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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4 14:32 수정 : 2005.12.05 14:05

지는 꽃잎에서도 세상을 노래했던
문자향 가득한 천년 전 우정
파란눈 작가, 은은한 빛으로 담아내

이백(李白)과 두보(杜甫). 중국의 당나라 시절 최고의 시인들이다. 부와 벼슬을 벗어던지고 자연과 벗하며 시와 함께 평생을 살았다. 그런데 그들이 친구였다고 한다. 생존시기를 보니 일단 그렇다. 이보는 701~762년, 두보는 712~770년에 살았다.

최고의 시인들이 같이 어울려 무슨 얘기를 하며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하다.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중국 고대문학 전문가, 중국 시인, 중국 사학자가 아닌 파란 눈의 프랑스인이 이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프랑수아즈 케리젤이 그다.

그가 최근 펴낸 <이백과 두보>(아이들판)는 이백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할아버지가 대신이었던 명문가에서 태어난 이백은 궁궐에서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중 어느 날부터인가 책이라곤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시종장의 온갖 회유와 질책에도 그는 쌀가루로 만든 희고 얇은 종이, 갖가지 붓과 색색의 물감으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마침내 “오늘밤, 우리는 셋이네/ 달과 내 그림자와 나까지./ 마시자!/ 달에게 건배하네.”라고 노래하며 말을 타고 아주 먼 길을 떠난다.

몇해가 흘렀을까. 또 다른 소년 하나가 궁궐에 새로 들어와 밤낮으로 공부만 한다. 두보다. 두보는 1등을 도맡아 하지만 과거시험에는 계속 낙방한다. 두보는 밥산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집을 다녀오던 길에 평소 마음 깊이 존경해오던 시인 이백을 찾아 궁궐로 돌아오지 않고 역시 먼 길을 떠난다. “소리 없이/ 책상 위에/ 꽃잎 하나 떨어지네.”라고 읖조리며.

계절이 여러 번 바뀌고 전쟁이 한 차례 휩쓸고 간 뒤,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찮게도 두보의 고향 주막에서 이뤄진다. 그날 밤을 꼬박 세운 두 사람, 얼마나 할 말이 많았을까. 날이 밝아왔지만 서로 헤어지려 하지 않았다. 이후 두 위대한 시인은 함께 시를 쓰고, 함께 그림을 그리며 둘도 없는 친구로 지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선 웃기부터 시작했는데, 그 웃음소리가 아직도 황하와 세번째 달 너머에서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이백과 두보의 우정 얘기가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함께 하는’ 기쁨을 보여주는 데 더할나위 없이 충실했기 때문이다. 실제 프랑수아즈 케리젤은 작가의 편지에서 “이백과 두보가 살았던 8세기 중국에서 전란이 끊이지 않았다. 우정의 힘으로 시련을 이겨나가는 것,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 그것이 내가 어린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라고 적고 있다.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언어를 빌리자면, 이 책은 도교 사상과 관련이 깊다.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의 어울림, 자엿과 벗하여 사는 즐거움, 모든 근심걱정을 날려버리는 웃음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놀라우리만치 정교하고 깊은 동양의 사상과 철학을 담고 있는 게 경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무슨 사상적 배경이 깔려 있든지간에, 현대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자연의 큰 기운과 시인이 간직하고 있는 상상의 즐거움을 매혹적인 문장과 그림을 통해 전해준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만한 가치와 재미가 충분해 보인다. 마르틴 부르 그림. -아이들판/8800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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