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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7 16:54 수정 : 2005.11.28 14:07

누구나 박효신을 꿈꾸며 이 학교에 들어오진 않는다. 그러나 다니는 동안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 열심히 하면 남들도 나를 인정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현산업정보학교는 오늘도 꿈을 연주한다.

“하고픈 음악 마음껏 해보자” 졸업장 안주지만… 위탁 교육 실용음악과 3.5 대 1 작곡서 재즈 보컬까지 두루 가르쳐 박효신·휘성·환희 등 거쳐가

아현산업정보학교 가보니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는 지은 지 50여년 된 낡은 학교 건물이 하나 있다. 박효신, 휘성, 환희 같은 대중음악계의 신세대 스타들이 이 학교를 거쳐 갔다. 11월 중순에 있었던 2006학년도 신입생 모집에서 실용음악과 경쟁률은 3.5대 1에 이르렀다.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광주에서, 부산에서, 제주에서 이사와 전학을 감수한 학생들도 많다. 말하자면 ‘명문고’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이 학교는 개교 이래 단 한 명의 졸업생도 배출한 적이 없다. 이상한 학교다 ‘아현산업정보학교’는.

지난 11월 서울시교육청과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서울 동아리 한마당에 초청 손님으로 와 열창하는 선배 가수 휘성.

드럼이 너무 좋아서, 국영수는 뒷전이었다. 밤새 드럼 연습을 하고 나면 수업 시간엔 영락없이 졸음이 몰려들었다. 성적은 바닥이고, 부모님의 한 숨은 잦아들 날이 없었다. ‘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는 어른들의 꾸지람을 밥 먹듯 들었던 김철호(26) 씨는, 아현산업정보학교 음악교사가 되었다. 낮에는 학생들에게 드럼을 가르치고, 밤에는 인디밴드 ‘머핀’의 멤버로 클럽에서 공연을 한다. 그는 1998년 아현산업정보학교 실용음악과에 입학해 99년 2월에 학교를 떠난 1기 졸업생이다.

“남들 눈에는 정식 학교에 적응 못하는 문제아였지만, 고 3때 아현산업정보학교로 옮기면서 ‘음악에 재능이 있는 학생’으로 대접 받았어요. 졸업한 뒤 대학 실용음악과에 진학해 실기교사 자격증을 땄고요.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걸 후배들에게 가르치면서 연주도 하니 더 바랄 게 없죠.”

김 교사는 아현산업정보학교를 자랑스런 ‘모교’로 여기지만, 이 학교 졸업장을 갖고 있지는 않다. 아현산업정보학교는 서울시내 인문계 고교 2학년 학생들 중에서,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학생들이 고교 3학년 한 해 동안 ‘위탁 직업 교육’을 받는 곳이다. 학적은 자신이 다니던 학교(본교)에 둔 채 월요일에는 본교에서 일반 교과과정을 이수하고,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아현산업정보학교에서 직업 교육을 받는다.

서울 학생동아리한마당 컨테스트에 참가해 프로가수 빰치는 노래실력을 선보인 학생들

이 학교가 ‘대중음악 명문학교’로 이름나게 된 건 1998년 실용음악과가 문을 열면서부터다. 허태륭 교사를 비롯한 교사 몇 명이 의기투합해, 실제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음악 수업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일반 고등학교 음악 교사들 중에서 학창시절 밴드 경험이 있는 사람들, 혹은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별도 레슨을 받으면서라도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수소문했어요. 서울시교육청에 악기와 시설을 지원해달라는 요청도 하고요. " 그러나 처음에는 학생들도 입학을 꺼렸고, 아이들을 ‘딴따라’로 만들려 한다는 학부모들의 항의도 많았다. 하지만 선생님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 6월 전국교육박람회 초청 공연의 한 장면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아현산업정보학교 실용음악과는 평균 경쟁률 3.5대 1, 보컬부문 경쟁률은 무려 6:1에 이르는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서울시내 인문계 고교생들에게만 입학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다른 지역 학생들은 고교 2학년 때 근처 인문계 고교로 전학을 해 입학을 준비하기도 한다. ‘음악하고 싶은 자, 오직 음악만 하라’는 실용주의적 수업 방침과 졸업생들의 빛나는 활동 이력이 알려진 덕분이다.

현재 이 학교 실용음악과 교사는 열 두 명이나 된다. 담당 과목은 작곡, 보컬, 재즈 피아노, 팝 피아노,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 관악(섹소폰), 컴퓨터 음악, 음향, 댄스 등이다. 일반 고교의 ‘하품 나는’ 음악 수업에 뜻이 없어 기꺼이 문제아들과 조우한 이 끼 많은 교사들은, 행여 실력이 부족할까 자기 돈을 들여 레슨을 받는가 하면, 학교 안팎 행사와 공연이 있을 때 마다 거대한 음향 장비와 악기들을 설치하고 점검하는 ‘노가다’를 일삼는다.

실용음악과 학생 수는 총 5개 학급, 150명이다. 학생을 선발할 때 드럼 1명, 베이스 기타 1명, 일렉트릭 기타 2명, 보컬 1명, 건반 1명 등 총 6명이 모여 밴드를 구성할 수 있도록 전공 악기의 ‘비율’을 맞춘다. 그래서 실용음악과에는 학급에 상관없이 20여개 밴드가 활동 중이다. 기업이나 기관, 이웃학교 등지에서 공연 의뢰를 받으면, 즉시 학내 오디션이 열리고 각 밴드들끼리 치열한 경합을 벌인다.

학생들은 시창청음(악보를 보면서 연주를 하거나 소리만 듣고 악보를 그리는 법), 화성, 작곡 같은 공통과목을 ‘기본’으로 배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오로지 연주만 한다. 교과목은 같은 악기를 다루는 아이들이 함께 연습하는 전공 수업, 밴드끼리 연습하는 앙상블 수업, 서로의 연주를 듣고 평가하는 무대 수업으로 구성돼 있다. 이 학교 정두리 양은 “밥 먹고 숨 쉬는 시간 외에는 온통 연습시간이지만, 좋아하는 걸 하기 때문에 한 번도 지겹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피아노를 비롯한 건반악기 30여대, 각종 기타 90여점, 섹소폰 30대, 드럼 세트와 최신 음향장비까지 갖춘 이 학교에서, 미래의 음악가들은 마음껏 기량을 닦으며 내일을 꿈꾼다. 졸업 뒤 진로는 각양각색이다. 인디 밴드 멤버로 바로 ‘현장’에 뛰어드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영화음악이나 광고음악쪽으로 가닥을 잡는 아이도 있다. 친구들의 공연 도우미를 자청하다 음향기기에 눈을 떠 방송일을 하는 아이, 졸업도 하기 전에 드라마 삽입곡을 녹음하고 연예기획사 계약을 맺는 아이도 있다. 대학 실용음악과나 작곡과 등에 진학해 또래보다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 아이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이 학교 편지효 군은 “누구나 박효신을 꿈꾸며 학교에 입학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입시 경쟁 위주의 인문계 고교에 다니면서 기가 죽어 자신감을 잃은 아이들이 많다. 그리고 한 해 동안 스스로 놀랄 정도로 변한다. 편 군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 열심히 하면 남들도 인정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당당히 말한다. 아현산업정보학교가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은 ‘연주 실력’만이 아니다.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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