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 법제화를 하기 위해 생각해야할 것들
학생회 법제화에 관한 기사를 읽어보았다. ‘발전하는 학생회 가자’의 대표와 나눈 인터뷰에서, 대표는 학생회 자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아직 학생회법제화-학생자치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한다청소년들이 자치화를 하기엔 주어진 자율에 따르는 책임의식이 부족하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학생들에게도 그들 스스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신들과 관련된 밀접한 사항들을 결정하며, 학교의 중요사항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학생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참여의 필요성을 배우기 위해 학생의 자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학생회 법제화-학생들의 자치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대한민국 60년의 역사동안 학생들의 의식은 이미 상당수준 높아지긴 했다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자치화를 하기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 바로 주어진 자율에 따르는 책임 의식의 부족이다. 1960년 장면내각이 들어서고, 우리나라의 법 체제는 큰 변화를 겪었다. 대통령중심제가 의원내각제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와 더불어 법 자체에도 큰 변화가 생겨났다. 독재 정권이었던 이승만 정권 때에는 주어지지 못했던 엄청난 자율이 우리나라에 허용된 것이다. 이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승만의 독재가 끝나자마자 시민들은 모든 것이 자유이고 시위만 한다면 국가에서 다 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는 집단적 시위가 일어났고, 이 때문에 사회는 급격한 혼란에 빠졌다. 결국 장면내각은 이런 현상을 통제할 만한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박정희의 쿠데타에 빌미를 제공한다. 과연 모든 지방의 청소년들이 모든 학교에서 훌륭한 자치를 해낼 수 있을까? 내가 우려하는 것이 이런 결과이다. 급진적 변화에 의한 혼란. 인터뷰의 내용을 보면,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민주적인 모습을 예로 들어 대한민국의 학생들도 충분히 성숙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집회에 참여했던 수백 명의 학생이 우리나라 수백만의 청소년에 비해 얼마나 되며, 그 몇 안 되는 수 또한 서울의 학생들이 대부분이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 집회를 청소년들이 정말 훌륭하게 해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집회에 참여한 이들이 소수의 서울지역 청소년들이라는 것이 문제다.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그 당시 집회가 열릴 때 조금의 변화 밖에는 감지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엄청나게 끌어 오른 만큼의 열기가 이곳에는 거의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과연 모든 지방의 청소년들이 모든 학교에서 훌륭한 자치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 스스로 지방에 살면서 이런 비교를 하면 안 되겠지만, 과연 지방의 학생들과 서울의 일부 학생들이 가진 의식수준이 같을 것이냐는 것이다. 자율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 이런 생각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의 지방학교를 다니며 그 학생들의 모습을 경험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조심스런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자율 앞에서 방종 하는 모습을 직접 목도하고 있으니까. 기사의 프랑스와 관련된 언급을 보면서도 학생회 법제화의 우려가 드러난다. 프랑스에서는 수업거부운동이 자주 일어난다는 언급에서, 가자의 대표는 그 행동이 매우 정치적, 사회적 참여에 높은 의식을 보여주는 거라 말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학생회 법제화가 정말 위험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예가 될 수 있다. 선동에 의한 정치, 군중정치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선동에 의한 정치’와‘군중정치’-이런 것들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정치적 행동들이 일어난다면 정말 정당하기만 할까? 학생들의 군중심리에 의해 잘못 오용되거나 누군가에 의해 아니면 언론에 의해 의도적․정치적으로 선동되지는 않을까? 지금 법제화가 시행된다면 학생들이 그런 것들에 현혹되지 않을 만큼 충분한 의식성장이 이루어 져있을까? 이렇게 많은 불안요소를 가지고 있는 학생회 자치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이런 것들은 내가 사사로이 대안을 제시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내가 보기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교육에서의 변화이다. 지금 우리가 학교에서 받고 있는 교육은, 그야말로 ‘주입식’ 교육이다. 나도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주입식이라는 생각조차 잘 못할 때가 많지만, 분명 우리의 교육은 주입식 교육이다. 교사가 모든 수업을 전담하여 자신의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학생들은 그저 그 내용을 반복하는 교육. 학생이 특정한 사건 앞에서 스스로 책임을 지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처리해 버리는 지금의 주입식 교육은 자율을 가르치지도 않고 책임을 가르쳐 주지도 못한다. 이런 교육은 그저 권위적 구조와 일원화된 구조를 답습하게 할 뿐이다. '주입식 교육' 아닌 자율에 따르는 책임의식을 가르쳐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교육적 대안’은 위에서 말했던 내용을 보완하기 위한 교육이다. 열린 교육과 같이 무조건적 자유방임이 아닌 청소년이 되었을 때, 자율 앞에서 방종하지 않는, 자율에 따르는 책임의식을 가르쳐주는 교육,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향해 노력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일들을 합리적·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서로 대화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 이것들이 내가 원하는 교육이다. 그리고 또 강조할 점은 학생회가 법제화되고 자치화 되는 것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선동에 의해, 청소년들의 그릇된 군중심리가 확산되어 급격하게 학생회 법제화를 추진한다면, 아마 학교 내의 상황은 장면정부와 같은 상황은 면하기 힘들 것이고, 박정희가 일으킨 쿠데타와 같이 다시 예전의 경직된 학교 체제로 돌아갈 빌미를 제공하고 말 것이다. 위에서 상당히 심각하다는 듯이 이야기들을 적어 놨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위의 이야기들은 나의 작은 희망들과 지나친 노파심이 반영된 것들이다. 청소년들의 자치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의견들을 표출하긴 했어도 나 역시 청소년의 한 사람으로서 분명 학생의 학교 내 자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에서 권력은 소수에서 다수에게로 확산·분배 되어왔고, 그 과정은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 중에 있다. 과거에는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려가며, 긴 시간에 걸쳐 권력을 쟁취했지만, 이제는 더 평화적으로 더 빠르게 권력의 소유층이 확산되고 있다. 결국 청소년에게 언젠가는 권력이 돌아올 날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시점이 바로 지금 세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듭 강조하는 바와 같이 법제화의 점진적 추진이나 자치교육과 같은 확실한 대비 없는 학생의 자치는 장면내각이 보여준 모습처럼 그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이민형 기자 mlimshs@naver.com ⓒ2006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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