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27 17:30
수정 : 2005.11.28 14:10
아낌없이 주는 나무
매 학기 아동문학 시간에 꼭 빼놓지 않고 해주는 강의가 있다. 어린이 연령 및 발달 단계에 따른 외적 내적 특성을 알려주고, 그에 알맞은 책의 형태와 내용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아동문학은 어느 시기부터 시작되어야 할까요?” 정답을 바라며 던진 질문은 아니지만, 더러 “태교 때부터”라는 대답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죠!” 이쯤에서 즐겨 보여주는 책이<곧 태어날 우리 아가에게>라는 그림책이다.
“밤하늘을 볼 때까지/ 아가, 조금만 더 기다리렴.// 반짝이는 빛 속에서/ 네가 처음 생겨났지.// 어느 날 밤 우리는/ 별에다 기도했어.//우리에게 축복이 내려/ 네가 여기 오게 되길.” 뱃속의 아가에게로 향하는 부모의 지극한 마음을 학생들이 느낄 수 있도록, 나는 사랑의 마음을 담아 천천히 읽어준다. “세상의 드넓은 바다를 볼 때까지/ 아가, 조금만 더 기다리렴.// 숨쉬듯 움직이며/ 달에 끌리는 바다…….” 출렁이는 녹색 파도 그림에 이어, 화면에는 웃고 있는 고래의 모습이 보인다. 바람 속을 치솟아 오르는 새들과, 대지에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수탉들을 깨워 일으키고 올빼미들을 돌려보내는 새벽…….
아가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하나하나 일러주다 보면 어느새 가슴이 따뜻해진다. 맞아.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지. 그림책에서 말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생에는 또 얼마나 많은가! 학생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라 있고, 눈빛은 반짝인다. 우리는 인생의 비극이나 슬픔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철저히 무력한 몸으로 낯선 세상에 전 존재를 던지려는 아기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안심하라고, 우리가 너를 기다린다고,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또 말해주는 일밖에!
나중에 부모가 되면 꼭 뱃속의 아기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당부하며, 특히 남학생들의 눈을 차례로 바라보곤 한다. 아기에게 사랑의 마음을 보내며 실은 부모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허나 그림책이 없었다고 해서 우리들 부모님의 사랑이 덜했겠는가. 태아기에 엄마와 둘이면서도 하나였던 기억, 또 오감으로 세상을 만나던 때에 받았던 많은 사랑의 기억이 우리 몸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음을 말해주다, 문득 눈시울이 뜨겁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내 아버지, 어린 내게 주었던 그 분의 눈빛과 웃음과 사랑도 내 존재에 담겨 있거니…….(*) 선안나/동화 작가
sun@iic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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