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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한수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연극 <푸른 고래의 꿈>을 본 뒤 연출자 김병주씨의 사회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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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 온 지체학생 사고 속출 “특수학교로 보내버릴까” 찬·반·중립 ‘세 모둠’ 나눠 배우와 어린 관객들 토론 스스로 묻고 편지쓰며 막내려
장애아 통합교육 상황극으로 녹여내기 #1. 연극 <푸른 고래의 꿈> 초등학교 5학년 교실. 보미, 명석, 다솜이가 공부하는 학급에 채인이가 전학을 왔다. 선생님은 자폐와 정신지체가 있고, 또래보다 두 살 많은 채인이를 ‘잘 돌봐주라’고 당부한다. 고개를 수그리고 어눌하게 말하며 갑자기 거친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채인이. 채인이의 짝이 된 보미는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채인이 때문에 전전긍긍 한다. 명석이는 채인이의 방해로 피구 경기에서 지자 화가 난다. 다솜이는 채인이 때문에 단짝이었던 보미와 영화 구경을 못가자 토라진다. 채인이가 라면을 먹으려다 화상을 입은 날, 채인이 엄마는 다솜과 명석, 보미를 꾸짖는다. 보미는 지친다. 채인을 돌보는 일에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아이들과 마음껏 뛰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어느날 채인이 명석을 밀쳐 다치는 사고가 생긴다. 선생님은 학급 회의를 열어 ‘채인이를 학교에 다니게 할 지, 아니면 특수학교로 보낼지 의견을 모아보자’고 한다. 마침내 학급회의가 열린다. #2. 학급 회의 학급 회의는 무대 밖에서 이루어진다. 이 날 연극을 본 관객들은 경기도 고양시 한수초등학교 5학년 1반과 3반 학생들. 연출자 김병주씨가 사회를 맡아, 방금 공연을 끝낸 배우들을 다시금 무대 위로 불러낸다. “보미와 명석이, 다솜이에게 물어볼 것이 있으면 물어보세요.”
소근거리는 소리, 웃음을 참다 킥킥 거리는 소리. 공연이 이루어진 한수초등학교 음악실에 작은 소란이 일어난다. “다솜이의 별명은 왜 고소미야?” “발음이 과자 이름이랑 비슷해서 그런가봐. 너는 별명이 뭐야? 친구들이 그 별명을 부르면 기분이 어때?” 어린이를 연기하는 배우들과 실제로 어린 관객들이 비로소 말문을 텄다. “보미에게 묻고 싶은데요, 채인이 때문에 친구들하고 극장에 못 갈 때 기분이 어땠어요?” “그동안 열심히 도와줬는데도, 채인이가 화상 입었다고 채인이 엄마가 야단칠 때 속상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자신이 인상 깊게 본 대목을 중심으로 제법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막이 오른 지 한시간 째. 연극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3. 모둠 토론 관객들이 손을 들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채인이를 학교에 다니게 하자는 아이들이 절반, 특수 학교로 보내자는 아이들이 절반, 너댓 명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각자의 의견에 따라 세 개 모둠으로 나누고, 배우들이 한 명씩 모둠에 배치된다. 채인이가 학교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보미’(역을 맡은 배우)는 특수학교로 보내자는 의견을 표시한 모둠에서 토론을 하는 식으로, 배우들은 극중 자신의 의견과 반대 의견을 가진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명석이네 모둠. “채인이가 평생 사회 생활을 하려면 우리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그럼 너는 채인이를 위해서 뭘 할 수 있는데? 채인이 때문에 피구에도 지고, 극장에도 못가고…, 그렇게 피해 보는 건 상관 없어?” 명석 역을 맡은 배우는 천상의 마음을 가진 아이들을 지상으로 끌어내려, 현실과 마주하도록 돕는다. 다솜이네 모둠. “채인이와 같은 반이 되고 싶어하는 여자들만 모아서 반을 만들면 어때요?” “왜 여자들만? 너는 같은 반이 되고 싶지 않아?”“내가 보기에 남자 애들은 여자 애들보다 못된 거 같아서…. 그럼 착한 남자애들과 여자 애들을 모아서 반을 만들까요?”아이들이 배꼽을 잡고 웃는다. 보미네 모둠. “채인이를 위해서는 특수학교가 좋아요. 거기 가면 더 좋은 시설에서 비슷한 친구들과 놀고, 공부도 더 잘 할 수 있잖아요.”“혹시 네가 편하려고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야?” “아니에요. 채인이를 위해서 좋을 것 같아서 그래요.”잠시 침묵이 흐른다. “근데 채인이는 뭘 원할까? 우리랑 같이 공부하는 걸 더 좋아할까?” “맞아, 우리끼리 얘기하는 건 좀 이상해.” 채인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학급 회의가 채인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4. 무대 뒤 이야기 배우들의 공연을 볼 때는 남의 이야기로, 재미있게 구경만 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저마다 ‘가상의 장애인 친구’를 한 명씩 만들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연출자 김병주씨는 “분위기에 따라 아이들이 나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상황극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고 했다. 한수초등학교의 경우 상황극을 만들지는 못했고, 등장 인물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두 시간 넘게 계속된 공연이 마무리됐다. “명석아, 난 이윤영이라고 해. 나도 자폐를 가진 친구가 있어. 잘 지내고 싶지만 어울리려고 하지 않으니까 솔직히 귀찮고 힘들기도 해. 그렇지만 자꾸 보면 괜찮아져. 그러니까 너도 힘을 내!” “채인이 어머니, 저는 서진이라고 하는데요, 채인이는 친구들과 더 가까워지면 잘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친구들은 채인이를 잘 이해해요. 그러니까 저희에게 채인이를 맡겨주시고요, 또 저희가 아무리 잘 돌봐줘도 실수는 하기 마련이거든요. 그렇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면 손가락을 좀 데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야단치지 마시고 저희를 믿어주세요.”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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