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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21 11:33 수정 : 2019.01.22 09:37

국립과천과학관 ‘뜯어보기 체험전’
선풍기, 프린터, 자전거 등
아이들 마음대로 분해 해봐
제품 사용만 하는 게 아니라
내부 구조·부품 관찰하면서
작동원리 깨닫게 해줘

해체 과정에서 나온 부품으로
‘정크예술작품’ 만들기도
창의력,표현력,창의력 계발

지난 18일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물건 뜯어보기 체험전’에 참가한 학생들이 선풍기를 분해한 뒤 유만선 연구관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김태경 기자
원숭이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원동력은 직립보행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인류의 조상은 두 발로 걸으면서 손이 자유로워졌다. 손을 이용해 물건을 잡고 사용함으로써 지능이 발달했다. 인류 조상이 처음 도구를 사용한 게 330만년 전이니까 물건을 만지고 뜯어보는 건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의 본능일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아이들은 “장난감 왜 부쉈어”, “어쩌다 휴대폰 고장냈냐?”라는 지청구를 듣기 일쑤다. 물건 뜯어봤다가는 ‘등짝 스매싱’을 당한다. 평생 ‘형광등 한 번 안 갈아 보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됐다.

오는 27일까지 국립과천과학관에서는 이런 분위기와 정반대의 행사가 열린다. 마음대로 분해해보는 ‘물건 뜯어보기 체험전’이다. 사전 예약 없이 현장에 도착해서 바로 참가하면 된다. 자신이 분해해보고 싶은 제품을 들고 와도 된다.

지난 18일 오후 2시 국립과천과학관 1층에는 30여명의 아이?학부모들이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키보드, 마우스, 선풍기, 환풍기, 프린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DVD플레이어, 카세트플레이어, CCTV용 카메라 등을 마음껏 뜯고 있었다. 오토바이, 냉장고, 세탁기 등 대형 물건도 해체를 기다리고 있었다. 펜치, 니퍼, 와이어스트리퍼, 플라이어, 십자?일자형 드라이버, 글루건, L자형 렌치 등 분해 공구들도 준비돼 있었다.

마침 초등학교 6학년인 배성재군과 신원호군, 신군의 동생인 신철욱(초4)군이 선풍기를 한창 해체하고 있었다.

신군은 “내가 물건 분해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전에 집에서 큰 장난감 여러 개 뜯어봤다”며 “망가진 물건 있으면 궁금해서 내부를 들여다보고 싶다. 나중에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배군도 “나도 이런 게 재미있다. 전에 친구들과 라디오를 분해해봤다”라며 “내부 구조와 어떤 원리로 라디오가 작동하는지 궁금했다”고 덧붙였다.

한데 막상 제품 나사 풀기부터 만만치 않다. ‘물건 뜯어보기 체험전’을 기획한 유만선 연구관이 “드라이버를 마구 돌리지 말고 깊이 방향으로 꽉 눌러 힘을 줘야 해. 안 그러면 나사 머리가 마모돼서 안 풀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이들은 지난 16일 이곳에서 프린터를 분해했었다. 그때 너무 재미있어 다시 온 것이었다. 신군은 “이번 행사가 27일 끝나는데 그 전에 다시 한 번 와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 사전 예약 없이 현장에서 바로 참가

선풍기는 내부구조가 간단하다. 아이들이 프린터 분해할 때는 45분 정도 걸렸는데 선풍기는 20분 만에 해치웠다. 그러나 선풍기에는 전자제품의 핵심인 모터가 들어있다. 모터는 전류가 흐르는 도체가 자기장 속에서 받는 힘을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역학적에너지로 바꾼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것까지는 아직 모른다. 유 연구관이 선풍기 모터를 손에 들고 작동 원리를 쉽게 설명했다.

부천의 한 초등학교 4학년인 오건우군은 혼자서 선풍기 분해를 시작했다. 오군은 타이머와 속도조절기의 작동 원리에 대해 유 연구관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오군은 “집에서 드론 조종기를 분해해본 적이 있다”며 “로봇을 좋아해 나중에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오군의 어머니 조아라씨는 “아들이 장난감, 전자제품, 로봇 등의 내부구조에 흥미가 많다”며 “집에서 뜯어보려면 혼자서는 힘들기도 하고 분해 공구도 없다. 마침 뜯어보기 체험전이 열린다고 해서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5학년인 강선혁군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25㎝에 무게 10㎏ 정도인 팩스기 분해에 홀로 도전했다. 20년 전 구형이어서 밑바닥은 철제 프레임이고 나사가 많아 혼자서 분해를 완료하기는 힘들다. 현박 미디어아티스트가 강군을 도와줬다.

현박 작가는 “이런 제품은 나사만 100개 이상 풀어야 한다. 수리기사들은 전동드라이버를 사용하지만 여기서는 아이들이 직접 드라이버를 손으로 잡고 풀어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강군 혼자서 100% 완전히 분해할 수는 없다. 아이들은 40분 정도 지나면 집중력이 떨어지니까 절반 정도만 분해해 볼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팩스의 겉뚜껑, 측면 판을 뜯어내자 종이를 밀어내는 톱니바퀴가 드러났다. 더 분해하자 냉각팬, 모터, 직경 3㎝, 두께 5㎜ 가량의 스피커도 보였다. 마침내 팩스 기판이 보였고 강군은 커넥터를 분리하는 걸로 작업을 끝냈다.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는 기판이 들어 있는데, 이를 아이들이 직접 보는 경우는 드물다. 현박 작가가 기판의 기능을 설명해줬다.

강군은 집에서 장난감이나 전자제품을 뜯어본 적이 없다. 이날 처음 이런 물건 분해에 도전했다. 1시간에 걸쳐 팩스 절반 분해에 성공한 강군은 “야! 끝냈다”고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물건 뜯어보기 체험전’은 뜯어보기로 끝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은 제품을 분해해 나온 부품을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이른바 ‘정크 예술’이다. 유 연구관은 “원래 제품을 해체한 뒤 나온 부품을 이용해 또 다른 제품이나 도구를 만들어 보려고 했다”며 “그런데 초등학생이 많아 아직 거기까지 나가기는 힘들 듯해서 정크 예술작품 만들기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 ‘세계 희귀 자전거 총집합’ 전시회도 열려

행사장 한쪽에는 제품 분해과정에서 나온 배터리, 기판, 디스플레이, 나사, 기어, 전선 등을 구분해 모아 놓았다. 참가자들은 이걸 가져다가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 100여점이 전시돼 있었는데 조류 모양의 ‘새 인간’, 날아가는 로켓, 공룡 등 다양했다. ‘게임기의 몸속 탐험’, ‘컴퓨터 밭’, ‘키보드의 속마음’ 등의 작품명이 붙어 있기도 했다.

현박 작가는 “완제품을 접할 때 아이들은 원래 정해진 기능만 사용해야 하는 줄 안다. 이러면 상상력이 제약된다”며 “그러나 해체해 나온 부품을 접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이용 가능성을 알게 된다. 상상력, 창의력이 작동하면서 입체적 표현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유 연구관은 “어른도 마찬가지만 아이들은 완성된 제품을 사용하기만 한다. 현대 전자기술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책으로만 배운다”며 “직접 제품을 분해해 뜯어보면 부품 하나하나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모터, 저항, LED 등을 보면서 부품의 작동원리를 더 쉽게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학교에서 3D프린터 관련 교육을 많이 한다. 한데 사용법만 익히는 것보다는 3D프린터 내부 구조와 기본 부품이 무엇인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알면 교육 효과가 훨씬 더 클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립과천과학관은 올해 12월8일까지 ‘세계 희귀 자전거 총집합’ 전시회도 연다. 자전거 200년 역사를 보여주는 105대의 제품을 전시하는데 1800년대 만들어진 것도 38대나 된다. 또 2월24일까지 ‘과학의 실패’전을 열어, 잘못된 이론으로 알고 있는 천동설과 연금술의 역사적 의미를 재평가한다. 과학은 실패를 바탕으로 발전하므로, 이런 이론이 과학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본다.

김태경 <함께하는교육> 기자 ktk7000@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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