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0 14:23
수정 : 2005.12.20 14:23
요즘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 황금같은 시간 뭐 하면서 보내는 지 아시는지요? 일생 일대 최고 최대의 목표일 수 밖에 없었던 위력의 수능도 끝이 나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아니 차라리 수능 점수 발표일이 영원히 오지 말았으면을 속으로 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간에, 인정 사정 안 봐준다며 그 날은 예정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우리 아이들 곁으로 다가 오고야 말았다.
만나는 아이들마다 온통 벌레 씹은 표정들이다. 사람의 욕심이 어디 그 끝이 있겠는가만 꼭 그래서 그런 것만도 아닌 듯하다. "선생님! 저는 공부한 만큼, 제가 지원하려는 대학이 요구하는 점수 만큼을 획득했지 뭡니까"라며 모 방송국 코미디 프로그램의 어떤 코너에서 처럼 정말 재수없는(?) 녀석들을 도무지 만나질 못 했으니 이거 정말 교사로서 자격이 있긴 있는 건지 원.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굿굿하게 버티며 잘 살고 있다.
어쨌든 그런 우리 아이들이 오로지 그 고지만을 향했다가 이젠 그 곳을 지나쳤으니 맥이 쭉 빠져서는 도대체 할 일을 찾지 못한 채 공황상태를 헤매고 있음을 감히 누가라서 부인할 수 있겠는가. 뭐 고상하게, "얘들아! 더 넓고 큰 학문의 길을 향하려면 겨우 그깟 수능 끝난 걸로 만족해서야 되겠니, 끝까지 학문의 전당인 학교에서 학문에 정진해야지" 라는 헛소리는 저들에게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 할 게 뻔하다. 아무리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도 그럴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런 아이들에게 수능 이후 프로그램을 따로 장만하느라 학교마다 쉽지 않은 일정을 보내고 있다. 정신건강 교육이네, 문화 공연 관람이네, 젊음의 축제 참가네 하면서, 이따금씩 정상수업 프로그램 운영까지 해도해도 끝이 멀기만 하다. 노는 것도 한 두번이지. 적어도 이 짓을 졸업 예정일인 2006년 2월 초순까진 계속해야 한다. 물론 수능 점수 결과를 가지고 맞는 대학을 정해야 하는 선생님과 주변 도우미들과의 상담 과정이 며칠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우리 고3 아이들은 하루 하루를 공부하지 않으면서 어렵게(?) 보내고 있다. 학교 측에서도 정말 공부만 시키면 되는 쉬운(?) 일 말고 졸업 때까지 저들을 이끌고 가야 하니 이 어찌 쉬운 일일까? 그렇다고 혹여 공부라도 시킬라 치면 입이 석자는 나와가지고는 학교를, 선생님들을 잡아먹으려고(?) 난리들일테고 말이다.
정책은 사실은 수능이 끝나면 고등학교 교육이 끝나도록 만들어 놓고선 그 소위 규정된 시간, "수업일수"라는 것을 길게 잡아 꼭 채워야만 하니 이거 뭐가 한참 이상해도 정말 한참이나 이상한 현상일 수밖에 없다. 끝날 때 빨리 끝내줘야 한다. 할 일없이 괜히 질질 끌어가며 시간만 보낸다는 것이야말로 국가적인 낭비가 아니고 무엇이더란 말인가? 하기사 저 위 높은 곳에 계시는 분들께서는 "그러기에 훌륭한 머리들 동원해서 이상적인 수능 이후 프로그램을 잘 운영하라고 지시 내려보내지 않았는가? 그렇게 시키는 데로 하기만 하면 될텐데 뭘 그리 불평들이 많은고"하면서 눈을 치켜 뜨고들 있을 것이고. "지당하신 말씀이시지요. 그래야지요" 할 밖에 딱히 뭐 할 말이 있겠는가?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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