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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9 14:27 수정 : 2005.12.19 15:40

수능시험 결과가 나왔다. 기대치 이하의 성적표를 받은 수험생의 안스러운 모습이 신문에 실린다. 점수에 따라 갈 수 있는 배치표가 제시된다. 입시전문기관에서 만든 표에 따라 자신이 갈 수 있는 대학과 학과를 찾느라 고심한다. 전문기관의 유료상담까지 받는다. 그래도 기대를 충족하기 어렵다. 대학의 순위가 분명하다. 어느 대학을 입학하느냐에 따라 본인은 물론이고 가문의 위상까지도 영향을 받는다. 성적표가 부실한 부모들은 안부 받기도 겁난다.

사람의 능력을 철저히 학력으로 평가하는 한국 사회에서 시험은 극히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 시험 자체가 고통이 아니라 그 결과를 수습해야 하는 고통이다. 열패감으로 청년 시절을 시작해야 한다. 그 열패감은 부모 함께 맛보는 쓰라린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들 서울대를 생각한다. 아쉽지만 고려대나 연세대도 괜찮다. 한 발 더 양보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만 가도 열패감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대 가면 좋다. 교육환경이 우선 좋다. 나오면 취업과 승진도 잘 된다. 소위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꽤 높다. 학력과 학벌이 결합되어 그 위세는 막강하다. 그래서 공부를 매우 잘하고 수능 성적도 아주 잘 나오는 학생들은 서울대 가면 된다. 서울대 가기 다소 버거운 성적은 배치표에 따라 원서 작성하면 어려울 건 없다.

문제는 명문대 갈 조건이 아니 되는 수험생들이나 부모들의 고통이다. 일체유심조. 마음 먹으면 달라진다. 미련을 버리고 시야를 넓게 보면, 마음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진다. 수험생들이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게 될 20년 후를 고려하면 굳이 명문대 갈 이유가 없다. 명문대 졸업하면 위세를 부릴 수는 있으나, 반드시 사회활동의 성취가 대학서열의 연장인 것은 아니다. 새옹지마. 외려 지금 이름 난 대학 못간 것이 전화위복이 될 가능성 많다. 단지, 20년 후를 내다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권위주의 시절의 찌꺼기가 많다. 연고주의가 대표격이다. 혈연, 지연, 학벌이 현재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년 후가 되면 무력화된다. 서서히 그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권위주의 시절, 권력의 폐쇄적 통제가 사회를 지배했을 때는 끼리끼리 뭉쳐야 했으나, 이제 사회가 개방화되고 세계화 되면서 전면적인 변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건강한 몸과 심성, 그리고 창의적 능력만 있으면 전 세계가 활동의 무대가 된다.

이 추세가 진행되면 20년 후에는 학력과 학벌이 설 자리가 좁아진다. 싫든 좋든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고, 남북의 통일은 이미 시작됐다. 점수 안 나왔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겨울 금강을 한 번 호흡하고 오라. 그리고 통 크게 살 것을 다짐하자. 우리의 상상력은 이제 휴전선에서 그치지 않고, 두만강을 넘고 만주 벌판을 달려 시베리아 유럽까지 확장된다. 20년 후엔 부산에서 출발하는 유라시아 횡단 열차를 타고 배낭여행을 가게 된다. 그땐 미국, 중국, 일본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중동, 인도, 중앙아시아까지도 우리의 생활권이 된다. 이런 시대를 살아 갈 사람들에게 출처도 불분명한 배치표에 맞춰 청춘을 소비하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IT, NT, BT 분야가 유망한 분야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발전의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각국이 이 분야에 집중적 투자를 하고 있고, 대학에서도 중점 육성하고 있고, 많은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유망한 만큼 돈이 집중되고 사람이 몰리게 마련이다. 경쟁 또한 치열하다. 황우석 사태의 이면에도 경쟁 우위에 서기 위한 피말리는 강박증이 작용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다 인정하는 유망 분야를 거듭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은행원은 선망의 직종이었다. 그래서 70년대, 80년대 대학을 나와 많은 사람들이 은행원이 되었다. 그런데 90년대 말 이후부터는 상황이 확 달라졌다. 구조조정을 통해 은행원 50% 이상이 직장을 잃거나 이직을 해야 했다. 최소 20년을 고려한 진로 선택을 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지금 높은 직업선호도를 보이고 있는 직종이 지속적으로 그 위상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런 경우는 없다. 수의사는 반대의 경우다. 애완동물 보급이 확산되면서 수의사는 의사 못지 않은 수입을 올리고 인기 직업으로 변신했다.

과학기술 발전에 힘입은 첨단산업분야의 직업이 유리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고민하지 않아도 이와 관련된 내용은 수많은 경로를 통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외면하고 있거나 관심이 덜한 분야가 시간이 갈수록 유망하고 사회적 가치 또한 높아질 것임이 분명한 것들이 있다. 또 아직 개척 시기이지만 갈수록 전도양양한 분야도 있다.

희진이는 키 크고 차분하며 명민하다. 빵 굽는 걸 좋아한다. 직접 만든 빵을 돌리면서 품평을 받고, 기능을 연마해서, 자격증을 따고, 대회에 나가 입상을 하기도 했다. 3학년 들어 수시 합격. 서울대에 없는 학과다. 신생 대학이라 이름 또한 생소하나, '푸드스타일리스트'를 양성하는 곳이다.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서울에서 관련 자격증 취득을 위해 수강 중이다.

플로리스트

혜진이는 작고 귀엽고 수줍은 학생이다. 꽃에 관심이 많다. 플로리스트를 꿈꿨다. 한국농업전문학교에 진학했다. 국립학교에 남자들은 병역의무 면제다! 졸업 후 농촌에서 정착할 수 있는 자금까지 제공한다. 곧 2학년이 된다. 3년이면 마친다. 농촌에서 꽃농장을 하면서 플로리스트로 활동할 꿈이 진행 중이다.

회주는 동양대체의학을 선택했다. 명문대에 없는 학과다. 선진국에서는 요가, 명상, 침술, 뜸, 기공, 아로마테라피 등을 '보완의학'으로 이미 인정하고 임상에 활용하고 있다. 20년 후가 되면 명상원, 건강원 등이 우리 주변에 많이 들어서고 수요에 비해 전문가는 턱없이 모자랄 것이다. 그때 회주는 전문가가 되어 있다.

부여에 가면 한국전통문화학교가 있다. 문화재청이 설립해서 학비도 싸다. 기숙사도 있고 비용도 저렴하다. 흠이 있다면, 너무 쾌적하다는 것이다. 전통건축, 전통공예, 전통조경, 문화재보존학과 등이 있다. 한의대와 마찬가지로 만학도들이 많이 진학하는 곳이다. 세계적인 대학이다. 전통 건축, 공예, 조경을 전공할 수 있는 세계의 단 하나 뿐인 대학이다.

한국전통문화학교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자연에 대한 근원적 향수는 강렬해진다. 소득 2만불이 넘어서는 시점이면, 호불호를 떠나 사람들은 자연을 찾고 휴식과 건강을 원한다. 이는 선진 자본주의에서 쉽게 확인된다. 인플레를 감안하면, 우리의 경우는 2만 5천불 시대가 되면, 삶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그런데 우리 농업농촌은 최악이다. 농업국가였던 것이 30년 전인데, 이제 농업인구는 350만명에 불과하다. 다 노인들이다. 노쇠한 농촌이다. 희망이 없어 보이기에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난다. 절망의 연속일까?

그렇지 않다. 젊은 일꾼들이 도전할 만한 최적의 공간이다. 증산 정책 일변도에서 벗어나 친환경농업육성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 농촌의 강점인 어메니티를 내세워 도시인들의 휴식 공간이 되고, 학생들의 체험 공간이 되기도 한다. 패기와 건강한 도전 의식은 이런 곳으로 가야 한다. 내년부터는 시범적으로 마을사무장제도가 도입된다. 유급이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농촌이,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의욕과 열정을 태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꽃과 나무로 사람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곧장 답을 내리기 전에 경험한 바를 떠올려 보자. 겨울 지날 무렵 햇살 따사로운 동편 담벼락 낮은 곳에 키 작은 연보라의 개불알풀꽃을 보셨는지. 보았다면 엔돌핀이 확 솟구쳤으리라. 반가운 사람 만난 것보다 더 반갑다. 12월 서리에도 의연히 피어 있는 국화를 보면 또 어떤가? 저 깊은 곳에서 뭔가 뜨겁고 묵직한 것이 꿈틀거린다. 추상의 국화는 "똑바로 살아라" 일갈한다.

새봄의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는 물론이고 초여름의 매발톱꽃이나 동자꽃을 보면 기분이 좋다. 이것들, 아무 말 하지 않고 사람에게 '기의 분할'을 잘 이루어지게 한다. 기분 좋다는 것이다. 반대로 지저분한 곳을 지날 땐, '기의 분할'이 흐트러진다. 기분 나쁜 것이다. 과학적, 의학적 지식 없어도 우리가 체득하고 있고, 직관적 통찰로 알 수 있다. 꽃과 나무가 사람에게 기운을 주는 것을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확인하고 있다. 생약 성분이란 식물에서 직접 성분을 추출했다는 것이다.

산수유 열매. 해열 기능이 있다.

이런 것을 좀더 과학적, 의학적으로 배우고 꽃과 나무를 사람들의 질병 치료에 활용하는 학문이 '원예치료학'이다. 이것을 전공하는 학과는 현재 한국에 딱 한 곳 있다. 대학원 과정은 두 곳에 개설되어 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는 없다.

그런데 학부모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들도 잘 모르고 있다. 이렇게 매력적인 공부를 할 수 있고, 전망이 매우 좋은 데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도 명문대만을 선호하는 학력지상주의가 교육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시와 진로 지도마저 명문대 중심이다. 명문대에 있지 않은 학과는 주목 받기 어렵다. 입시전문기관이나 전문가들 역시 명문대 중심의 정보를 제공한다. 간혹 이색 학과가 소개되지만, 그것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거나 구색 갖추기에 불과하다. 교사, 학생, 학부모의 대부분이 학력과 학벌의 블랙홀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뭘까? 의사, 변호사, 교수, CEO, 아니다. 산림감시원 이다. 독일은 세계대전을 두 차례 치르면서 자체적 에너지 공급을 위해 대대적인 산림녹화를 시작했다. 평야 지대에다 숲을 조성하기까지 했다. 영국과 더불어 산림녹화의 대표적 성공사례에 속하는 나라다. 숲을 조성한 이유가 평화적이지 않았지만, 이젠 평화와 휴식과 치료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잘 조성된 숲은 잘 돌보아야 한다. 돌 볼 인력이 필요하고 전문성을 갖춘 '산림감시원'이 인기라는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산림욕을 실컷 하고 이를 치료행위로 인정받고, 그 내역서를 제출하면 의료보험혜택을 받는다. 침술, 명상이 선진국에서 이미 의료행위로 인정 받고, 보완의학으로 임상에 활용되고 있듯이, 머지 않아 피톤치드 세례를 받는 산림욕도 의료행위로 정착될 것이다.

보물창고

우리나라도 단기간에 녹화에 성공한 세계적 사례로 꼽힌다. 대대적 녹화사업으로 이제 푸른산이 되었다. 이젠 심는 것보다 가꾸는 것이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국가적 역점 사업이기도 하다. 산을 가꾸고 활용하는 부분은 아직 취약하다. 앞으로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이 분명하고, 잘 조성된 숲은 다양한 부가가치를 제공한다. 산에는 온갖 보물이 있다. 금, 은만이 아니고, 산삼과 더덕만이 아니다. 온갖 약초와 나무가 있고, 황토가 있고 야생동물도 있다. 지친 사람들의 재충전 공간이 되고, 모험을 즐기는 청소년들의 심신수련장이 되기도 한다.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산이다.

유나는 산림학과에 입학한 첫해부터, 관련 NGO활동을 하고, 중고생을 위한 숲체험캠프에 참여하고, 조국 강토를 헤집고 있다. 그을린 얼굴. 건강하다. 자신의 삶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들의 모습은 얼마나 넉넉하고 경쾌한 것인지. 꽃을 가꾸고 숲을 가꾸는 일은 정년이 없다. 꽃의 요정을 만나고 숲의 정령에 귀 기울이면서 싹트고 커가는 녹색의 감성은, 우리가 사는 곳까지 푸르게 하리라.

청춘과 푸른 숲, 궁합도 딱이다. 청춘을 부르는 숲.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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