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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05 17:21 수정 : 2006.02.06 15:03

2005년 여름 평화여성회 갈등해결센터가 연 청소년평화리더십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쌍별만들기’ 놀이를 하고 있다. 모둠별로 서로 의논해가며 쌍별(하나로 연결된 2개의 별)을 만들면서 아이들은 협동의 의미를 배운다. 평화여성회 갈등해결센터 제공

표지 이야기

‘사람과 문제’ 떼어서 보라 ‘말가시’ 빼고 긴 호흡으로

아이들은 화나도 자신이 화가 났는지를 잘 모른다. 작은 의견 차이가 큰싸움이 되기도 한다. 사소한 듯 티격태격, 금세 뒤엉킨다. 피멍투성이로 뒹군다. 때론 자신이 왜 그랬는지도 모른다. 다만, 폭발시킨다. 학교폭력의 한 모습이다. 갈등의 원인은 풀리지 않고 갈등은 안으로 깊어진다.

폭력을 부르는 갈등을 피할 길은 없을까? 학교 현장에서 갈등해결 수업을 펼쳐온 평화여성회 갈등해결센터 박수선(41) 소장은 이 질문이 잘못된 물음이라고 말한다. "갈등은 피하는 게 아니라 직면하는 것이며, 질문은 ‘나에게 닥친 갈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로 바뀌어야 합니다."

평화여성회 갈등해결센터
그림·역할극으로 대화 유도
협상과 중재 통해 공동 해결
다양한 프로…참여학교 늘어

평화여성회 갈등해결센터 강사들이 아직은 ‘작은 옹달샘’이지만 일부 학교에서 퍼올려온 갈등해결 수업은 아이들이 갈등을 다루고 해결하는 법을 익히는 데 주안점이 있다.

이 단체는 2002년부터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갈등해결을 위한 평화교육을 학교 현장에서 벌여왔다. 역삼중과 관악고를 시작으로 창의재량 시간을 통해 수업을 했다. 이후 교사 연수도 병행했다. 교사들의 요청이 생겨나기 시작해 2004년과 지난해에는 점점 참여 학교 수가 늘고 있다. 2003년부터는 14~16살 청소년을 대상으로 청소년평화리더십 캠프를 열고 있다. 이 캠프는 올 여름방학에도 열린다.

갈등은 자연스런 것이다 이들 학교에서 갈등해결수업을 해온 조영희 강사(갈등해결센터 청소년교육팀)는 자신에게 닥친 갈등을 해결하는 첫단추는 갈등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피할 수 없는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폭력이 될 수도 있고 자신과 관계의 발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함께 협동해서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가치관과 기술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습득하고 연습해보는 과정이 갈등해결 수업 내용이다.

대화하는 법을 배웠어 갈등의 순간에 아이들은 때로 화를 폭력적으로 폭발시킨다. 아이들에게 화는 몸의 반응이다. “아무 생각이 없고 열이 나고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이다. 갈등해결 수업은 ‘갈등을 그림으로 그려보기’, ‘자신이 화났을 때 하는 행동에 대해 그려보기’ 같은 아이들의 참여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갈등상황을 객관화해 보도록 한다. △즉각적으로 행동하지 않기 △숨을 길게 쉬기 △상대방의 말을 잘 듣기 △내가 왜 화가 났는지를 대화로 이야기하기 등이 역할극 형식으로 하기도 한다. ‘소방관 놀이’를 통해서는 화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상대방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화의 원인은 상대방에 대한 나의 욕구에 있다는 인식도 중요하다. ‘원 놀이’를 통해서는 여러 명의 참가자 중에 한명씩 원 바깥에 있어보게 함으로써, 왕따시키는 주체가 왕따되는 객체가 되는 상황을 경험한다. ‘내’가 왕따시킨 친구의 기분을 직접 느껴보게 하는 것이다.

참여했던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건 “말을 할 때 말에서 ‘가시’를 빼는 게 참 어렵다”는 것이다. 수업에 참여한 뒤 관악고 1학년 이은주양은 “친구와 싸울 때 그냥 화내기보다는 꼭 ‘왜?’라고 물어볼 것”이라고 썼다.

협상의 중요성을 인식하라 갈등에는 기본적으로 두 당사자가 있다.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협상’을 해야 한다. 갈등해결 수업은 아이들에게 ‘협상의 4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라. 가령 볼펜 한개를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웠다면, 문제는 볼펜이 누구 것인지다. ‘너는 본디 도둑놈이야’로 가면, 문제 해결은커녕 관계 자체가 깨진다. 둘째는 드러난 입장 중심으로 보지 말고 이면의 관심사를 찾는 것(입장에서 실익으로)이다. 실제로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셋째는 갈등(문제) 해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곧, 내 답만이 최선이 아니라 다양한 해법이 가능하다는 인식이다. 마지막 원칙은 해법에는 공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갈등해결 수업의 하나인 ‘또래중재’ 훈련프로그램은 갈등의 두 당사자와 또래 제3자가 역할 나눠맡기를 통해 갈등을 협상하고 ‘중재(조정)’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통해서 풀어가야 하니 의사소통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서울여중 1학년 전가영양은 “서로 의견을 존중하고 중재할 때, 누가 더 옳은지 가리는 건 줄 알았는데, 사실은 의견을 잘 듣고 서로 협의하는 과정이란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아이들이 말하도록 지난달 말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열린 ‘학교 폭력, 갈등해결과 평화교육으로 예방하자’는 주제의 토론회에서는 아이들을 ‘힘’과 폭력의 논리에 길들여지게 하는 학교 문화에 대한 참가 교사들의 반성과 성토가 이어졌다. 교사들은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초등학생 사이에도 위계질서가 차곡차곡, 엄연하다. 저학년 아이들은 교사에겐 예삿존칭을 써도 5~6학년에겐 극존칭을 쓴다. 선배들에게 공손하지 않으면 ‘찍히니까’. 형·언니들의 눈밖에 나면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주먹질만이 폭력은 아니다. 폭력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얼굴을 하고’ 드러난다. 학교에서 인정받는, 중심부에 속한 아이들의 태도에도, 중심부에서 소외된 아이들의 반발심에도 깃들어 있다. 학교 자체도 어쩌면 ‘힘’에 따라 교장-교감-교사-학생으로 위계화돼 있다.

김영미 지역사회교육 전문가는 갈등해결 교육을 통해 중심부에서 벗어난 소외된 아이들에겐 이를 극복할 힘을 길러주고, 자신을 중심부라고 믿는 아이들에겐 타인에 대한 수용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한다. 한 교사는 학교에서 폭력이 발생하면 학교는 ‘문제’학생 개인을 처벌하고 문제를 덮기에 급급할 뿐이라고 했다.

조영희 갈등해결교육 강사는 “학교폭력은 학생들 사이의 소통의 단절에 있으며, 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힘의 논리(폭력)으로 대응하는 소통 방법을 바꿔내지 않고서는 뿌리뽑기 힘들다”며 갈등해결 교육이 그 예방 구실을 일정 정도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박병식 청소년위원회 위원은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범죄인데, 결국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하는 인권의식을 가질 때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다”며 갈등해결 교육과 함께 학생회 법제화와 같은 제도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임대아파트…탈북…왕따 당한 아이들
자아 존중감 높여주니 절교에서 대화로

갈등해결수업 들여다보니

#장면1 선미(가명)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미가 고학년 언니들한테 괴롭힘을 당해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벌써 몇차례 결석했다. 이들은 등교시간에 선미네 아파트 입구에 가서 앉아 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무서워 다시 집으로 숨는다. 언니들이 무서워 화장실에 숨었다 수업종이 칠 때 집으로 몰래 도망온 적도 있다. 선미는 학교 앞 임대아파트에서 할머니와 사는 아이다.

#장면2 공부를 마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영지(가명)는 주변만 맴돈다. 같이 놀고싶다. 갑자기 아이들을 훼방 놓는다. 아이들이 화를 낸다. 무섭다고 놀이에 끼워주지 않는다. 영지는 ‘치사해서 같이 안 논다’고 맞선다. 영지는 탈북 부모의 아이다.

서울 연지초등학교에서 지역사회교육 전문가로 일하는 김영미씨가 평화여성회에 갈등해결교육을 의뢰하게 된 이유다. 이 학교는 2004년과 지난해 2년 동안 갈등해결 수업을 해왔다. 아이들은 특별활동시간과 방과후교실을 통해 매주 1시간씩 갈등해결 수업에 참여했다. 김씨가 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게 된 건 이 학교가 저소득층 밀집지역을 대상으로 한 교육복지투자 우선지역에 속하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임대아파트들이, 또 한쪽으로는 ‘일반’ 아파트들과 ‘주택’단지가 이 아담한 학교를 감싸안고 있다. 임대아파트에는 기초생활수급권자와 한부모, 조손가정, 탈북부모의 아이들이 산다. ‘일반’ 아파트와 ‘주택’에는 비교적 경제형편이 좋은 아이들이 산다.

4년째 아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본 김씨가 보기에 이 학교 아이들의 계층 격차는 비교적 크지 않다. 그럼에도 ‘아파트 평수’ 차이는 아이들을 알게 모르게 가르고 있다.

“아이들이 처음 만나면 묻는 말이 ‘너, 어디 사니?’입니다. 임대아파트에 사는지 ‘일반’ 아파트나 ‘주택’에 사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죠.”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주택’ 아이들이 잘난척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반 아이들이 나를 못 산단고 왕따시킨다”고 호소한다. 이들에겐 ‘주택’ 아이들의 “너, 임대 살지”라는 물음은 곧 상처다.

김씨가 보기에, 이 학교는 남한 아동과 북한 출신 아이들 간의 위화감도 다른 학교보다 적은 편이다. 김씨가 갈등해결 수업이 필요하다고 느낀 건 남한 아동과 탈북 아동 사이의 문화적 갈등을 줄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탈북 아이들의 적응을 어렵게 하는 것은 “아이들 자신이 심리적으로 위축돼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 어려워하는” 데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빈곤층 아이들에게는 자아 존중감을 높여주는 게 참 중요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수용받은 경험이 적기 때문에 당장 자신의 욕구 말고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죠. 자신감이 생기면 타인을 수용할 마음이 우러나게 되니까요. 자신을 중심부라고 믿는 아이들 역시 자신을 객관화하도록 해야 합니다.”

김씨는 2년 동안 갈등해결 교육에 참가한 아이들을 보면서 서서히 변화가 오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아이들은 ‘전에는 친구와 싸우면 절교를 했지만, 이제 대화로 푸는 법을 알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참 더디 변한다. 그는 올해에도 학교 예산이 허용하는 한 갈등해결 수업을 추진할 참이라고 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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