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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13 05:02 수정 : 2018.03.13 08:54

“시대착오 성교육표준안 폐기하라”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2월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최근 수정된 교육부 ‘성교육 교사용 자료’
가해자 교육 보다 피해자 대응 위주 여전
“상대방 성적 요구 거절하면 된다” 강조
시대착오·편향적 ‘성교육 표준안’ 그대로
전문가들 “가해행위 방지하는 법 가르쳐야”

“시대착오 성교육표준안 폐기하라”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2월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최근 ‘미투 운동’으로 인해 그간 드러나지 않던 성폭력의 심각성이 주목받는 가운데, 초·중·고교의 성폭력 예방교육이 여전히 피해자가 미리 조심해야 한다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자가 되지 않는 행동을 가르쳐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잇따르지만 2015년 거센 비판을 받고 수정한 교육부의 성교육 교사용 자료는 여전히 피해자 교육 위주의 관점이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최근 수정돼 일선 학교에서 사용 중인 교육부의 ‘성교육 교사용 학습자료(PPT) 고교용’을 보면, 이성과의 소통을 위한 학습 과제로 “수용하기 어려운 성적 요구에 대해 상대방을 이해시키며 효과적으로 거절하는 방법을 알아보자”며 ‘거절이란 무엇인가’ ‘거절의 기술은 무엇인가’ ‘거절의 중요성’ 따위가 나와 있다. 이 자료는 수용하기 어려운 성적 요구를 강요받았을 때 “거절하는 이유를 설명해서 내가 건강과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하라”고 교육하고 있다. 이 자료가 제시한 주요 ‘거절 기술’은 ‘상대방이 볼 때마다 강요하면 상대방을 피하도록 함’ ‘대신 무언가를 생각하도록 해 주제를 바꾸도록 함’ 등이 있다.

우옥영 보건교육포럼 대표는 “성폭력 상황에서 피해자가 조심해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하기 전에 가해자의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미리 알도록 해야 한다. 가해자가 많은 상황에서 피해자 대응 교육도 필요하지만, 성폭력은 대체로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 권력형 성폭력에서 거절의 기술을 학습하게 하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자료는 교육부가 지난해 4월 만들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배포한 것이다. 2015년 학교 성교육을 체계화한다며 처음 개발된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시대착오적이며 편향적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자, 교육부는 성교육 표준안 자체는 그대로 둔 채 논란이 된 각종 교사용 학습자료(지도서, 피피티)를 누리집에서 대거 삭제했다. 이어 삭제한 교사용 학습자료를 수정해 지난해 4월 마지막으로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낸 것이다.

2015년 당시 논란이 됐던 교육부의 성교육 교사용 학습자료에는 ‘데이트 성폭력은 여성이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아 발생할 수 있다’(고등), ‘남성의 성적 욕망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충동적으로 나타난다’(초등1~2) 등 성폭력과 성역할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조장하는 내용을 담아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자료에도 성폭력 예방법으로 ‘우유부단한 태도보다는 단호하게 의사 결정을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등) ‘이성친구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중등) 등 피해자의 행동 지침만을 강조해 비판이 일었다.

지난해 4월 교육부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낸 ‘성교육 교사용 학습자료(PPT) 고교용’

지난해 4월 교육부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낸 ‘성교육 교사용 학습자료(PPT) 고교용’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교육부의 성교육 교사용 자료들은 관련 국책 연구기관이 수정·보완을 요구한 내용도 반영하지 않은 채였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박경미 의원실이 입수한 ‘학교 성교육 자료 보완 및 표준안 운용 실태조사 연구 용역’(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6년)을 보면 “교육부가 만든 피피티 등 교사용 학습자료는 수정이 필요하다”며, “성폭력 예방에 대한 서술은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닌 ‘가해자가 되지 않을 것’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성폭력 피해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피해자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방식의 서술을 하면 안 된다. 폭력 예방을 위해서라면 가해행위가 어떤 이유에서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하며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 농담, 외모에 대한 평가 등이 성폭력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교육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지난해 4월 교육부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낸 ‘성교육 교사용 학습자료(PPT) 고교용’

지난해 4월 교육부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낸 ‘성교육 교사용 학습자료(PPT) 고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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