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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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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김민식·문성현이 말하는 조기교육 해선 안 되는 이유
“인공지능 시대 영어 조기교육은 국가적 낭비…‘방과후 독서’가 더 중요”
주요 서점에서 외국어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른 영어학습법 책의 제목을 쭉 따라 읽어보면, 영어 배우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처럼 보인다.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 100일 후에는 나도 영어로 말한다> <영어는 3단어로: 내일 당장 대화가 되는 초간단 영어법> <나의 영어 사춘기: 대한민국 영포자들의 8주 영어 초보 탈출 프로젝트>…. 책에 따르면 짧게는 하루 만에, 길게는 석 달이면 영어로 말문이 트인다!
쉬운 ‘어른 영어’, 어려운 ‘학부모 영어’
쉽고 저렴한 학습법이 난무하는 ‘어른 영어’의 반대 쪽에는 ‘학부모 영어’가 있다. 학부모에게 영어는 한 살이라도 더 빨리 시작해야 하고, 고가의 영어유치원은 물론 조기유학까지 불사하게 하는 난제 중의 난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방과후 영어 교육을 금지하려던 교육부는 학부모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고, 1월16일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어른이 배우기에는 쉬운 영어가 아이한테 가르치는 일이 될 때 국가적 난제로 돌변하는 부조리는 왜 생기는 것일까.
2월3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민식 MBC 드라마 PD와 문성현 한국토지주택공사 과장은 이 부조리함을 규명할 수 있는 적임자로 보인다. 이 둘은 지난해 외국어 분야 출판시장을 ‘들었다 놓은’ <영어 책 한권 외워봤니?>(위즈덤하우스)와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넥서스)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써낸 작가다. <영어 책 한권 외워봤니?>는 지난해 10만 부 이상 팔렸고, 이 책에 소개된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은 지난해에만 70쇄를 추가로 찍었다.
이들은 ‘투머치’(too much·격에 맞지 않게 지나친 상황)한 ‘과잉 영어’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적정 영어’를 익히면 된다고 주장한다. 영어 발음이 ‘별로’라는 (한국 사회에서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고, ‘영어 책은 냈지만 영어 인터뷰는 못한다’며 자기 영어 실력을 포장하지도 않는다. 이들의 당당한 비주류 영어를 내 아이가 익혀야 하는 영어의 답으로 삼을지는 기사를 읽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교육학자가 영어 조기교육이 나쁘다고 말해도 부모들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영어 만학도 두 분이라면 말발이 서지 않을까 해서 모셨다. 두 분 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니까, 아이들 영어 교육은 어떻게 하나 궁금했다.
문성현 아들 영어 때문에 어제 또 아내랑 싸웠다. 엄마가 아이에게 아빠 앞에서 영어를 해보라고 시켰다. 그런데 애가 싫어하는 거야. 나도 싫고. 틀려도 좋으니까 큰 소리로 해보라고 했지만 결국 (우리가 없는) 저쪽 구석에서 하더라. 아내는 애를 이렇게 방치해도 되냐고 골이 났다. 영어가 필요한 시기가 오고, 그때 집중해서 하면 된다는 얘기를 와이프는 ‘방치’라고 서운해한다.
김민식 나도 집에서 늘 싸운다. 책을 쓴 이유가 아내와 나의 영어 공부 접근법이 너무 달라서였다. 아내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시켜야 한다 생각하고, 나는 반대한다. 말로 해도 아내를 설득할 수 없으니 책으로 썼다. 나는 영어 조기교육과 관련해 말 못할 상처가 있다. 영어 조기교육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말씀드린다.
득보다 실이 큰 영어 조기교육
어른 영어 책을 쓴 계기가 자녀 영어 교육 때문이라니 의외다.
김민식 어린 시절에 영어를 잘해도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주변에서 흔한 일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후 수업을 폐지하는 게 맞다고 보는 게, 영어 공교육 연령이 낮아질수록 사교육 연령도 낮아지고 비싼 사교육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어머니 ABC는 해서 보내셨어야죠”라는 말이 나오면, 부모들은 아이를 영유(영어유치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 옆집 아이가 필리핀 영어캠프에 갔다와 말문 트인 것을 보면, 자기 아이도 그곳에 보낸다. 필리핀에 갔다오니, 또 미국 갔다온 그 옆의 옆집 아이를 보고 결국 엄마들이 1억원 들여 아이와 함께 미국에 간다. 미국에서는 당연히 영어를 잘할 수밖에 없다. 영어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거기선 영어를 하지 않으면 친구도 못 사귀고 밥도 못 먹으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다. 문제는 한국에 돌아온 뒤다. 미국과 언어 환경이 다르니 빨리 까먹는다. 그걸 막으려고 비싼 돈 내고 귀국 자녀반에 가고, 다시 유학을 간다. 결국 거기서 대학까지 나오는데 한국에서 취업이 되나? 안 된다. 영어를 어려서 시켜야 한다고 믿는 한, 지옥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문성현 솔직히 한국 사람은 영어를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같은 언어환경과 생활환경에서 영어를 잘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영어가 뭘까, 나에게 필요한 영어가 어떤 수준인지 고민하는 게 맞다. 그것에 영어 교육의 답이 있다. 그런데 어른부터 그런 고민 없이 느닷없이 미국 방송 〈CNN〉을 보고, 미국 드라마를 본다. 보기 좋은 영어가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영어를 해야 한다. 외국 여행지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불편함 없이 영어로 잘 해결하면,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달리 본다. 그 정도면 원하는 거 다 얻는 것 아닌가. 쓸데없이 자신에게 필요 없는 공부를 왜 하나. 공부로 하니까 싫어지는 것이다.
김민식 대학 2학년 때 영어 성적이 D+였다. 군대에서 방위병 생활할 때 영어 공부를 시작해 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에 가고, 이 나이 되어 베스트셀러도 썼다.
문성현 학사장교(ROTC)였다. 그때만 해도 학사장교 출신들은 대기업에서 모셔갔다. ‘토익 같은 영어 공부는 취업에 자신 없는 애들이나 하는 거야’라던 시절이다. 군복무 시절에 외환위기가 왔고 전역 뒤 사회에 나왔더니 회사 지원서를 써도 면접에서 불러주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영어 공부를 해야 하나, 그제야 생각했다. 28살 때였다.
김민식 심지어 서른 다 되어 영어를 시작한 거네.
문성현 대한민국, 대통령, 부모님을 원망했다. 왜 내가 이런 불필요한, 써먹지도 않을 영어를 해야 하나. 너무 하기가 싫었다. 안일한 과거에 대한 응징인가 하고 그냥 받아들였다. 서점에 가서 EBS <이지 잉글리시>를 샀다. 고교 이후 처음 보는 영어책이었다. 이후 아침 7시30분 집에서 나와 밤 9시30분 집에 돌아갈 때까지 이어폰으로 영어만 들었다. 구내식당에서도 이어폰 꽂고 혼자 밥 먹었다. ‘너는 고통을 느껴봐야 해!’라는 심정이었다. 일주일 연습한 내용은 주말에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어 거기 나가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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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드는 영어’의 전도사 문성현 과장(오른쪽)과 김민식PD. 김 PD는 등을 연출한 스타 PD로, MBC 파업 때 ‘파업요정’으로도 유명해졌다.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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