액 무료로 치료해 준다. 학생들의 충치발생률이 크게 떨어져 학교 치과 진료실의 수나 규모를 줄이는 추세라고 했다. 그래서 파스키부오리 초등학교의 치과 진료실은 주변의 작은 초등학교 학생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도 찾는 작은 보건소 구실을 하고 있다.

투르쿠시 보건소에 있는 치과는 대형 치과병원이나 다름없었다. 인구 18만여명의 도시에 있는 이 보건소에선 일반 의사는 20명, 치과의사는 무려 16명이 일한다. 비슷한 인구인 대구 남구의 보건소에 일반 의사가 2명, 치과의사는 1명뿐인 것과는 크게 대조된다. 이 보건소나 학교 치과 진료실은 학생들의 구강기록표를 철저히 관리한다. 이사를 하면 보건소에서 구강기록표를 발급받아 전학할 학교 등에 내도록 한다고 했다.

핀란드가 ‘구강건강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집에서든, 학교나 유치원 같은 교육 현장에서든, 또 보건소 등 공중보건현장에서든 충치 예방 등 구강질환 대처에 온힘을 기울여 온 덕분인 듯했다.

헬싱키·투르쿠/글·사진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자일리톨 액·젖꼭지… 충치예방 연구 온힘

핀란드 투르쿠대가 연구중인 인공 젖꼭지

치아 질환은 한번 발생하면 원상 복구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예방으로 막아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질환으로 꼽힌다. 충치발생률을 크게 떨어뜨린 핀란드에선 그래서 더 이른 나이 때부터 충치 발생을 예방하려는 뜻이 담긴 갖가지 연구와 활동이 활발하다.

보건소든, 학교 치과 진료실이든 어머니가 아기에게 입맞춤 등을 하며 충치균을 옮기는 ‘모자 감염’을 예방하려는 홍보를 적극 펼친다. 곳곳에 포스터가 붙어 있고, 임신부나 학부모에게 모자 감염을 정확하게 알리고 예방법을 소개한 팜플릿 등을 나눠준다.

투르쿠대 치과연구소는 작은 자일리톨을 끼울 수 있게 구멍을 낸 인공 젖꼭지의 효과를 연구 중이라고 했다. 아기의 이가 비틀리게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좀더 편평하고 부드러운 공갈 젖꼭지를 쓰도록 권장한 데서 더 나아가 젖니가 나기 시작하는 생후 6개월 된 아기도 자일리톨을 쉽게 섭취할 수 있게 하려고 궁리한 끝에 내놓은 아이디어다. 아직 시판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이 대학 펜티 알라넨 교수팀이 거는 기대는 적지 않은 듯했다.

우시카우푼키 보건소에선 2년 반 전부터 생후 6개월~3살 어린이 300명을 상대로 절반에게는 정기적으로 입 안에 자일리톨 액을 묻혀주고, 나머지에게는 자일리톨 섭취를 못하도록 해 5년 동안 추적하는 비교 연구를 진행 중이다. 충치 발생을 그 원천에서부터 저지하겠다는 의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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