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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9 00:08 수정 : 2006.01.09 00:44

교복을 입은 ‘학생‘에게 개인이란 없다.

당신들, 교복을 입히는 이유가 뭐지?

정말로 묻고 싶은 게 있다.
우리는 교복을 왜 입어야 하는 거지?
당신들이 우리에게 교복을 입히는 진짜 이유가 뭐야?

매일 아침 일찍 블라우스 단추 잠그는 일과 10분마다 한 번씩 돌아간 치마 원상복귀하는 일, 그리고 다리를 모으고서 다소곳이 앉아있는 일에 이골이 났다.
이유가 뭐지?

남에게 구속되는 걸 정말로 싫어하는 나에게는 교복이란 생지옥이나 다름없다. 내가 다른 이에게 이유를 물을라치면 이렇게 ‘들이댄다.’

“학생은 학생답게 단정하게”

#오, 학생다운 게 무엇입니까


‘학생은 학생답게 단정하게’라······. 상당히 모호한 답변이다. 학생다운 게 뭔데?

국어사전을 ‘학생’의 뜻을 뒤져보면 ‘학교에서 배우는 사람’, ‘학예를 배우는 사람’ 따위의 뜻으로 나오는데 결국 학생이란 ‘배우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학생은 학생답게’라는 뜻을 풀이해보면 ‘배우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답게’정도의 뜻으로 해석되는데 그러면 결국 우리가 교복을 입는 이유가 ‘배우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답게 단정하게’ 라는 것인가. 배우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다운 것은 단정하다는 뜻인가.

예끼 이 사람들아, 헛소리 하지 말라. 배우는 사람이 배움에 있어서 행동에 앞서서 말이, 말에 앞서서 생각이 건전해야 하고 배움에 임하는 ‘자세’가 발라야하는 것은 옳지만 옷차림이 단정해야 한다는 얘기는 어디에 있으며 그렇다 치더라도 단정한 옷차림이 ‘교복’이라는 얘기는 또 어디 있는가.

사람마다 단정한 옷차림의 기준이 다르다. 각자의 개개인은 옷차림을 선택할 수 있는 아주 ‘큰 권리’가 있다. 아무리 학생의 ‘신분’일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각자의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서 등하교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다.

고로 “학생은 학생답게 단정하게”라는 이유는 상당히 모순된 이유이므로 다른 이유를 들이대라고 해보자.

#아침에 옷 입는 시간을 줄여 준다고?

또 어떤 해괴한 이론이 있냐하면, 자신들이 교복을 입히는 이유가 아침에 옷 입는 시간을 줄여 준다는 이론이다. 이 뜻은 어떠하게 해석이 되느냐 하면 자신들이 우리의 황금 같은 시간을 줄여준다는 얘기로 해석이 된다.

예끼, 이놈들아! 헛소리 말거라! 그런 방식으로 따진다면 교복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벗어 던졌어야 한다는 소리다. 왜냐면 우리는 이제 중학생(혹은 고등학생)이며 우리 혼자, 스스로 옷을 골라 입을 수 있기 때문. 우리는 이제 각자의 자아를 찾아가고 있으며 각자의 심오한 철학적 진리(비록 개똥철학일지라도)를 찾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제, 옷 입는 시간을 줄여 주기 위해 그들이 ‘손수’ 만들어주신 옷을 입을 때가 아니다.

대신, 우리에게 각자 자신을 찾을 기회와 세상을 주시는 게 어떨런지요. 앙?!

#교복 입는다고 성적이 오르나

그리고 또 궁금한 한 가지 사실. 교복 입는다고 성적이 오르나요?

수많은 분들이 성적을 위해 우리를 학생의 신분으로 만들어 놓고서 교복을 입혀 놓으시니 우리의 할 일은 오직 공부뿐이니라. 그런 사실을 감안해보면, 교복을 입는 이유 중 한 가지 또한 ‘성적’이 아닐까 생각 되는데... 쩝.

교복이 성적 면에서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게 정말 확실한 사실이다. 차라리 우리가 원하는 옷을 입고 다니면 성적이 오를까? 뭐, 그렇다는 보장도 없지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자유를 추구하고(물론 그 자유가 방종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행복을 추구하며 원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성적을 목표로 삼을 수 있다. 오, 그대들이여, 왜 배우는 사람들의 권리에 훼방 놓으려 하시는가!

#학교라는 공장, 혹은 제국의 음모

여기 아마추어 음모설이 나왔다. 지금 학교는 사회에서 훌륭한 ‘분’이 되는 길 보다는 사회에서 돈 많은(혹은 지위가 높은) ‘분’들에게 잘 보이는 일개 ‘로봇’들을 만들고 있다는 음모이다.

It`s true! 안타깝지만, 사실이옵니다. 왜 학교는 우리의 개성을 만드는 대신, 남에게 잘 맞는 개성을 만들려 애쓰는 것일까?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학생은 힘이 세다. 신체적 면에서도 벌써 어른들을 따라 잡아가고 있으며 낡은 세상과 이념을 타파하고 고발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른들은(물론 일부계층이리라 굳게 ‘믿는다’) 자신들이 이 세상을 자신들이 만들어 놓았다고 ‘착각’하며 그 세상을 자라난 학생들이 변형시키는 것을 별로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은 변화한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그리고 필연적으로 바뀌어 간다.

일부 인간들의 낡은 세상이 그런 변화를 막을 순 없다.

그대들이여, 우주의 순리를 받아들일지라!

#이것은 원초적 본능이다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자기 스스로 골라 입었을 뿐인데, 분위기 부터가 자유롭다.
인간이 꼭 거쳐 가는 시기가 바로 ‘사춘기’일지니, 그대도 겪었을지라(혹은 겪고 있던지.) 사춘기 때는 이성에 관한 관심도 커지며, 외부와 내부에서 신체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정신적인 변화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큰 사명을 띠고 이 세상에 나타났다고 생각하거나 어떤 조기우울증 환자들은 세상이 부질없다고 생각한다(이미 다 세상을 깨우치신 철학자시던지).

이 시기에 나타나는 한 가지 현상이 자신을 꾸미고 싶은 현상이다. 이성에 대한 관심과도 연결되어 있겠지만 어쨌거나 길거리의 예쁜 옷들과 멋진 신발과 스타들의 헤어스타일을 선망하는 현상이다.

그러한 ‘원초적 본능’을 억제하려하는 분들이 개발하신 게 ‘교복’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자연스런 현상을 억제하는 건 서로에게 해롭지 않을까.

물론 지나치게 그러한 외적 꾸밈에 빠지는 것도 좋은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지나침을 우리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 제발 내버려 두시는 게 어떠신가요.

#교복은 교복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교가 단순히 우리에게 ‘교복’을 입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점퍼 색깔, 신발의 모양과 색깔, 가방의 크기와 종류, 심지어는 런닝샤쓰의 색깔까지도 단속한다.

아예 인간들을 네모난 틀에 맞추어 ‘찍어내려는’ 듯하다.

잘못된 일이다.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심 가지는 이들, 과연 몇이나 있을까. 우리도 우리들대로만 화가 나지 표현할 방법이 없다. 소송을 걸랴, 신문에 기고를 하랴,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에 생각을 적어 놓지만 그들은 일개 장난으로만 취급을 하니, 에휴, 학생의 길은 험난하여라.

#나아가 우리나라 교육체계의 문제

이제 갖다 붙이면 세계화니 지구촌이니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대단한 세계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새삼스럽게나마 지구촌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우리나라의 교육 분위기도 바뀌어야 할 때라고 본다. 성적 위주가 아닌, 개개인의 개성을 위주로 한, 교복을 입지 않아도 배우는 사람다운 그런 교육체계가 완성되어야 한다.

시험 성적에 목매다는 사회가 아니라, 각자의 작은 특징을 세세히 존중해 주는 사회... 그런 유토피아를 기대해 보며 오늘은 이만 끝.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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