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1 17:24
수정 : 2005.12.21 17:24
철학우화라는 부제가 붙은 장자(莊子)에 관한 책을 읽다가 지은이가 자기 할머니에게 들었다는 어떤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가 어렸을 적에 할머니가 들려주었는데, 암두꺼비가 새끼 낳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내용인즉슨, 꼭 암두꺼비는 오뉴월에 새끼를 낳는데, 그놈이 어미 두꺼비가 되려면 반드시 능구렁이를 만나 잡아 먹혀야 된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능구렁이는 본래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데, 능구렁이에게 잡아먹히기 위해서는 골이 상투 끝까지 나도록 돋구어서 억지로 삼켜버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획대로 그리되면 두꺼비에게는 바라는 바가 되어 후회 없이 기꺼이 잡아 먹혀 죽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이란다. 잡아 먹힌 두꺼비는 그 능구렁이 뱃속에서 서서히 소화가 진행되면서 독을 뿜어내는데, 마침내는 먹이를 삼켰던 그 능구렁이가 요동치면서 죽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뱃속에서 까져나온 두꺼비 새끼들은 그 뱀의 몸을 영양원으로 삼아 파먹으면서 자라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그의 할머니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다. 그런데 지은이는 그 이야기가 본인도 의아스러웠던지 학창시절의 에피소드를 슬쩍 얹어 소개해 두고 있다. 뭔고 하니 당시 학교 생물시간에 그 이야기를 했다가 선생님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고 무안만 톡톡히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반신반의의 심정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잇고 있다. 이어지는 그의 할머니의 이야기다. "이 할미는 무식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장마 때 두엄근처에 뒤뚱거리는 두꺼비를 보거든 근처 담 구멍에 구렁이가 있는지 유심히 보아라. 그리고 한 사흘쯤 후 두엄 속을 보면 죽은 구렁이 속에 오글거리는 두꺼비 새끼들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전에 외조모로부터 들었던 어떤 이야기를 떠 올렸다. '옛날에 담이 큰 어느 아낙이 폐가가 다된 어느 관가 한쪽 방에서 몸을 붙이고 살고 있었더란다. 그렇게 살면서 그녀는 삯바느질로 병든 지아비와 어린 자식을 부양하는데, 하룻저녁엔 가물거리는 호롱불 속에 눈꺼풀이 무거워져 깜박 졸고 있는데, 무엇이 나타나 머리를 슬쩍 건드리더란다. 그러나 아낙은 무서워서 쳐다 보지는 못하고 옆에 놓인 자(尺)를 들어 때리며 밤을 밝혔단다. 그리고 난 후, 이 괴이한 사실을 이튿날 남편에게 말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천정을 뜯기에 이르렀단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냐. 그곳에는 웬 괘가 하나 놓여 있는데, 그 속을 열어보니 누런 금덩이가 하나 가득 들어있더란다.'
그 얘기를 듣던 나는 어린 마음에도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 "에이 거짓말이야 !"하고 강하게 부정을 해버렸다. 그랬더니 외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얘야, 옛이야기 속에는 거짓이란 없단다. 살아있는 생금은 이리저리 혼자 움직이며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거야. 그러다가 착한 사람을 보면 도술을 부려 나타나서는 잘 살도록 보태 주고 간단다" 하시는 것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런 이야기는 가당찮게 꾸며낸 이야기지만, 그러나 외조모님께서 이 얘기를 통하여 어린 손자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있었지 않나 싶다. 즉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복을 받는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그 당시 저자의 할머니도 어린 손자에게 어떤 교훈을 무언중에 전하고자 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그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자기 몸은 죽어도, 아니 죽여서까지도 후손을 잇게 하는 종족보존의 숭고한 삶의 이치를 들려주고 싶어서 한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면 두 이야기는 그 진원지가 하나는 경남 함양 땅이고, 다른 하나는 전남 장흥 땅으로 동떨어진 내용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곳인데, 그러나 담고 있는 의미는 두 이야기 다 매우 큰 시사를 하고 있지 않는가 한다.
특이나 요즘처럼 인명경시풍조가 만연하고, 선하게 살면 바보취급을 당한다며 모두가 영악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세상에서는, 실로 귀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예전에 책에서 본 것으로 산불이 나서 연기 자욱한 속에서 뒤늦게 날아오른 꿩이 있어 가서보니 마지막 순간까지 알을 품고 있었다는 이야기나, 차가 전복된 교통사고 현장에서 어머니가 아이를 껴안고 굴러 그 어머니는 죽음을 당했어도 아이는 살아있더라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을 때와 같이, 그러한 감동이 깃든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야기는 비록 허무맹랑한 내용일지라도 이야기 속에 은연중 삶의 지혜와 살아가는 자세, 그리고 무언의 삶의 의미를 담고있어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세월을 거슬러 더 한층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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