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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르를 벗겨라〉베흐야트 모알리 지음 ⓒ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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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리와 함께하는 책읽기] ‘차도르를 벗겨라’
혹시 ‘테헤란로’를 아는가? 서울 한복판에서 높고 높은 마천루를 자랑하면서 활기와 번영이 넘치는 곳이다. 테헤란로의 ‘테헤란’은 이란의 수도로써, 서울시가 테헤란시와의 우호증진을 위해 양 도시의 도로 이름으로 상대방의 도시 이름을 붙이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란 테헤란에도 마찬가지로 ‘서울로’가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서울로’에 여성이 떳떳하게 다닐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엄연히 이란은 이슬람을 신봉하는 아랍 국가로, 여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억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여성들은 항상 외출을 할 때면 온 몸을 휘감으면서 가려주는 '차도르'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한다고 한다. 아마도 지금도 테헤란의 ‘서울로’에 걷는 이란 여성들은 차도르로 얼굴을 가리며 거리를 나아가려 할 것이다. 서울의 테헤란로에 걷는 한국 여성들이 자유분방한 캐주얼 복장을 하고 있거나, 심지어 더위를 피해 미니스커트 옷차림을 하는 것을 상기해볼 때, 참으로 두 거리의 모습이 아이러니컬하다. 지금 지구촌에서는 이슬람 세계의 여성의 억압 분위기에 대해 논쟁이 뜨겁다. 이슬람의 여성의 대한 억압이, 이슬람교에서 가지는 특유의 문화적·종교적 특성으로써 하나의 ‘문화상대주의’로 보아야 할 것인지 혹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는 평등과 자유란 고유의 가치를 말살해 버린 무지막지한 폭거인지 오늘도 논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호주제 폐지안이 국회를 통과한지 반년을 바라보고 있고, 진정한 양성평등이 무엇인지 논의가 한창이다. 따라서 이즈음에 지구 반대편, 이슬람 세계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생활과 그들의 양성평등에 대한 사고(思考)를 확인해볼 때, 올바르고 진정한 페미니즘이 탄생될 수 있을 것이다. ‘차도르를 벗겨라’, 남성 이슬람교도가 들으면 꽤나 발칙하게 생각할 말이다. 이란의 한 여성, 베흐야트 모알리는 자신의 이야기와 자기가 변호했던 억압받던 여성의 이야기를 글로 담아냈다. 그녀는 변호사로 부유한 남성의 첩으로 들어가 본부인의 자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타라’라는 여성을 변호하게 된다. ‘타라는 남편이 죽게 되자 농촌에서 살아나갈 길이 없게 되자, 한시적 혼인관계인 시게를 강요당하게 된다. 시게 관계로 들어간 그녀는 그녀의 화사한 미모에 질투한 본부인의 끊임없는 질투와 괴롭힘에 자살을 택하게 된다. 그리고 자살을 시도한 그녀의 주변에는 본부인의 두 자녀가 숨져있었다. <차도르를 벗겨라>에서는 타라의 변호인 모알리는 여성이란 존재가 ‘남자에게 밭이 되어주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면서 타라를 변호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의 우여곡절 끝에 타라는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그리고 모알리는 처형되는 타라를 지켜보는 광경을 끝으로 글을 끝난다.이 글에서의 이야기는 지금 이슬람이 처한 페미니즘에 대해 신랄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슬람 세계에서는 이슬람교에서 가지는 특유의 문화적·종교적 특성이라 말하고 있지만, 그녀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팔라비 왕조의 붕괴와 함께 등장한 호메이니의 집권 이후 여성에 대해 차도르 착용을 의무화했고, 여성에 대한 부당한 조치가 연이어 등장했다. 따라서 결국 여성에 대한 억압이 이슬람의 문화적·종교적 특성으로써 하나의 ‘문화상대주의’에 따라 희소적 가치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집권 세력의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이슬람세계의 여성억압에 대해 부당하게 느끼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지 않았고, 이슬람 여성 스스로의 권리 쟁취 노력이 부족한 점이다. 그 한계점이 모알리가 독일로 망명해버리게 된 근본적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이슬람 페미니즘은 기로에 서있다. 아니, 이슬람의 페미니즘은 없다고 하는 편이 더 솔직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이슬람 페미니스트를 비롯해 이슬람 세계에 던질 수 있는 한마디의 말은 ’차도르를 벗어라. 그리고 벗겨라‘일지도 모르겠다. 이슬람 페미니즘은 이슬람 세계에 냉혹하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냉소적인 말을 들어왔다. 하지만 그 계란마저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그 추잡한 바위는 자신이 깨끗한 것으로만 알지 않을까? 그리고 조그만 한 방울씩의 물도 바위를 뚫는데 달걀이야 뚫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으랴? 이슬람의 지침서라 불리는 ‘코란’은 사랑과 자비로 유명하다. 그리고 코란에 적힌 ‘알라 앞에서는 어떤 인간도 평등하다’란 구절은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빛이 될 격언이다. 이슬람 세계가 여성에 대해 이슬람 세계의 존중된 인간으로 볼 때, 즉 진정하게 알라 앞에서 어떤 인간이든 평등할 때, 그들의 율법인 사랑과 자비로 충만된 ‘코란’도 빛날 것임은 틀림없다. 서울의 ‘테헤란로’와 이란의 ‘서울로’에 걷는 여성이 모두 당당하고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될 그 날을 기원하는 바이다. 배명고 정환희 ⓒ2006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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