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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22 15:35 수정 : 2006.01.23 13:59

방학 때면 학원 버스에서 가방을 들고 내리는 학생들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학부모 기자가 간다

겨울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은 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추운 날씨에도 입김을 호호 불며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있을까? 아니면 삼삼오오 몰려 다니며 재미있음직한 놀이꺼리를 찾고 있을까?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나 환호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친구들끼리 몰려 다니는 모습은 더더구나 보기 힘들다. 단지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열심히 가는 아이들만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방학을 맞아 각종 학원들은 그야말로 성수기를 맞고 있다. 각 학원마다 ‘방학특강’이라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단기 강화 수업에 열중이다. 많은 아아들은 방학이 되면 다녀야 할 학원수가 더 늘어난다고 입이 석자는 나와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이정우(9·가명)군은 방학인데도 새벽같이 집을 나선다. 오전 9시에 시작하는 영어특강을 듣고 있는데, 키가 작아 뒤에 앉으면 안 보이기 때문에 보통 시작 2시간 전에 도착해 자리를 잡는다. 다니는 학원은 모두 7개. 요일별로 시간별로 물샐틈 없이 짜여 있다.

“학기 때보다 학원수가 2개나 더 늘어났어요. 중간 중간 캠프도 가야 해요.”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한번씩 빠지면 되지 않느냐”고 하자, 이군은 “학원에 도착하면 엄마 휴대폰으로 도착했다는 문자가 입력되기 때문에 늦으면 혼난다”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4학년 최모세(10·가명)군은 정우와는 달리 학원에 다니진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없기는 마찬가지. 엄마와 함께 영어, 수학 등 학과 공부를 같이 하고 있고, 몇몇 아이들과 품앗이 교육도 한다. ‘즐겁다고 말하지만 부담스럽기만 한’ 체험활동도 몇번 다녀와야 한다. 때문에 모세의 시간표 역시 빈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6학년들에게 방학은 더 심한 지옥이다. 중학 과정을 미리 배우는 선행학습을 하는 탓이다. 대부분의 보습학원들은 중학교 예비반을 운영한다. 6학년들은 수준별테스트를 거친 뒤 오전 9시부터 오후 4~5시까지 학원에서 산다.

중학 예비반인 하은(13)이는 “너무 힘들고 재미없지만 모두다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냥 참고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학원행 셔틀버스에 내리는 아이들 가운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이 있으면 한번 찾아보라”며 ‘억지로 하는 공부’ 현실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방학특강 듣는 조건으로 최신형 휴대폰을 얻은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아이들에게 신나는 방학이 사라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방학은 부족한 또는 선행학습의 학습량을 채워주는 하드트레이닝 기간일 뿐이다. 심지어 요즘엔 방학계획을 세울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 부모에 의해 모든 일정이 너무도 꼼꼼하게 짜여진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과연 무얼 얻겠다는 것일까?


얼마전 은퇴한 한 노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엄마의 ‘20년 라이프 플랜’에 맞춰 살아간 결과 미국 유명대학을 졸업하고 이른바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35살 짜리 아들이 지금도 번번이 전화를 걸어온단다. “엄마, 이번 일 할까 말까?”

글·사진 이영미/학부모 기자 kq2000lee@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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