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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신자유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한 세계화의 물결이 본격화하면서 한국에서도 영어 공용화를 둘러싼 논쟁이 일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안산시 영어마을에서 외국인 교사가 학생들에게 공지사항을 알려주는 모습. 안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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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는 지구화 시대, 영어 못하면 큰일 난다. 세계 공용어가 되다시피 한 영어를 못하고서는 경쟁에 뒤처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영어를 배우는 열풍 또한 세계적 현상이고, 우리 사회도 영어만 잘하면 웬만한 자리 꿰차는 것 어렵지 않다.
나도 두 아이가 있다. 큰 녀석은 이제 중2가 되고, 둘째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된다. 이 아이들도 영어를 열심히 한다. 학원이나 과외는 시키지 않는다. 예전과 다르게 학교에서 잘 가르쳐 준다. 무조건 알파벳 쓰고, 발음기호 외우고, 단어 쓰는 식의 구닥다리 학습법이 아니라 재밌는 이야기, 흥겨운 노래, 그리고 비디오를 통해서 거부감 없이 영어를 접하게 하고 있다. 학교도 많이 발전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영어를 재밌게 접할 수 있도록, 좋은 영어 그림책도 사 주고, 영어 사이트도 소개해 주면서, 기왕 배우는 것 잘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좋은 학습 환경을 갖추어 주고, 교수학습법이 정교하다고 해서 배우는 아이들이 다 영어를 잘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보기에 우리 집 첫째는 영어를 매우 잘한다. 영어 원서를 읽는 것도 두렵지 않게 하고, 메신저로 미국 영국 독일 호주 인도 친구들과 재잘거리는 걸 보면 신통하기까지 하다. 둘째는 어눌한 탓인지, 느린 탓인지, DNA 탓인지 잘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 녀석은 왜 영어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른다. 그냥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니 응당 공부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둘째는 만화를 꽤 좋아한다. 초한지 삼국지 수호지를 비롯해서 상당히 많은 고전을 만화로 섭렵했다. 보고 또 보고. 중독 증세를 보여 그 만화책들을 엄마가 차 트렁크에 보관해야 하는 지경까지 가기도 했다. 하여간 둘째는 고전을 많이 접해서인지, 고사와 한자성어에 대해 많이 않다. 치킨을 먹을 때 계륵(鷄肋), 고집 부릴 때 과유불급(過猶不及), 애들끼리 싸울 때 역지사지(易地思之), 난감한 처지에서는 사면초가(四面楚歌) 진퇴양난(進退兩難), 창의력이 너무 뛰어나면 연목구어(緣木求魚), 쓰레기 치우면서 우수마발(牛溲馬勃)...... 여러 국면과 처지에서 나오는 역사와 문화가 담긴 말들을 아들과 주고받을 때의 흐뭇함은 영어 잘 하는 것 못지않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내 차가 오래된 탓에 차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안에서 고리를 열고 동시에 밖에서 문을 열어야 열린다. 그러면서 아들과 내가 떠올린 말은, 줄탁동시(卒啄同時)! 둘째와 내가 문을 그렇게 열면서 동시에 한 말이다. 이 훌륭한 말을 내 자식의 입에서 듣게 되다니. 그것도 이제 초딩이 불과한 놈한테. 흐뭇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어 좀 못해도 참 대견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난 내 아들에게 서예와 바둑들 가르치고 싶었다. 영어는 학교에서 잘 해 주니까,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그러나 삶의 깊은 맛과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아비가 자식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기가 너무 힘들다.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수학 과학 국어 하는 시간도 녹록치 않은데, 또 피아노도 좀 해야 하고, 놀 시간이 부족하니 태권도로 몸을 단련시키기도 해야 하는데, 한가하게 아빠하고 서예와 바둑을 할 수 있겠는가.
신문을 펼치니, 올해 하반기부터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영어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그러려니 한다. 또 언어 습득은 어린 시절에 효과가 더 크다는 주장도 모르는 바 아니다. 게다가 영어 잘하기 위해서 꼬맹이들부터 유학을 가고 연수를 가야 하는 고비용을 생각하면, 초등학교 코흘리개부터 아예 학교에서 잘 가르치는 게 비용 절감의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많이 아쉽다. 아직 모국어 습득도 제대로 되지 않은 터에 외국어까지 습득시키는 것의 무리가 먼저 떠오른다. 모국어는 여러 언어 중의 하나가 아닌 사고의 도구이다. 모국어를 깊이 있게 체득해야 외국어를 궁극적으로도 잘할 수 있는 것일진대, 어린 시기에 2 개의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유럽의 경우와는 다르다. 유럽은 영어가 친족어의 성격이 강하기에 발음이나 어휘, 통사구조에 있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언어로서의 친화성이 있다는 것이고, 배우기도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글과 영어는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르다. 언어체계만 다른 것이 아니고 문화와 역사마저도 크게 다르다. 그러니까 유럽에서의 영어교육은 우리가 중국어나 한문을 배우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중국어나 한문 내지는 한글을 어린 시절부터 배운다고 치자, 가능한 일이겠는가.
특히 공교육은 전면적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학교 보내면서 내 아이에게는 영어 가르치지 마시오, 할 수 없는 법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면, 학교에 보낸 이상, 따르게 되어 있고, 이것이 성적과 연결되면, 결과는 뻔하다. 선행학습의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유치원부터 영어를 가르치게 된다. 조기교육의 신봉자들은 내심 그래야 마땅하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영어를 잘 한다고 생각하는 첫째 아이는 요즘 영어와 수학의 노이로제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오는 학습지 선생님이 숙제를 다소 과하게 내 준 모양이었다. 그 선생님께 정중히 말씀 드리고 시간을 줄였다. 그 줄인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는 거다.
좀 선택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신문을 펼치며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 가르치겠다는 소식을 접하니 숨통이 턱 막힌다. 꼬맹이 시절부터 대학입시까지 영어 못하면, 공부 못하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정 세계화라면 영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아랍어, 스펜인어, 아프리카의 여러 언어들 중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를 좋아하는 녀석들은 영어를 엄청 잘하게 하고, 중국어 하고 싶은 아이들은 중국어 어마어마하게 잘하게 하고, 아프리카 말을 배우고 싶은 놈들에게는 그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제공해 주면, 그것이 더 경쟁력 있는 결과가 되지 않겠는가.
내가 이런 말 하면 영어 못하는 것으로 오해하실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내가 보기엔 영어 잘한다. 영어 책도 그냥 본다. 웬만한 영어동화책 다 볼 수 있다. 뉴욕타임즈도 매일 본다. 미국 야후도 매일 접속한다. 아는 것만 읽고 나오면 된다. 또 꼭 필요한 경우에는 시간 더 투자한다. 영어 선생은 아니지만, 영어 선생들의 번역 문장을 교정도 해 준다. 말은 못하지만, 읽는 것은 그냥 읽는다. 모르면 모르면 대로 넘어간다. 난 내가 필요한 만큼 영어하면 되는 것이다. 영어 중요하다는 것 모르는 사람 없다.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재밌게 제대로 잘 가르쳐야 한다. 그런 환경 조성도 해야 한다.
그러나, 영어 아닌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그것도 너무 조기에 봉쇄하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 이미 내 아들은 5학년이 되었지만, 다른 아빠들이 자녀들과 바둑도 두고 서예도 가르치고, 운동장에 가서 축구 아니면 말뚝박기도 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그랬으면 좋겠다.
가슴에 손수건 달고 입학하는 꼬맹이들에게 조기교육의 효과를 들이대고 외국어를 강제하는 것, 너무 가혹하다. 제발,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주었으면 좋겠다.
* 줄탁동시(卒啄同時) : 불가의 깨우침과 관련되 화두의 하나이다. 병아리가 알 속에서 나오려면 먼저 스스로 알을 깨기 위해 부리로 알을 쪼아야 한다. 그러면 알을 품던 어미닭이 소리를 알아듣고 동시에 밖에서 알을 쪼아 안팎에서 서로 쪼아댄다. 여기서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이고, 어미닭은 수행자에게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주는 스승이다. 이상적 사제 관계를 뜻하기도 한다. 어느 대학에 가면 큰 돌에 새겨 놓기도 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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