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15 16:02
수정 : 2006.01.1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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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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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지나간 시절만큼 아련한 것이 또 있을까. 그 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야들아, 인생에 있어서 지금 너네들만한 때가 제일로 좋은 때인기라. 후회 없이 살그라이. 하고 싶은 일 있으면 미루지 말고. 특히, 기회란 건 일평생 그리 흔한 게 아녜요. 너희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겠지만 그건 절대 노. 어른이 돼 보면 알게 될 기라. 너희 만한 때가 얼마나 좋은 건지.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때는 늦으리’. 그런 뜻에서 오늘은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해봐야 할 게 무엇이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도록. 자, 졸지 말고 어서 적어.
전교 1등으로 등교해 보기, 머리 빡빡 깎아 보기, 텔레비전에 출연하기, 사흘간 집 밖을 나가지 않고 공부하기, 반대로 집 떠나 진짜 여행해 보기, 한 달 내내 일기 쓰기, 밤 꼬박 새워 공부하기, 원고지 100장 정도의 단편 소설 쓰기, 책 100권 읽기, 무슨 상이든 상 한 번 타보기, 무술 유단자 되기, 팔굽혀펴기 한 번에 100번 하기, 천체 망원경으로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 보기, 외국인과 1시간 대화 나누기, 남몰래 착한 일 한 번 하기, 지리산 종주….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이들 반응이 시큰둥하다. 좋아, 그러면 너희들이 한 번 써봐. 학창 시절에 한 번쯤 꼭 해봐야 할 것들!
전교 꼴등 해보기, 답안지 완벽하게 메꾸고 빵점 맞기, 앞머리 코끝까지 길러보기, 교실에서 라면 끓여 먹기, 3박 4일 혼자 체험학습 해보기, 농구공과 축구공 걸레 만들기, 소주, 맥주, 막걸리, 양주 기타 술이란 술 다 한 병씩 마셔보기, 종례시간에 들어가 ‘지각’처리 받기, 아침 조회 시간부터 종례 시간까지 잠자기, 여학생 팔 다리 어깨 1시간 주물러 주기, 한 손으로 핸드폰 메시지 1분에 100자 보내기, 컴퓨터 오락 코피 날 때까지 하기, 여선생님과의 ‘로망’, 여학교 화장실 들어갔다 나오기, 만화책 1000권 독파, 망원경으로 건너편 아파트 주민 일거수 일투족 감시하기….
야들아, 미안하다. 아니 내가 잘못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 그냥 조용히, 조용히 졸업만 해다오.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ohyea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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