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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17 11:05 수정 : 2019.10.08 18:21

【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야채랑 고기 절대 먹지 마! 화학 색소 잔뜩 든 사탕만 주머니에 넣고 다녀. 이 썩게 음료수도 단것만 마셔. 아무리 상냥한 엄마라도 가만히 계시지 않을걸?”

<엄마를 화나게 하는 10가지 방법>(실비 드 마튀이시왹스 지음)에 등장하는 말이다. 기특하다. 아이들 무의식 속 ‘저항’을 재미있게 드러냈다.

엄마들은 원한다. 아이들이 말 잘 듣기를. 아이들은 원한다. 그런 엄마에게 복수하기를. 그런데 힘이 없다. 그래서 소심한 복수를 행동으로 옮긴다. 못 들은 척, 들어도 모른 척, 까먹은 척, 엄마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얌전했던 아이가 갑자기 말을 안 듣기 시작하면 부모는 당황스럽다. 표면상으로는 우리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에 대한 ‘염려’라고 말한다. 한데 내면은 아이의 ‘저항’을 의식하고 ‘불안’한 상태다. 그런데 이를 ‘불안’이라 하지 않고 ‘걱정’이라 말한다. 부모가 아이를 향한 ‘걱정’이라 포장하는 순간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양육자들은 쉬운 길을 택한다. ‘권위’에 대한 복종이다.

“어디 예의 없게!”

엄마를 화나게 해서 아이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없다. 그래도 그걸 감수하는 이유는 내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내 존재감은 부모 등 양육자가 화를 낼 때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10년 동안, 초등학교 3~6학년 아이들에게 설문을 받았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내라 했다. 많이 등장하는 말이 있다.

“제발 짜증 나게 하지 말아주세요.” 이 말은 이렇게 해석된다.

“자꾸 이러면 나도 엄마 짜증 나게 해줄 거예요.”

안타깝지만 엄마들은 이런 말을 기대한다. “엄마 사랑해요.”

몰라도 너무 모른다. 지난 10년간 그렇게 적어 낸 아이는 한명도 없다. 이렇게 적어 낸 아이는 있다.

“스마트폰 사주면 생각해볼게요.”

아이가 이유를 찾을 수 없이 부모를 화나게 한다면 자녀의 ‘존재감’을 살펴봐야 한다. 자신을 희생해가며 소심한 복수의 과정 속에 간간이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도 됨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그 아이들의 상황은 ‘존재감 제로’에 임박했다.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지키려 애쓰는 모습, 부모 앞에 ‘할복’하며 신음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결국 일어나지 못한다.

아이들이 부모를 이유 없이 화나게 한다면, 한마디만 해주면 된다. “미안하다”고.

양육자를 화나게 하는 아이의 무의식 저항은 아이 탓이 아니다. 화나게 만들어야 뭔가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한 누군가의 몫이다. 요즘 우리 반 아이들이 담임인 나를 자꾸 화나게 한다.

“미안하다. 얘들아.” 근데 좀 억울하다.

“부모님에게 갈 화를 자꾸 내게 돌리진 마라. 부모님을 화나게 하는 방법은 많다. 이 한번만 닦지 말고 자봐라. 네가 원하는 걸 쉽게 얻을 수 있다.”

김선호 서울 유석초등학교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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