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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열/평촌 모어댄논술학원 대표·전 한겨레,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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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논구술·입시정보 특집 ‘꼼짝마 논술’
시험장 가기 전 이것만은 알아두자 국어 쓰기에 관한 한 고전으로 손꼽히는 <문장강화>의 이태준 같은 대문장가가 쓰더라도 최고 득점을 받지 못할 것이란 말이 있을 만큼 난해한 시험이 대한민국 대입 논술이다. 이미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시험 수준을 뛰어 넘은(불행히도 수험생의 논술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 논술 문제는 출제가능한 모든 주제를 통달하려면 박사학위가 두세 개 쯤 필요할 만큼 폭과 깊이가 만만치 않다. 또한 수험 글쓰기라는 특성상 미문과 화려한 문체를 구사한다고 고득점을 얻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문필가보다, 논술의 요령과 기술을 습득한 수험생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시험이다. 하지만 상당수 수험생들은 이런 요령과 기술은커녕 기본조차 깨우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지시문 파악, 서론·본론·결론 짜기, 어법, 띄어쓰기 등 기본만 갖춰도 합격권 안에 든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다. 논술시험장에 앉기 전에 수험생들이 특히 취약한 부분은 어디인지 점검해 보자(아래 예문은 모두 고3 수험생의 실전 글이다). 논술글다운 문체를 구사하라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차이를 크게 만들고 상속의 문제로 인해 다시 그들의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그래서 더 많이 가지려는 서로 간 다툼이 커져 간다.’ 이 문장은 ‘불공정한 경쟁과 부의 세습이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이는 사회통합을 저해해 계층간 갈등을 증폭시킨다’로 바꾸는 것이 더 논술문답다. 물론 앞의 글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채점자인 대학 쪽은 예비 대학생들의 사물에 대한 개념적 파악, 어휘 구사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개념어, 추상어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먹느냐, 먹히느냐를 놓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남을 평가할 때도 나를 최고로 중시한다.’는 글도 ‘현대 사회는 적자생존의 논리가 지배한다. 현대인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사물을 판단한다.’고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확한 단어 구사도 매우 중요하다. ‘세계 경제권에서 차지하는 한국 경제의 위치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에서 ‘위치’를 ‘위상’으로 바꾸면 한결 세련돼 보인다. 그렇다고 주제넘은 현학적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되며, 현 고교 교과서 수준의 단어면 충분하다.‘거시기식 글쓰기’를 피하라 영화 <황산벌>에서 계백장군이 “우리의 전략 전술의 ‘거시기’는 ‘뭐시기’ 할 때까지 갑옷을 ‘거시기’한다.”고 말하자, 신라군들이 의미를 해석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장면이 나온다. ‘절대다수’ 수험생의 글에도 이처럼 정확한 의미를 표현하지 못하고 흐려 쓰는 사례가 수없이 보인다. 이른바 ‘거시기식 글쓰기’다. “한미 관계의 불평등을 보여준 한 가지 예로 효순, 미선양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으로 재판받은 미군들은 무죄를 선고 받아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에서 밑줄 친 부분은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은 효선, 미순양 사건’으로 서술해야 한다. “채점자가 대학교수니까 사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알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착각이다. 채점자가 설사 잘 알고 있더라도 글에서 이를 설명하지 않으면 감점을 할 수 있다. 이런 ‘거시기식 글쓰기’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우리말은 지금 국내 문화에 의해서 파괴되고 있다’ (‘인터넷 채팅문화’처럼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 ‘인터넷상에서 어문 규정에 대한 캠페인을 하면 인터넷의 특성상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 ‘전파력이 큰 인터넷의 특성상’) · ‘세계화의 속성 중에는 자유 경쟁의 원리가 포함되어 있다. 사회주의의 몰락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본주의는 경쟁 정신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가 경쟁을 무시하다 몰락한 것과 달리’) ·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현대 사회에서 국어가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어의 오용’이든 ‘외래어의 범람’이든 구체적인 단어가 필요하다.) 우리말식 표현을 사용하라 한국 사람은 “커피를 한 잔 마신다.”고 하지, 서양 사람처럼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말식 표현이다. 많은 수험생들이 의외로 우리말식 표현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바뀌는 것이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 인생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의 밑줄 부분은 ‘바뀌는 것이 없다고 인식하게 되면’으로 표현하는 게 우리말답다. ‘다양한 서로 다른 가치관이 존재한다’도 ‘서로 다른 가치관이 다양하게 존재한다’가 좋은 표현이다. 관형어의 남용도 우리말식 표현과 거리가 멀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의 벌레로의 변신은 인간 소외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에서 주어 부분은 ‘주인공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한 것은’이 자연스럽고,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생명의 존엄성 파괴의 위험을 지니고 있다’는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할 위험이 있다’로 바꾸는 게 낫다. 우리글 구석구석 파고든 외국어투 표현도 가급적 피해야 한다. 이 부분을 꼼꼼하게 따지는 국어과 채점교수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매우 중요하다), ‘주목에 값한다’ (주목할 만하다), ‘신중한 선택이 요구된다’(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규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규제를 피할 수 없다)는 표현도 모두 괄호처럼 바꾸어야 한다. ‘~것이다’를 남발하지 말라 문장 종결말인 ‘~것이다’는 ① 앞 말을 부연 설명하거나 ② 문장성분의 호응을 지키기 위해(예문: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 고유의 민족의식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주로 문장의 의미를 강조하려고 의도적으로 쓰는 말이다. 따라서 ‘~것이다’는 일종의 ‘세일즈맨 어법’으로서 결코 남발해서는 안 된다. 문장의 ‘품질’에 자신이 없는 수험생들이 억지로 강조하기 위해, 채점자의 주목을 받기 위한 ‘마케팅’ 차원에서 ‘것이다’ 표현으로 ‘도배’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글의 품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상투적 인용은 하지 않는 게 낫다 ‘자유’에 관련된 논술 주제가 출제되면 회심의 미소와 함께 “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는 미국 독립혁명 당시 페트릭 헨리가 외친 말이다.”라고 시작하는 수험생이 조금 과장해 20% 가량 된다. ‘절대성’과 ‘상대성’에 관한 주제라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했다.”로 시작하고, ‘진리’주제와 연관되면 무조건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인용한 뒤, “학원 문제가 족집게처럼 적중해 잘 썼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다. 물론 이는 착각이다. 이런 기계적 인용이 논술시험 초기에는 먹혔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전혀 ‘약효’가 없는 표현이다. 오히려 상투적 표현을 남용한다며 감점당하기 십상이다. 실전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표현을 사용하려면 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속담, 명언을 찾아 나만의 내용으로 소화한 뒤 논제와 정확히 맥락이 일치할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논술에서 최고점을 받은 학생들을 보면 평소 책, 영화, 방송에서 자신이 공부한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나 문구 등을 메모해 실전에서 활용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안 쓰는 것이 낫다. 인터넷 언어, 구어적 표현은 ‘절대로’ 쓰지 마라 ‘그러니까’ ‘근데’ ‘이거나 저거나’ ‘어떨 때는’ ‘요번에는’ 등은 논술에서 피해야할 구어적 표현이다. 논술시험에서 구어체 문장을 쓰는 것은 턱시도를 입어야할 파티에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가는 격이다. 인터넷에서만 사용되는 표현은 구어체 표현보다 더욱 피해야 한다. 어떤 수험생 글에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토지 공개념을 확장하는 정책을 강추한다.”라는 대목을 본 적이 있는데 이런 언어의 구사는 글 전체의 수준까지 의심받게 만든다. 논술 채점단에는 반드시 국어전공 교수가 포함되는데 이 분들은 평소 인터넷문화로 인한 국어의 혼탁과 왜곡에 대해 크게 걱정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약점’ 잡힐 표현은 하지 마라 요즘 논술 문제는 채점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해 조건들을 세세하게 제시한다. 이 조건들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편의 완결된 논술글이 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서론-본론-결론의 도식적 구도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서론 부분에서 ‘~에 대해 살펴보겠다’, 결론 부분에서는 ‘이상 ~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다’고 쓰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 견디는 학생이 적지 않다. 만약 그 표현을 빼버렸을 때 전체 글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다면 이는 출제자의 주문대로 글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쨌든’, ‘아무튼’, ‘좌우지간’ 같은 표현도 써서는, 아니, 쓸 여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는 글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제대로 연결이 안 될 때 어쩔 수 없이 쓰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즉, 그런 접속어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글이 비논리적이라는 점과 현재로선 도저히 논리적으로 연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양심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결론 부분에서 “우리는 다 함께 노력하여 건강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또는 “ 정부와 농민이 타협을 통해 서로 조금씩 양보한다면 농업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다.”식의 하나마나한 소리나 ‘국민교육헌장식 표현’도 금물이다. 이는 ‘나에게는 아무런 대안이나 해결방안이 없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또는 장황한 표현을 가급적 줄여라 ‘목표가 뚜렷한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그것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처럼 ‘~ 할 수 있는’이 중복될 경우 하나를 바꾸어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극복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하면 된다. ‘우리말로 순화시킬 수 있는 외래어는 최대한 순화시켜야 한다’는 문장도 ‘외래어는 가급적 우리말로 순화해야 한다’는 식으로 얼마든지 중복을 피할 수 있다. ‘예전에는 국가가 없어 모든 개인은 저마다 자유롭게 생활하며 살았다’에서 줄친 부분 역시 중복 표현이다. 중복되는 단어를 비슷한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글의 생동감이 살아난다. 일 예로 ‘중앙정부가 발표한 것을 지방정부가 뒤집고, 지방정부가 발표한 것을 중앙정부가 뒤집으면 정책의 일관성이 무너진다’ 는 문장에서 뒷부분의 ‘발표한’을 ‘추진한’으로, ‘뒤집으면’을 ‘제동을 걸게 되면’ 따위로 바꾸면 단조로움을 피하게 된다. 장황한 표현도 논술의 ‘적’이다. ‘국민의 희생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말이다’(국민의 희생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든지, ‘그 이유를 다음처럼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는 문장은 괄호처럼 얼마든지 간결하게 다듬을 수 있다. 장황한 표현은 채점자로 하여금 분량 채우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문장의 올바른 대칭이 글을 탄탄하게 만든다 문장 안에서 같은 기능을 하는 부분은 대등한 대칭 구조(병치 구조)를 이루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노래와 춤을 추었다’는 대칭이 문제되는 문장이다. ‘나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가 정확한 문장이다. ‘학교는 도덕성의 함양과 사회적 능력을 계발하는 터전이다’는 문장은 대칭을 이루려면 ‘도덕성을 함양하고 사회적 능력을 계발하는’으로 고쳐야 한다. ‘학생들은 교원 평가 때 감정이 앞서서 수업방식이 아니라 인기 많은 선생님을 좋게 평가할 것이다’에서 밑줄 친 부분은 ‘수업방식이 훌륭한 선생님보다 인기 많은 선생님을 좋게 평가할’로 수정해야 대칭이 바르게 이루어진다. 대칭 구조는 이론상으로 어렵지 않지만 실제 이를 제대로 적용하는 수험생은 많지 않다. 학자나 전문가조차 틀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논리적인 글쓰기에서는 특성상 대칭 구조 문장을 자주 써야하기 때문에 글을 쓸 때 각별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논술에서 고득점을 얻기 위해서는 논술글의 특성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채점자에게 잘 읽히는 글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험생들은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보통 두 시간 동안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그래서 채점자도 심혈을 다해 채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개인에 할애하는 채점시간은 평균 5분도 채 안된다. 대개의 경우 채점 시작 1분 안에 점수가 결판난다. 대부분의 채점 교수들이 간결·명쾌한 단문쓰기와 결론부터 제시하는 두괄식 문장을 권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험생들은 짧은 시간에 채점자의 호감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재열/평촌 모어댄논술학원 대표·전 한겨레,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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