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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5 15:55 수정 : 2005.12.15 17:03

남매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정으로 자란다고 믿었습니다.

아주 어릴적 엄마 부모님의 이혼으로 한쪽 가슴에 외로움을 파묻고 살아와서 그런지 어느 한부분이 덜 자란듯한 느낌을 항상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되어 저의 상처를 어루 만져주는 남편을 만나 쌍둥이 키우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연년생을 낳았습니다.

가정을 꾸리며 살면서 사랑만으론 모든게 해결되는 세상은 아니였습니다. 형편이 점점 어려워져 어린 아이들을 맡기고 맞벌이를 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되었습니다. 34개월된 딸아이와 14개월된 아들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게 마음에 걸렸지만 큰 대안이 없었습니다.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돌아서는 아침마다 아이들의 눈가에서는 눈물바다를 이룰 정도였으니까요. 그러고 돌아서는 저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헤어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부모와 떨어져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아픔을 아는 저로서는 더욱더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의 습성이라는 말을 믿으려 애쓰면서 마음을 억눌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마다 즐겁게 등교하기 시작했고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의 이름을 부르면서 잠꼬대까지 하는게 아니겠어요?


어느날 거짓말처럼 우유병도 떼고 기저귀를 떼는가 싶더니 종알종알 수다도 떨고 딸아인 엄마에게 잔소리까지 하며 시어머니가 따로 없을 정도입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얼굴이 점점 밝아졌고 이쁘고 똘망똘망한 목소리로 어린이집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며 신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아개념이 생긴듯 고집을 무척이나 부리더군요. 저는 자주 회초리를 들고 언성도 높아만 갔습니다. 감기약을 먹지 않으려고, 새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고, 동생의 장난감을 뺏으려고 싸우고,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시킨다던가 갖고 싶은 것을 못 갖게 했을 경우는 더욱 심하게 떼를 쓰는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린이집 선생님은 친구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쉽게 약을 먹이기도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친구에게 양보하기도 하고, 안먹던 야채도 맛있게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랑과 칭찬으로 변화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육친의 정이 아니여도 아이들은 휼륭하게 자랄수 있으며 자식을 향한 본능적인 사랑보다 더 숭고한 것이 이 세상에 존재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제 자식외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모든 아이들을 내 자식을 대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날마다 출퇴근 길에 마주치는 어린이집 아이들과 우리 아이가 강아지처럼 뒹글고 할퀴면서 상처도 생기고 훌쩍거리며 울기도 하며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저의 편견과 고정관념은 날려버리고 저또한 한층 더 자란 듯 합니다.

부모가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아직도 전 자라고 있습니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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