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인 강정구는 줄어들고 착각하는 황우석은 늘어난다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쓴『자서전』에는 미국인들이 지켜야할 열세 가지 덕목을 제시했다. 절제,침묵,질서,결의,절약,근면,성실,정의,중용,청결,평온,순결,겸손을 미국인들이 추구해야할 아메리칸 드림의 성취 조건이란다. 이상적인 사회라면 인간으로서 누구나 지켜야 할 당연한 도리요, 너무나 건강한 국민, 자질 높은 국민의 상이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미국이 저지른 만행과 이라크에서 이라크 국민을 살상한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라면 이는 건강한 국민의 자질이 아니라 비판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다. 청교도주의(puritanism)의 전통에 바탕을 둔 이들의 꿈이라는 게 ‘능력을 발휘해 돈과 명예를 얻는 것’이라는 것도 우습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패권정책이라는 게 지식인들을 침묵케 하는 바탕 위에나 가능하다는 논리도 이해가 안 된다. 군주는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필요로 했지만 자신에 대해 비판을 하는 사람은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독재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독재자의 성향을 악용해 출세하고 인정받기 위한 경쟁은 치열했을 것이고 그 경쟁이 공정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군주를 위한 충성이 시나 음악이라는 예술의 형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철학이나 종교의 외피를 쓰고 탄생하기도 했다. 중세 종교가 정치를 압도하던 시대에 찬란했던 예술은 권력의 크기에 비례해 꽃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인들의 역할을 긍정적인 측면만 아닌 곡학아세의 도구로, 자신의 출세를 위해 진실을 호도해가면서 출세도 하고 인정받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불의한 권력이 지배하는 시대나 전재군주가 지배하던 사회에서는 진실을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진리를 뢰치다 혹윽 죽고 혹은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 침묵이 생존의 수단이 되기도 해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스스로 불이익을 당하기를 자처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늘날이라고 달라질 리 없지만 지식인들의 침묵은 독재 권력에게는 정당성을 약자에게는 운명론을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최근 강정구교수 사건이 그 좋은 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자가 학문적인 양심에 따라 주장한 내용을 놓고 색깔을 뒤집어씌우고 그것도 모자라 실정법운운하며 진흙탕 쌈을 두고 진보와 보수라는 흑백논쟁으로 왜곡한 사건이 그렇다. 이렇게 온통 나라가 소용돌이치고 있을 때 그 잘난 역사를 했다는 수많은 학자님들. 누가 나서서 “그 사람 강정구 말이 맞소!” 한 사람 몇이나 있나? 전문성 얘길 꺼내면 자존심 상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지식인들에게 후한 대접을 해 온 것은 진짜 전문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나 그 분야의 나름대로의 지식으로 다수를 설득시킬 수 있는 영향력(권력이라 해도 좋고...)을 잠재우기 위한 당근책이라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이들 중 정말 자신이 잘나고 똑똑해서 대접받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희소가치의 배분에 특혜를 받는 대가로 희생을 운명이라고 주장해 순진한 민초들을 마취시켜 온 것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유명인사가 되고 오히려 피해자는 가해자면에서 그들의 존경까지 받고 살아 왔다.하긴 눈 감으면 코베가던 시대가 아닌 눈 뜨고 코 베가는 세상이니 주는 떡을 마다할 리 없겠지만 막가파 세상에서 양심마저 팽개치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문제다. 황우석사태를 보면서 과연 황우석은 개인의 욕망이나 결과주의가 만든 성급한 작품의 결과만일까? 따지고 보면 어두운 시절 수없이 많은 황우석이 있었고 그런 방식으로 그런 사람일수록 유능하고 출세하고 인정받고 살았을 것이다.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위장하고 또 이중삼중 껍질을 뒤집어쓰고 그러다 가짜가 진짜가 되고 진실을 말하는 자는 사문난적이 되어 가문이 멸문지회를 당하고.... 지식인들의 침묵은 그 개인의 도피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들이 침묵해 줌으로서 악행을 저지르는 자는 더욱 더 노골적으로 악행을 저지를 수 있으니 이는 분명 소극적인 공범자가 된다. 착각은 자유겠지만 날이 갈수록 양심적인 강정구는 줄어들고 착각하는 황우석은 늘어나니 문제다. 황우석의 깜짝 쇼는 들통 났지만 비굴한 자가 살아남는 그래서 그 뭔가 언론플레이 잘하고 정치바람 잘 타고 얼굴에 철판 깐 인사가 유명인사가 되어 출세하는 풍토는 언제 바뀔까?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http://educate.jinju.or.kr/ ⓒ2006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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