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11 18:27
수정 : 2005.12.1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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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초등학생 어린이가 학교 학예회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바이올린 실력을 뽐내고 있다. 학예회에선 학생들이 친구들과 학부모들 앞에서 장기를 선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가끔은 교사들이 ‘깜짝 공연’을 하는 것도 분위기를 달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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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예회가 있었다. 운동회와 함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 부담이 되는 큰 행사다. 준비과정에서 잡음도 많고, 우여곡절도 많다. 얼마 전 해외연수를 다녀온 동료는 그 나라에서는 큰 연습이나 수준에 대한 부담 없이 무대에 올리니 ‘수준 높은 학예회를 늘 경험하는 우리 나라 교사의 눈으로(?)’ 볼 때는 시시하지만, 하는 아이나 가르치는 교사나 관람하는 학부모나 모두 평온하고 즐겁게 참여해서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보다 선진국에 연수를 다녀왔다는 걸 생각하면 누가 수준이 높은 것인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교육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학예회도 다르게 보인다.
어쨌거나 어린 아이들이 연습하느라고 고생도 많이 하고, 꼼짝 없이 질서 있게 관람도 해야 하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무대에 오른 작품들이 영 시큰둥한 아이들은 더더구나 견디기 힘들어하며 몸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플루트, 가야금 연주, 합창들을 진득하니 감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을 아이 탓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속내를 아는 교사들 얼굴도 밝을 수만은 없다.
그러니 모두가 한바탕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충격적’인 무대를 준비한다고 교사율동이 계획됐다. 프로그램을 꾸리는 분들 생각은 달랐겠지만 무대에 오르려고 한 내 동기는 그랬다. 아이들에게도, 교사들에게도, 학부모들까지도 잠깐이라도 학교에서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즐거운 학교를 보여주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담임을 맡고 있는 6학년은 모두가 남자 교사들이다. 의기투합해서 일하기 좋은데, 역시나 선뜻 모두 무대에 선다고 합의가 됐다.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추억을 남기고 싶다는 동료의 제안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젊은 여교사 몇 분이 함께 했다. ‘멍멍기사’라는 아이들 노래에 맞춰 율동을 짰는데, 담당교사가 가면이고 모자고 망토까지 소품을 완벽하게 준비해 주었다. 스스로 하는 일은 힘들어도 즐겁고 보람 있다. 무대 리허설 때서야 준비된 율동이 너무 밋밋하니 더 망가져야 한다면서 개다리춤을 추가하기도 했고, 기사처럼 칼을 휘두르자며 금방 창고에서 칼 비슷한 걸 꺼내와 휘두르기도 하면서 율동을 완성해 갔다. 대체로 남자들은 망가지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였다.
학예회 날 오전, 오후 두 번의 공연에서 아이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지지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 실수도 많았고, 에라 모르겠다 막춤을 추기도 했지만, 웃는 소리가 강당에 가득 찼다. 학예회가 끝나고 한동안 아이들은 나를 보면 “저기 멍멍기사 간다.” 하거나 “안녕하세요, 멍멍기사 선생님.” 하면서 낄낄거렸다. 학부모님들도 마찬가지다. “선생님, 무서운 줄 알았는데 새롭게 봤어요.”하거나 “선생님 팬이 됐어요.”한다.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다. 동료들도 그렇게 며칠을 즐겁게 이야기하며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그때만은, 모두, 그렇게, 행복할 수 있었다.
김권호/서울 일신초등학교 교사
kimbech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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