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2.25 17:43 수정 : 2005.12.27 18:06

범경화/학부모 bkh0904@naver.com

나의 의견

책읽기 의무감 얼굴 찡그릴라

아이 친구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4학년 1학기에 꼭 읽어야 할 책 목록을 좀 추천해달라는 이야기였다. 방학을 하기 전에 책을 주문해 두어서 새학년이 시작되기 전까지 다 읽힐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추천도서 목록에 옆집 아줌마표까지 끼게 되었나 싶으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응했다. 백번 옳은 이야기이다. 국어책에 실린 이야기의 원작동화를 미리 읽게 하고, ‘전구에 불 켜기’라는 단원을 배우기 전에 전기에 관한 재미있는 책들을 읽고 간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겠다. 내 아이도 그렇게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자료들을 찾다 보니 정말 추천도서 목록의 홍수시대이다. 교과 관련 추천도서는 말할 것도 없고, 과학의 날 관련 추천도서, 장애인의 날 관련 추천도서, 방학동안 꼭 읽어야 할 추천도서 등 주제도 다양했다. 교육청, 학교, 출판사, 서점 등 추천도서를 발표하는 곳도 정말 많았다.

공신력 있는 단체의 추천도서 목록이더라도 내 아이가 좋아할 만한지, 수준에 적당한지 꼼꼼히 따져봐야 했다. 일부 출판사에서 추천도서라고 발표해둔 책은 고발하고 싶기도 했는데, 교육청을 통해 일선 학교로 목록을 내려 보낸다니 과연 그 학교 엄마들은 알고 있을까?

어찌되었든 인터넷 서점의 서평들도 뒤지고, 직접 서점에 나가 확인도 하면서 목록을 만들었다. 각 과목의 단원별로 제목을 적고 그 옆에 책 제목을 올려두니 내가 봐도 제법 그럴싸하다.

그런데 막상 목록대로 책을 주문하려다 보니 방학이라고 계획을 세우며 들떠있는 아이의 얼굴이 겹쳐졌다. 아직 초등학생인데,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고, 놀고 싶은 만큼 마음껏 노는 게 방학인데…. 책을 읽는 것마저 공부에 연결해서 읽어야 하면 아이의 방학이 행복하지 않을 듯했다.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좋은 책, 필요한 책을 골라주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어른들이 너무 나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책읽기가 골치 아픈 일이 될까 걱정된다. 범경화/학부모 bkh0904@naver.com

김경희/오즈북스 대표 firenche68@dreamwiz.com
특정도서 판매 부추겨 책시장 왜곡

청소년 출판을 하겠다는 나에게 아직은 때가 이른 것 아니냐며 주위에서 다들 말릴 때가 있었다. 아니, 지금도 너무 힘들지 않느냐며 인문서 편집자였으니까 인문서 출판을 먼저 하고 나중에 청소년 출판을 도모하라는 충고가 잇따른다. 하지만 나는 청소년 출판에 대한 믿음이 있다. 아동 도서 시장을 일궈낸 어린이들이 자라고 있는데, 왜 청소년 도서를 읽을 청소년들이 없겠느냐고.

단단히 각오를 하고 출발을 했지만, 청소년 출판은 정말 멀고 먼 길임을 몸으로 겪고 있다. 일부 출판사들의 자사 책 사재기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베스트셀러 목록이 여전히 판을 치고 있고, 공부와 연관된, 성적을 높여준다는 학습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십종씩 쏟아져 나온다. 1~2년씩 걸려 어렵게 좋은 책을 기획하는 사이에 잘 알려진 작가, 유명 외국작품을 등에 업고 몇십만부를 쉽게 파는 출판사들도 많다.

그런 가운데 추천도서 목록까지 가세해 청소년 책 시장을 뒤흔들고 왜곡하고 있다. 독서교육 바람이 불면서 청소년 책 매출이 늘겠거니 했는데, 웬걸 추천도서 목록이란 것이 나타나 특정 도서 판매만을 부추긴다. 출판사, 대학, 단체 등에서 경쟁적으로 추천도서니 권장도서니 하면서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강조한다. 거기에 문화관광부나 서울시교육청과 같은 정부 기관까지 가세하고 있다. 도대체 공공기관, 국가기관이 나서서 추천도서 목록을 발표하는 나라가 있을까? 또, 꼭 읽고 넘어가야 할 책들은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선별했을까?

가장 좋은 추천도서는 청소년이 각자 고른 것이다. 자신의 관심과 능력, 수준에 맞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이라는 것을 부인한다면 그건 독서교육의 외피를 쓴 주입식 교육일뿐이다. 물론 거기에 교사들이 청소년의 눈높이와 관심분야에 맞춘 책을 골라주는 수고를 해준다면 학교에서 부는 책읽기 바람은 아이들의 성장에 더할나위 없는 자양분으로 작용할 것이다. 김경희/오즈북스 대표 firenche68@dreamwiz.com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