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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9 14:13 수정 : 2006.02.22 16:32

제엠의 <아주 정치적인 청소년>을 열며

“칼럼을 쓰자”라고 마음을 먹고 이 이름을 생각하기까지는 그다지 큰 망설임은 없었습니다. 제가 바라는 청소년의 상이 바로 “아주 정치적인 청소년”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정치적인 청소년, 얼핏 들으면 오해할 소지가 다분한 제목입니다만, 저는 언제나 “정치적”인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 칼럼과, 그리고 이 칼럼을 보는 여러분들 역시도, 혹은 이 칼럼과는 쌩판 상관 없이 그냥 길거리에서 mp3 음악을 듣는 “행인 1”도 정치적이고, 혹 정치적이 아니여도 정치적이여야 한다 생각합니다.

왜일까요?

정치적이라는 의미는, 스스로의 삶 속에서 타인과 이익을 공유하거나 이익의 배분을 조정한다는 뜻입니다. 이 이익이라는 것은 때로는 “공익”이 될 수도 있고, 개인의 이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익을 서로가 공유하거나, 일정정도의 양보로 모두가 불만을 품지 않는 정도로 조정해나가는것이 바로 조정 행위입니다.

국회의사당에서 멱살잡고 싸우는것도 내내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가 대표하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방식대로 권리를 찾기 위해 행동하는것이지요.

하다못해 요즘 난리인 사학법파동을 볼까요?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사학법인과의 상호 의존관계를 지금의 대정부공세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학재단의 집회에 당대표가 참석하고, 당 주도의 반대집회에는 공문으로 사학재단 관계자들을 부르고... 계속되는 순환 관계속에서 우리는 한나라당이 사학법인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정치집단임을(사학법만을 통해서든, 아니면 여러 가지 관계에서든)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 국회에 가지 않아서 제대로된 난투극을 볼 수 없는것이 아쉽지만, 어찌되었건 한나라당 정치인들은 지금 사학재단과 그 주변의 사람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또 그 주장을 대변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그다지 추천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장외투쟁이라는 방법을 써서 스스로의 주장을 나타내고 있으며, 계속적인 정부/여당에 대한 압박으로 사학법 개정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지요.


극단적인 모습이지만 바로 이런것이 정치의 모습입니다. 상호 이익추구 사이에서 발생하는 잡음을 “힘과 권력”만으로 찍어 눌러, 말할 권리를 박탈하고 한쪽의 의지만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닌, 논의의 장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민주국가 안에서 허용된 모든 방법(시위, 집회, 가두연설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의견을 공론화시키는 과정이겠지요.

스스로가 생각하고있는 바른 길, 그것은 공익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개개인과 특정 집단만의 이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정치는 이러한 각각의 이상향의 대결과 타협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 이야기를, 청소년들에게 적용시켜보면 어떨까요?

두발제한을 당하는 청소년이 학교에 항의를 합니다, “내 머리입니다, 자르지 말아주세요”라는 요구, 이것은 민주사회에서 아주 정당한 요구입니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권리인 신체 자결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니까요, 애초에 침해 자체가 범죄인 부분에 대해서 “이제 그만둬주세요”라고 하는 주장은 당연할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냥 무턱대고 얘기해봅시다. “학생주임 선생님, 내 머리 자르지 마세요!”

서로 피곤해집니다. 단순한 주장 뒤의 설명이 있다고 해도 서로 피곤해질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구조 때문이지요. 선생님들은 선생님들 나름대로 “몇십년동안 그렇게 해 왔는데 왜 너만 지랄이냐!”라는 대답이 몇십년간의 관행이고, 학생들은 학생들 나름대로 “멀쩡하게 기른 머리 왜 자르냐, 우리가 무슨 털 팔아먹는 양떼냐?”라는 날카로운 물음밖에 나올 수 없겠지요.

자, 정치적이 되어 봅시다.

일단 논의구조를 만드는게 먼저입니다. "말이 씨가 먹힐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지요. 여기에는 때로는 실력행사를 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생깁니다. 학교에 학생회가 아예 없다거나, 애초에 들은 척도 하지 않을때, ”우리는 분명히 주장한다!“라는 실력행사가 필요할수도 있습니다. 이를 위한 방법은 꽤나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요.

한나라당 따라서 학생회실이나 회의실 밖에서 ”우리 머리 자르지 말라!“라는 대규모 학생시위를 할 수도 있지만, 이는 비추천입니다. 일단 학생들의 의견이 어느정도인지 알아보고, 이를 분명히 보여질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하는것이 우선이지요. 가장 쉽게 여론조사와 서명운동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밖으로 보여지는 대세적 의견이 있다면 선생님들은 이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의견이 대세고, 학생들이 바라고 있는 부분이라면, 이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돌릴수는 없거든요. 아무리 때리고 윽박지른다고 해도 그러한 의견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닌 잠시 수그러드는 것 뿐입니다.

결국 이러한 의견들에 대해 어떠한 방법으로든 매듭짓지 않으면 선생님의 통솔력이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학생들을 관리, 감독, 교육, 통제시킬 의무가 있는 선생님들의 말빨이 서지 않는다는거죠. 결국 이런 경우 대게 협상테이블에 앉게 됩니다.

협상테이블에 앉기 직전에 해야 할 일은 자신들의 주장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선생님들 나름대로 “두발자유화가 왜 안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인용할 수 있는 정도는 어느정도인지” 정하고 오겠지요, 그쪽에서 보면 상대편인 학생측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발자유화를 왜 해야하는지, 혹은 어느정도 물러설 수 있는지” 확실하게 정하고 가야합니다.

다시 말해, 협상테이블에 앉는 사람들이 어느 의견을 대표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스스로가 어느 의견을 대변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채로 협상테이블에 앉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행위는 없습니다. 왜인지는 굳이 따로 설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협상테이블에 앉아서는 철저히 정치적이 되어야 합니다. 협상의 최종적인 결과가 최대한 자신의 집단의 주장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협상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여기에는 상대방의 체면을 고려해주는 것, 기타 여러 가지 우리가 “권모술수”라고 불렀던 상당히 많은 타협책들이 등장합니다. (굳이 이러한 타협책을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과정을 거친 뒤에 타협안이 나오고, 상호 감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타협안 도출을 끝으로 모든 과정이 종료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타협안대로 학교내 두발자유화가 잘 이루어지는지 계속 감시해야겠지요.

여기까지 정말 복잡한 얘기를 했습니다. 확실히 단순한 주장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게 보이지요? 하지만 이런 방법들까지 동원해야하는것이 바로 정치의 모습입니다.

조금 자세한 모양을 설명하기 위해서 복잡한 모형을 예로 들었습니다만,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많은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수많은 변법들을 통해서 정치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정책이 법률이 되고 실행되기 위해서는 대부분 이정도 이상의 프로세스를 거친다는 것이지요.

청소년도 사회의 일원이고, 사회적으로 청소년의 지위를 높이고 싶다면, 혹은 처우를 개선하고 싶다면 당연히 정치적이 되어야 합니다. 즉, 사회적인 주장과 타협의 방법을 아는 것, 다시 말해 위에서 말한 수준의 프로세스를 알고 실행할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또한 자신의 주장과 실현의 방법에서 오류를 검증할 수 있고, 한발 한발에 신중한 모습 역시도 필요한 덕목중 하나일 것 입니다.

어느분의 말처럼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 진행해나가는 과정을 익힌 청소년,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본래의 목적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전진해나가는 청소년이 바로 제가 말하는 “아주 정치적인 청소년”입니다.

물론, “아주 정치적인 청소년”이라는 말 속에는 제가 이 글에서 차마 담아내지 못한 뜻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가장 먼저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은, 여러분은 여러분이 어느 상황에 있더라도 정치의 객체가 아닌 정치의 주체적인 입장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얘기한것과 같이 하다못해 길거리에 mp3를 들으며 걷고 있는 행인 1의 행동에도 중앙정치에서 결정한 수십가지의 요소가 그 장면 안에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그 사람이 걷고 있는 도로 및 보행로에 대한 법규, mp3에 대한 저작권법, 정보통신 관련 법규, 전파 규격에 관한 법규...

이러한 과정에서 보다 규제 없이, 편하게 보행할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한, 혹은 다른 부분의 불편을 개선하기 위한 정치적인 활동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 사람은 자신이 불편하게 걷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해 보다 많은 사람이 이익을 누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정치의 주체로 이미 들어와 있으면서, 권리를 찾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당신의 권리를 찾아주지 않습니다. 또한 권리를 찾을 의지가 있다면 그것을 단순한 주장 이상으로 끌어 올리는 것 역시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민주사회에서 지는 시민의 의무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고, 스스로의 공동체, 혹은 공공이 억울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청소년의 모습, 바로 “아주 정치적인 청소년”의 모습이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칼럼의 제목이 “아주 정치적인 청소년”입니다.

앞으로의 제 칼럼에서는 각 이슈별로 해당 이슈가 어떻게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부분을 봐야 할 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제 칼럼으로 인해서, 여러분의 당당한 “청소년 정치활동”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이태우 기자 ⓒ2006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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