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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31 14:18 수정 : 2006.02.23 16:16

영화 와 의 포스터 출처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영화 <엘리펀트>와 <볼링 포 콜럼바인>을 보고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주의 콜럼바인 고등학교, 갑작스런 총성이 하늘에 울려 퍼진다. 평소 자신을 ‘트렌치코트 마피아’ 라고 자칭하던 에릭과 딜란, 두 소년은 학생들을 향해 거침없이 총을 쏘아댄다. 시끄러운 총소리와 폭발음과 함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당시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간 이 사건을 영화화 한 두 감독이 있다. 바로 ‘마이클 무어’와 ‘구스 반 산트’. 두 감독은 각자 자기만의 시각으로 이를 해석하고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해석한 방향으로 함께 분노하게 만드는 마이클 무어,

무덤덤하게 사건을 바라보며 그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그려내고 있는 구스 반 산트.

이 중 나는 구스 반 산트의 영화 <엘리펀트>를 먼저 보게 되었다.

〈엘리펀트, Elephants〉

동아리 활동시간에 봤던 영화이다. <볼링 포 콜럼바인>을 보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내가 <엘리펀트>를 고집한 데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당시의 상황을 느껴보고 싶었다. 무엇이 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는지, 그게 알고 싶었다.

역시나 영화는 어려웠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많은 생각을 필요로 했다.


푸르른 하늘을 비추던 카메라는 천천히 땅으로 내려온다.

화면 속에 비춰진 한 고등학교의 모습은 평화로워 보인다.

아니 평화롭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다. 단지 조용하다.

알콜중독자 아버지를 둔 노랑머리 소년 존, 사진 찍는 모습이 주로 그려진 엘리어스, 왕따로 등장하는 미셸, 샐러드 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세 여학생, 그리고 총기난사의 두 주인공 에릭과 알렉스.

이들 각자의 일상이 영화를 만들어 간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똑같은 상황이 시점만을 바꾸어 반복된다는 것이다.

같은 사건이지만 존의 시점에서, 엘리어스의 시점에서, 미셸의 시점에서 반복된다.

나는 바로 여기에서 “엘리펀트”를 찾았다.

영화 제목의 유래에 대해서는 BBC에서 제작한 바 있는 ‘북아일랜드 폭력분쟁’을 다룬 동명의 TV프로그램에서 그 제목을 따왔다는 얘기가 있는데. 구스 반 산트는 이 제목을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래된 인도의 불교설화 ‘장님과 코끼리’를 떠올렸다고 한다.

코, 귀, 다리... 각자 자신이 만져본 부분만을 가지고 “이것이 코끼리다”라고 말한다는 것인데

어찌되었든 나는 시점을 달리한다는 것에서 코끼리를 발견했다.

정확히 들어맞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사건을 각자 다르게 해석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감독은 이러한 구성을 통해 편협한 사고를 경계하고 있는 것 같다.

고등학생의 일상이 주를 이룬 영화의 구성, 그리고 시점을 달리한 반복.

이를 통해 이 사건은 ‘그들의 사건’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전투 게임, 집단 따돌림, 인터넷을 통한 총기 구매, TV 속 히틀러의 모습 등...

원인으로 생각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살인의 직접적인 원인을 파헤쳐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범행자인 에릭과 딜란(극중 에릭과 알렉스)의 입장에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와 같은 소재들은 영화에 캐스팅 된 고등학생들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많이 얻은 것이라고 한다.

지나치게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 덕분에

에릭과 알렉스가 학생들을 쏴 죽이는 장면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관객들에게 인내심을 요구한 것, 불편하리만큼 길게 느껴지는 전주곡.

더불어 총기난사를 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 편에 있다.

무언가 적고 있는 알렉스의 옆모습. 왕따 미셸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 출처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왕따 미셸이 운동장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

“곧 알게 될 나의 계획”을 적고 있는 알렉스의 옆모습.

작별인사 쯤에 해당하는 에릭과 알렉스의 샤워장면.

굳이 꼽으라면 이 세 장면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살아있는 장면들이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의미 있는 장면이

누구에게는 그냥 스쳐지나갈 뿐인 장면이 될 수도 있는 이 장면들이

나에게는 영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섬뜩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사. “오늘은 가장 멋진 하루가 될 거야”

무엇이 그들의 오늘을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이것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탕” "탕" 총 소리를 끝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보이는 ‘여전히 푸르른’ 하늘은....

여전히 귓가에 울리는 피아노 소리는......

<엘리펀트>는 지루하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어 지루하다.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총기난사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홍보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이 영화를 보았다가는 총기가 등장하기도 전에 실증을 느껴버릴지 모른다.

똑같은 장면이 등장인물 각자의 시선을 따라 몇 번이고 반복된다. 연계성이 없어 보이는 사소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볼링 포 콜럼바인>은 통쾌하다.

눈을 뗄 수 없는 영상이다. 어디든 간다. 카메라만 있으면 어디든 간다.

절묘한 편집을 통해 스토리가 감독의 의도대로 흘러간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철저하게 비웃고 있다.

영화의 초반부, 배경으로 "What A Wonderful World"가 흐르면서

이란의 수상 축축, 동남아 민간인 학살, 이어지는 끝없는 학살...

후세인에게 무기 원조, 수단의 무기공장 폭파(아스피린공장이었다고 하죠? -_-)...

미국이 지금까지 세계에 저질러 온 만행들이 화면에 스쳐 지나간다.

여기에서 관객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지. 너나 할 것 없이 외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바로 저거야!” “저 미국 XXX들”

관객은 어느새 영화 속 등장인물이 되어 영화에 빠져든다.

<엘리펀트>는 불친절하다.

아무런 설명이 없다. 도대체 누가 주인공인지도 알기 힘들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인물을 영화 속에서 찾은 관객들

또는, 포스터의 장면을 영화 속에서 찾은 관객들은

이제야 뭐가 나올 듯.........?

아직 총기는 등장하지도 않았다.

같은 내용이 반복될 때에도 ‘반복되고 있음’을 알려주지 않는다.

<볼링 포 콜럼바인>은 무척 친절하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감독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 정도다.

조금 전에 나온 장면은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지, 어디에 다녀왔는지...

총기난나사건이 일어난 지 10일도 되지 않아서 ‘총기애호가 대회’를 개최한 사람이 있다.

찰톤 헤스톤. 그도 미시간 주에서 태어났고, 총기난사사건의 주인공 에릭도 어린 시절을 이 곳에서 보냈다고 하고, 콜럼바인 고등학교 주변에는 베트남 사람을 죽인바있는 폭격기가 전시 되어 있으며, 또 도시 외곽에는 세계 최대의 핵무기 생산공장이 있고.........

마이클 무어는 이같이 나름대로의 철저한 분석을 하여 영화를 제작하였다.

따라서 보는 입장에서는 그저 놀랍고 대단하다.

<엘리펀트>는 어렵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기 힘들어서 어렵다.

한 번도 키스를 해보지 못했다며 함께 샤워하는 모습.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 속에서 울려 퍼지는 ‘월광 소나타’.

초점에서 벗어나 있지만, TV 속의 히틀러.

잠시 동안 등장하는 게임 속 전투 장면.

총기를 택배로 받아보는 것도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일부에서는 이를 범행의 동기쯤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영화의 완성도를 위한 일상의 모습 중 하나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볼링 포 콜럼바인>도 어렵다-!

갈래, 문체, 시점, 주제를 불러주며 받아쓰기를 시키는 것 같아 어렵다. 총기난사의 이유를 부시에게 묻고 있는 마이클 무어, 그의 수업은 어렵다. 문학 평론가 마이클 무어가 분석한 이 작품의 주제는 “미국 내, 총기 규제의 필요성”이다. 사람들은 뛰어난 문학작품이라며 찬사를 보낸다. 역시 수능에 출제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그렇다면 여기서 작가에게 물어보자. 집필 동기가 무엇입니까? 에릭과 딜란은 과연 그것을 말하고자 했을까?

그 점이 아쉽다. 그래서 나는 엘리펀트가 좋다.

지나치게 불친절한 엘리펀트가 좋다.

임수한 기자 limsoohan@hanmail.net

ⓒ2006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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