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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 서울특별시회(회장 최수철·발표자) 소속 사립학교 이사장들이 15일 국회 기자회견실에서 2006학년도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기로 결의한 긴급이사회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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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재단의 아픔 사립학교법이 개정되고 나서 보여 주는 사학재단들의 모습은 100가마에서 1가마 덜어내는 고통보다 더 뼈저린 것으로 보인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대한 것이면, 학교 문을 닫거나 한강에서 뛰어내릴 각오를 하고, 순교까지 생각할까? 그 비장함, 지켜보는 사람들을 아찔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궁핍한 시대 속에서 구렁이 알 같은 돈을 다 털어 학교를 세우고, 교육입국의 깃발 아래 세계를 무대로 경쟁 활약하는 인재를 배출해 냈다고 생각하는데, 100가마가 1가마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그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게다가 개방형 이사제, 투명한 회계, 친인척의 배제 등은 상식적인 견지에서도 교육의 공공성 확보와 투명 경영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것이고, 깊이 따져도 마땅한 것이 분명한 것이어서, 차라리 학교 문을 닫아버리고 싶은 울화는 거듭 쓰라릴 것이다. 성찰 없는 사학 그러나 그 울분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그 첫째는 학교는 사기업이 아닌 공공의 교육기관이라는 점이다. 학교를 설립하는 그 순간 사유 재산이 아니라 공공의 자산이 된다. 정해진 형식과 절차에 따라 법률로 그렇게 된다. 학교를 세우면 운영 절차는 법률로 강제된다. 그렇다고 그 연결 고리마저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사유 재산 출연의 연고와 기득권을 인정해서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법인을 구성하도록 하고 이사회를 통해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그럼으로써 잉여 자본을 사회에 환원하고 명예를 얻고 학교 경영의 권리를 행사한다. 그러나 그것도 철저히 법률에 정해진 바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지, 학교가 동네의 구멍가게처럼 운영될 수는 없게 되어 있고, 이는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더 철저하다. 사학재단에서 사립학교의 위상과 권한을 미국이나 영국에 견주는데, 미영의 유수한 사립학교는 우리보다 더 철저한 공익적 마인드와 제도를 갖추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짚어야 할 두 번째는, 우리 사회의 교육을 위해 사학이 얼마나 기여했느냐는 점이다. 이 점은 인정해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OECD에서 사립학교의 비율이 가장 높다. 영국과 미국은 10% 내외이고, 가장 높다는 일본도 20%을 넘지 않는데 비해, 우리는 고등학교가 45%에 이르고, 대학은 80%를 넘는다. 교육의 내실을 떠나 사립학교의 교육적 공헌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공헌의 부피는 크지도 않거니와 절대적인 것이 아님도 분명하다. 우리의 교육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은 피사(PISA :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의 결과를 통해 확인되는 바, 수학과 문제해결력 1위, 고등학교 졸업률 1위라는 성취를 보였다. 그런데 이게 사학의 학교 운영이 건실해서 이룩한 결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배경이 긍정적이지는 않지만, 그 성취는 우리사회가 학력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고, 학벌이 성공을 담보해 주는 기능을 했기에, 교육수요자들의 거친 경쟁에 기인한 것이지, 학교가 선진적 교육환경을 갖추고 질 높은 교수학습이 진행된 결과로 보는 사람은 드물다. 이는 초등과정에서 대학교까지 사립학교를 거칠 수밖에 없는 사립학교의 나라에 사는 국민들의 체험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사학의 자율성은 교육 수요자의 만족도와 질 높은 교육을 위해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이지, 소유와 경영을 위해서 떼써야 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재산을 다 털어 학교를 설립했다면, 이후는 철저히 공익적 자산으로 인정하고, 훌륭한 교육을 통해 명예와 존경을 받는 게 온당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획일적인 입시교육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현실이 엄연한데 건학이념을 소리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고,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교수와 교사들을 해직했던 사학재단이 성찰적 자세 없이, 학교운영의 개방성을 담보하는 법률이 통과되자 자율성을 주장하는 것은, 폐쇄와 독단의 요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교육의 공공성 확보하는 시발점 되길 몇몇 대학들은 이미 동문들에게 학교 경영을 개방하고 있고, 중등교육의 경우 일군의 대안학교들이 투명하고 민주적인 학교 운영을 하고 있다. 학교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한 대학들은 자발적 기부가 끊이지 않고 흑자 운영을 유지한다. 대안학교들 역시 학생, 학부모의 만족도가 일반학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공공성과 투명성이 사립학교의 이념을 구현하고 교육수요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시발점이 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기관으로서 공공성과 투명성을 바라는 사회적 요구에 사학재단이 학교 폐쇄와 신입생 거부라는 칼을 빼고 맞서는 것은, 그 자체 비장해 보이기는 하나, 반교육적이다. 칼을 휘두를수록 사학 개혁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커져갈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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