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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6 16:44 수정 : 2005.02.16 16:44

살아라, 살아있는 것만으로 넌…

인간을 허락않는 졸라체 암벽
하산길에 기다린 크레바스
생사 마지막 순간
가슴·갈비뼈가 부러져나가도
형은 동생을 버리지 않았다
한줄 로프 끊지 않았다
산사람의 믿음, 죽음보다 강했다

14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병원 정형외과 병동. 산악인 박정헌(34)·최강식(26·경상대 체육학과 4학년 휴학)씨가 치료실에서 손발에 칭칭 감긴 붕대를 풀자 끔찍한 모습이 드러났다. 손발가락들은 검정페이트를 칠한 것처럼 시꺼멓고, 마치 미라의 것인양 대꼬챙이처럼 말라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난공불락으로 꼽히는 히말라야 졸라체 암벽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오던 중 크레바스(빙하 틈새)에 빠져 각각 양다리 뼈와 갈비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은 채 기적적으로 생환한 이들이다. 경남산악연맹 선후배 사이인 이들이 히말라야를 향한 것은 지난해 12월 24일. 박씨는 이미 에베레스트와 안나푸르나 남벽 등 8천 미터 이상만도 7개나 등정하고, K2를 산소통 없이 등반한 베테랑이다. 후배 최씨는 2002년 인도 가로왈 히말라야를 박씨와 함께 등반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네팔 에베레스트 인근에 위치한 졸라체는 6440미터 높이지만 아직까지 프랑스 원정대 한 팀만이 정상 정복에 성공했을 정도로 험하기로 손꼽히는 코스다.

▲ 병원으로부터 손발가락 절단 권유를 받고 있음에도 최강식(왼쪽)·박정헌씨가 같은 병실에서 서로 위로하며 웃고 있다.



이들은 5일 동안 걸어 4800미터 고지에 도착해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이곳을 떠나 북벽 등반에 나선 것은 지난달 13일 새벽 3시. 1년 중 단 한순간도 햇볕이 들지 않는 응달진 빙벽이 무려 1400미터나 뻗어 내린 졸라체는 인간의 접근을 불허하고 있었다.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


둘은 55미터 길이의 로프를 서로 묶고 박씨가 앞서고 최씨가 뒤따라 올랐다. 온 신경을 손과 발끝에 모으고 온종일 벽을 기어오른 끝에 간신히 등을 기댈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영하 15도의 추위에서 눕지도 못한 채 침낭 커버만을 둘러쓰고 잠을 청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다가올 날들에 비하면 이날은 호사스런 밤이었다. 이틀째 밤은 빙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지새워야 했다. 가스와 물이 떨어져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이들은 등반 4일째가 되던 날 오전 11시께 마침내 정상에서 포옹했다.

이제 완만한 고쿄사면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5300미터 고지까지 급경사를 내려오자 헬멧과 스크루 등 장비를 모두 풀어 배낭 안에 넣었다. 둘은 25미터 로프로 연결한 채 하산했다. 악마처럼 1미터 폭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크레바스 옆을 지나면서 최씨가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이 순간 박씨는 정신을 잃었다. 갑자기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충격에 눈을 떠보니 크레바스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로프가 자신의 목을 칼날처럼 지나고 있었다. 불과 2미터 앞엔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최씨는 이미 크레바스에 빠져 있었다. 자신도 빨려들어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줄을 필사적으로 잡아당겼다. 그 순간 “두둑”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씨의 갈비뼈 두 대가 순식간에 부러지고 말았다.

“강식아, 강식아!”

그 경황 중에 박씨가 최씨를 애타게 부르자 아래에서 소리가 났다.

“형, 나 살아있어.”

그런데 최씨는 떨어지면서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크레바스에 부딪혀 양 발목의 작은 뼈들이 한꺼번에 부러지고, 발꿈치 뼈들까지 으스러진 상태였다. 절망적이었다. 여기서 죽는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박씨의 몸무게는 70㎏이었지만 끌어올려야할 최씨는 78㎏이나 됐다.

▲ 최강식(왼쪽)씨와 박정헌씨의 히말라야 등반 모습.



박씨는 부러진 갈비뼈 때문에 줄을 잡고 버티다보면 허리가 부러져나가는 것 같았다. 최씨는 오직 살려는 일념 하나로 2시간의 사투 끝에 사지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5천만원 넘는 치료비 막막

그러나 정작 그 때부터가 더 문제였다. 발목이 부러져 걸을 수 없게 된 최씨는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면서 내려갔다. 그러나 뒤에서 줄로 저지해주던 박씨의 피켈이 급경사에서 빠져 해머가 오른쪽 눈 윗부분과 가슴을 때려 피범범이 돼 버렸다. 그야말로 둘 다 만신창이였다. 시력이 0.3 최씨는 선글라스까지 깨져버려 앞도 보이지 않았다.

등반 5일째인 17일 한계에 이른 이들은 배낭을 버리기로 결단했다. 경사가 그친 지면이었다. 그러나 걸을 일이 더 문제였다. 최씨가 박씨에게 기대자 또 한 번 “우두둑” 소리가 났다. 박씨의 가슴뼈가 또 부러진 것이다. 배낭조차 버려버린 이들은 그대로 히말라야의 바람을 맞으며 밤을 새웠다. 박씨가 고함을 치면 최씨도 고함으로 살아있음을 알렸다. 밤추위를 그렇게 버텨 낸 이들은 기다시피 마을의 빈 움막을 찾아내고, 티베트인 야크 몰이꾼 할아버지를 만나 구조될 수 있었다.

병원에선 이날도 이들에게 수술을 권유했다. 동상에 걸려 이렇게 변색돼 버린 손발가락을 모두 절단하라는 것이다. 이 수술을 하는 순간 산악인으로서 이들의 생명도 다한다. 안타깝게도 걱정은 이만이 아니다. 5천만 원이 넘는 치료비를 감당할 일도 막막하다. 아내와 두 자녀의 생계를 책임져야할 박씨의 손발가락이 잘린다면 계약하자던 등반회사들의 러브콜도 중단될 게 분명하다.

형 고맙다 형 고맙다…응

등반은 집에서 나가 집으로 돌아오는 때까지다. 이들의 처절한 등반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셈이다. 최씨는 전날 밤 가슴 속에만 담아둔 채 박씨에게 못 다한 고백을 털어놓았다. “형, 고맙다”고. 그리고 이들은 히말라야의 얼음 미라가 되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 축복이고 행복이라며 껴안았다.

히말라야의 크레바스와 혹한의 추위도, 뼈가 부서지는 아픔도 둘을 연결한 생명 줄을 끊지 못했다. 최씨는 “크레바스 속에서도 ‘형이 나를 버리지 않을 줄 믿었다’”고 말했다. 희망은 죽음보다 강했고, 믿음과 우정은 절망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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